자기 알, 짝짓기한 수컷까지 잡아먹기도…형제 사이 잡아먹기 10%
가장 큰 수서곤충, 습지 감소와 '로드 킬'로 멸종위기, 횡성서 첫 자연복원 시도
» 제 몸보다 큰 버들치를 잡아먹는 어린 물장군
어린 시절 둠벙이나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놀다가 그물에 걸린 커다란 물벌레를 보고 화들짝 놀라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애 손바닥만 한 크기에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커다란 앞발을 치켜든 모습이 위협적인 물장군이 그 주인공이다.
이 물속의 최상위 포식자는 습지의 감소와 로드 킬 때문에 급격히 감소해 현재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돼 있다. 최근 물장군의 인공증식과 서식지 복원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배경이다.
물장군은 물벌레이지만 물밖에 알을 낳고 척추동물인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아먹는 포식성이 강한 특이한 곤충이다. 이런 포식성은 알에서 깬 직후인 애벌레 때부터 나타나며 같은 종끼리 서로 잡아먹는 행동도 흔히 벌어진다.
» 물장군 성충이 다른 성충을 잡아먹는 모습
무엇보다 물장군은 수컷이 수면 밖으로 자란 나뭇가지나 식물 줄기에 알을 낳아 깰 때까지 돌보는 부성애가 지극한 곤충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물장군 연구자인 노리다카 이치가와는 1995년 물장군 수컷의 이런 부성애는 암컷의 ‘유아 살해’ 행동 때문에 빚어진 방어전략이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물장군 수컷은 물밖에 낳은 알에 주기적으로 물을 적셔 준다. 이렇게 수분을 공급해 주지 않은 알은 대부분 깨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약 90초면 수컷의 몸에서 흘러나온 물이 알로 스며들기에 충분한데도 수컷은 그보다 오래 동안 알무더기에서 머무는 행동을 보인다. 물밖에 오래 머물수록 먹이 잡는 시간이 줄어 손해일 텐데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뭘까.
» 물밖 식물에서 짝짓기를 한 직후 알을 낳고 있는 암컷
이치가와는 실험 끝에 암컷이 알을 먹어버리는 행동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폈다. 애초 물장군의 암수 비율은 비슷하지만 수컷은 약 10일이 걸리는 부화기간 동안 알에 묶여있기 때문에 짝짓기에 나선 암컷이 수컷보다 사실상 더 많은 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암컷은 다른 암컷의 알을 지키고 있는 수컷을 공격해 알을 먹어치우고 자신의 알을 낳도록 하는 쪽이 유리하게 된다. 다른 새끼의 유모 구실을 하는 수컷을 자기 새끼의 유모로 만드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 우리나라에서 처음 물장군의 인공 증식에 성공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물장군 증식장의 모습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처음 물장군의 대량 증식과 자연 복원에 성공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은 이와는 약간 다른 관찰 결과를 소개한다. 이 소장의 설명을 들어본다.
6년 전 처음 물장군을 기르기 시작했을 때는 산란 뒤 암·수를 함께 두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암컷의 포식성이 너무 커 안 되겠더라고요. 암컷은 다른 수컷의 알은 물론이고 자기가 낳은 알이나 자기 짝인 수컷도 종종 잡아먹어 버립니다.”
물장군은 암·수가 물속에서 구애행동을 벌인 뒤 물 밖으로 나온 나뭇가지나 물풀에 올라 짝짓기를 하고 바로 알을 낳는 행동을 네댓 번 되풀이한다. 한번에 70~120개씩의 알 무더기를 나무에 남긴다.
» 알을 보호하는 수컷. 수시로 물을 축여 주고 간격을 조절한다.
그런데 암컷은 자신의 알을 지키려는 다른 수컷을 공격하고, 이에 저항하는 수컷을 잡아기도 한다. 암컷은 수컷보다 몸집이 훨씬 크다. 또 자기가 낳은 알이나 짝까지 먹어치우기도 하는데, 이런 행동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기가 낳은 알이나 짝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없애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알과 짝을 먹어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더 좋은 수컷을 만나 새로 알을 낳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이 연구소에서 실험한 결과 물장군 한 마리가 알에서 깨 어른벌레가 되기까지 올챙이와 물고기를 무려 53마리나 먹는 놀라운 포식성을 나타냈다. 물장군은 날카로운 앞다리로 먹이를 붙잡은 뒤 입에 난 침으로 독물을 주입해 상대를 마비시킨 뒤 다시 효소를 집어넣어 소화된 체액을 빨아먹는다.
» 금붕어 체액을 빨아먹고 있는 물장군
» 물밖 나무줄기에 낳아놓은 물장군의 알
» 약 열흘만에 알에서 부화하기 시작하는 애벌레
» 부화가 한창 진행중인 알 무더기
» 알에서 갓 깨어난 1령 애벌레
물장군은 동족 말고는 적이 없을 것 같은 강력한 포식자이면서도 어떻게 멸종위기에 몰렸을까. 둠벙, 연못, 논 등 습지가 사라진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다. 여기에 로드 킬이 치명타를 가했다.
이 소장은 “야행성인 물장군은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데 날개의 크기가 몸에 비해 작아 서식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로등 밑 등에서 차에 치여 죽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서식지 주변에 있는 야간 테니스장, 음식점 등 불빛이 밝은 시설은 물장군에게 ‘죽음의 함정’이 되는 것이다.
» 물장군이 자연 방사된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의 습지. 앞에 있는 식물이 멸종위기종인 독미나리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 지난달 31일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현궁로 습지에서 벌어진 물장군 방사 행사 모습
원주지방환경청이 지난달 31일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에서 증식한 물장군 40쌍을 방사한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습지는 주변에 불빛이 전혀 없는데다 남향이라 수온이 비교적 높고 먹이인 민물고기와 참개구리가 많아 자연복원의 적지로 꼽힌다.
이 습지는 과거 묵논이 습지로 변한 곳으로 멸종위기 북방계 식물인 독미나리가 자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멸종위기 2급 독미나리 최대 자생지 발견)
연구소는 강원도 횡성과 철원에서 채집한 물장군 6개체를 700여 개체로 인공 증식해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연 복원에 나선 것이다.
■ 물장군이란 어떤 곤충?
물장군은 몸길이 5~7㎝로 우리나라 노린재류 가운데 가장 큰 곤충이다. 한국, 일본, 중국, 극동 러시아, 동남아 등에 분포한다. 동남아에서는 요깃거리에 쓰이기도 한다. 물속에 살지만 꼬리 부분에 호흡기관이 있어 거꾸로 매달린 형태로 꼬리를 물밖에 내밀어 호흡한다. 5월부터 8월까지 물밖에 약 500개의 알을 낳는다. 알은 부화에 약 10일, 성충으로 자라는 데는 약 60일이 걸린다. 겨울엔 어른벌레 상태로 물가의 돌 틈이나 논둑에 들어가 겨울을 난다. 동종포식(공식)이 많아 알에서 깬 애벌레의 약 10%가 형제의 입속에서 사라진다.
■ 물장군 애벌레의 발생 과정 유튜브 동영상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