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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통에 살충제 뿌리지 말고 내게 줘요"…벌매의 말벌 집 공격

자운영 추억 2012. 9. 10. 21:42

김영준 2012. 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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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의 야생동물 구조 24시

벌집 움켜쥐고 날카롭고 긴 부리로 애벌레 빼 먹어, 사람 잘 따르는 순둥이 성격도

두터운 비늘, 촘촘한 깃털, 작은 콧구멍 등 벌침 막기 완전 무장…부리 위도 깃털로 감싸 

 

bee eagle.jpg » 쌍살벌의 벌통에서 애벌레를 파먹는 벌매

 

벌매는 우리나라를 주로 통과하여 동남아와 시베리아 혹은 일본으로 이동하는 철새입니다. 물론 일부는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번식지가 잘 알려지 있지도 않고 번식 개체군의 크기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벌매는 벌을 직접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그 유충을 먹습니다. 장수말벌 집까지 공격하는 정말 무시무시한 능력이 소유자입니다. 유럽벌매의 학명인
Pernis apivorous에서 Api는 라틴어로 벌을 뜻하고 vorous는 '~을 먹는 이'라는 의미지요. 벌을 먹는 새라는 뜻입니다.


Pernis ptilorhynchus는 아시아벌매의 학명인데, 라틴어로 Ptilo는 깃털이 나 있는, 혹은 날개라는 의미이며  rhynchus는 부리를 뜻합니다. 즉 '부리까지 깃털이 나 있는'이라는 의미겠지요.


다른 조류에 비해 배설물(요즘 많은 분들이 배설물을 배설물이라 하지 않고 분비물이라고 하는데, 똥을 코나 눈으로 흘리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배설물을 배설물이라고 해 주세요. 배설과 분비는 전혀 다릅니다.)에 물이 매우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증이 믾이 나는 동물일까요? 


2011년 10월 19일 충남 서산에서 발견된 이 개체는 아파트의 유리창에 충돌하여 좌측 날개가  골절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수술로 교정이 가능한 골절이었지만 골절된 지 오래된 상처라서 구더기가 슬고, 이미 상당 부분 괴사가 이루어져서 영구장애 판정이 났습니다.


하지만 워낙 귀한 새이고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관찰은 되지만 사육하고 있는 개체도 거의 없는 편이어서 교육 차원에서 사육을 고려하고 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1.jpg » 매우 강한 충격이 좌측 요척골에 가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리창에 부딪혀서 이렇게까지 부러질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만, 일단은 총상은 아닙니다.

 

2.jpg » 날개뼈가 부러졌기 때문에 사람으로 치면 팔뚝 부위가 많이 짧아져 있습니다.  

 
3.jpg » 신선한 골절이었으면 치료가 충분히 가능한 상태의 골절입니다만, 이미 상처 부위의 감염과 괴사, 그리고 구더기 오염으로 인해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죠.

 
4.jpg » 희안하게도 이 개체는 사람을 무척이나 따르고, 식탐이 많은 새여서 저희가 데리고 있기가 매우 수월했습니다. 덩치 큰 맹금 앵무라고나 할까요? 이런 동물을 데리고 있을 때 가장 중요한 고려점 중 하나는 동물이 받는 스트레스입니다만, 이 친구는 오히려 저희가 스트레스 받을 정도였답니다. 배고프면 울어댑니다.

 
5.jpg » 벌매에게는 좀 추운 겨울이었을 겁니다. 봄과 가을에 우리나라를 통과하여 산림 지대로 이동하여 벌집을 공격하는 맹금류이며, 동남아에서는 아마도 대만 인근까지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6.jpg » 4월 사진인데 연회색이던 홍채가 슬슬 노랗게 변해 가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상당히 많은 조류에서 연령을 추정할 때 홍채의 색을 판단 기준으로 삼곤 합니다. 우리가 구조한 이 녀석은 몇 개월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조된 것으로 보입니다.

 
7.jpg » 보시기엔 늠름한 자태입니다만, 정말로 순진하고 순한 녀석입니다.

 
8.jpg » 새로 만들어준 횃대에 올라가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철쭉이 피던 때이군요.

 
9.jpg » 보름 전쯤 새로 만들어 준 횃대에 라간 녀석입니다. 홍채 이 더욱 노랗게 변해 있습니다.

 
10.jpg » 참으로 예쁜 노란색입니다. 수리부엉이의 홍채는 노랗다 못해 붉은색까지 감도는 반면 이 녀석은 연노랑입니다.


 

우연찮게 쌍살벌 집 하나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많은 유충이 있었고, 벌매에게 주기로 하였지요. 쌍살벌들에게는 미안합니다만…. 그래도 센터에 매달린 벌집을 놔둘 수는 없는 것이지요. 119 요원분들이 살충제만 뿌리지 말고 저희에게 주신다면 이런 벌집은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11.jpg » 벌매가 먹다가 흘린 벌 유충입니다.

 
12.jpg » 이렇게 생겼다군요.   

13.jpg » 쏙쏙 뽑아 먹고 그것도 아쉬워 뻘집의 일부까지 뜯어 먹었습니다.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랬을까요.


14.jpg » 벌매의 발가락 비늘 모양입니다. 우리 조밀하고 두터운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로 발로 먼저 벌집을 움켜잡기 때문에 공격을 당할 수 있는 부위입니다만 이렇게 보호하고 있답니다.  
 
15.jpg » 발톱은 상당히 가늘고 길게 발달해있습니다. 마치 갈코리처럼 말이죠. 먹이를 채거나 죽이는 용도가 아닌, 쉽게 부스러질 수 있는 벌집을 강하고 깊게 움켜잡을 수 있도록 발달한 흔적이라고 하겠습니다.

 

16.jpg » 벌매의 뒷덜미입니다. 목덜미 깃은 풍성하고 덥수룩하게 나 있어서 벌침이 몸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17.jpg » 목덜미 깃털 확대 모습. 멋지지 않나요?

 
18.jpg » 부리는 다른 맹금류에 비해서 상당히 길게 자랍니다. 공작에 가까운 부리 형태라고나 할까요? 콧구멍은 길고 앏게 발달해 있습니다. 괜히 크게 만들어서 벌침 맞을 이유는 없겠죠? 잘 안보이시겠지만 부리 위의 노란색 부위가 납막이라는 부분인데 부리와 납막 사이에 길게 2시에서 8시 방향으로 홈이 나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가 외비공( 外鼻孔 nostril)입니다. 눈과 부리사이에도 간격이 넓을 뿐만 아니라 이 부분도 충실하게 깃털이 덮고 있습니다.   

19.jpg » 3년새 수컷 말똥가리의 모습입니다. 부리가 상당히 짧기도 하거니와 콧구멍도 명료하게 보입니다. 얼굴깃도 조밀하지 않죠. 이런 녀석은 벌 근처에 갔다가는 금방 쫓겨날 겁니다.

 

물을 마시는 이쁜 벌매도 보세요. 벌매가 물을 마십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앵무새입니다.

 

 

글·사진 김영준/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전임수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