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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칼날의 공포…갈치는 꼿꼿이 서서 사냥한다

자운영 추억 2012. 9. 9. 22:18

황선도 2012. 09.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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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박사의 물고기 이야기 ⑩ 갈치

바다에 치렁치렁 드리운 은빛 갈치 칼날 섬뜩

파르르 떠는 등지느러미, 섹시한 밸리댄스 연상케 해

 

gal1.jpg » 몸을 꼿꼿이 세우고 물 위의 먹이를 노리는 갈치. 사진=오픈 케이지

 

갈치(Trichiurus lepturus)는 몸이 아주 길고 납작하여 띠 모양으로 누구나 긴 칼을 연상하게 된다. 그래서 ‘칼을 닮은 물고기’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우리말 고어에는 ‘칼’을 ‘갈’이라 불렀다고 하니 그 어원을 짐작할 만하다.

 

영어로도 긴 칼집 또는 휜 단검처럼 생겼다하여 스캐버드 피시(Scabbard fish) 또는 커틀러스피시(Cutlass fish)라고 부르며, 갈치의 꼬리가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길다 하여 헤어테일(Hairtail)이라고도 부른다.

 

같은 의미로 갈치의 일본 이름은 다치우오(タチうオ, 太刀魚)이고, 중국어로는 다이유(帶魚)로 칼이나 띠처럼 생긴 물고기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물고기 이름은 지역과 관계없이 생긴 모양을 보고 지어진 것이 일반적이다. 


gal3.jpg » 갈치는 이름 그대로 칼처럼 생겼다. 사진=황선도 박사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갈치는 한 종류이지만, 사실 우리나라에는 4종이 보고되어 있다. 갈치와 같이 꼬리지느러미가 없으면서 몸의 끝부분이 뾰족하고 길게 뻗어있는 분장어와 함께 꼬리지느러미가 위와 아래 갈라져 있는 붕동갈치와 동동갈치가 더 있으나 보기가 쉽지는 않다.

 

오히려 이들 갈치류와 달리 인터넷에서 대형 어류로 가끔씩 소개되는 ‘산갈치’는 농어목 갈치과 어류가 아닌 이악어목 산갈치과에 속하여 이름만 갈치이지 분류학상으로 가깝지 않다.

 

해운대에 떠밀려온 6m짜리 산갈치.jpg » 해운대에 떠밀려온 6m짜리 대형 산갈치. 갈치와는 거리가 먼 심해어이다. 사진=뉴시스

 

산갈치는 주로 대양의 심해에 사는 대형 희소종이라 이들의 출현만으로도 화제가 되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한 전설에 의하면 이 물고기는 한달 중 보름은 산에서 살고 나머지 15일은 바다에 살면서 산과 바다를 날아다닌다고 한다.

 

또한 과거에는 산갈치가 한센병(문둥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산갈치는 날아다니는 기관이 없을 뿐 아니라 물 없이 살 수 있는 생리적 기관도 가지고 있지 않다. 더욱이 병이 치유되었다는 보고도 없다고 하니 독자들은 속지 마시라.

 

 gal4.jpg » 물속에서 서있는 자세로 멸치를 잡아먹는 갈치 떼. 사진=KBS 김동식 수중촬영감독

 

2006년 여수에 있는 남해수산연구소에 근무할 때이다. <한국방송>(KBS) 창원방송국에서 남해의 대표 어종인 멸치의 다큐멘터리 만드는 데 참여한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촬영한 사진 중에 갈치가 멸치를 잡아먹는 장면이 있는데, 표층에 떠다니는 멸치 떼를 갈치가 그 아래서 “칼” 같이 서서 낚아채듯 잡아먹는 것을 보고 참으로 신기했다.

 

일반적인 물고기와 달리 갈치가 옆으로 헤엄치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습성을 묘사하여 일본에서는 ‘서 있는(立つ) 물고기’라고도 부른다. 어쨌든 은백색의 반짝거리는 칼이 치렁치렁 걸려 있는 것이 섬뜩하기까지 하였다.

 

갈치의 수명은 전 세계적으로는 최대 15세까지 자라며 2m를 넘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보통 우리가 볼 수 있는 갈치는 1m 정도까지 성장하며, 수컷은 4살, 암컷은 6살까지 사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갈치는 동중국해와 우리나라 전 해역, 특히 서·남해에 주로 분포한다.

 

gal5.jpg » 1m가 넘는 대형 갈치. 좀처럼 보기 힘들다. 사진=황선도 박사

 

갈치는 비교적 심해성 어종으로 수심 100m 정도의 모래와 펄이 섞인 곳에 살며, 6~10월의 산란기(주 산란기는 8월)에는 연안 가까운 얕은 곳으로 이동하여 밤에는 표층까지 떠올라 멸치 등의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갈치는 식욕이 왕성하여 멸치, 비늘치, 오징어 및 새우 등 닥치는대로 마구 잡아 먹으며, 심지어 같은 갈치끼리 잡아먹는 습성이 있어 갈치를 잘라 갈치를 잡는 낚시미끼로 쓰기도 한다.

 

실제 갈치의 이빨은 매우 강하다. 2010년 배타적경제수역 승선 자원조사를 나갔을 때 잡은 전장 133㎝의 갈치는 금방이라도 손가락을 자를 것 같은 기세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참된 기억이다. 대학에 다닐 때다. 전공이 해양학이라 그랬을까. 고학년이 되면 선상실습이라고 해서 배를 타고 조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낮에 항해를 하고 밤에는 바다에서 묘박을 하는데, 특별히 배에서 할 일이 없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가 뱃전에서 낚시줄을 드리웠다. 이때다 싶게 모두들 몰려나와 뱃전에 기대서서 갈치를 미끼로 갈치 낚시를 하기 시작하였다. 바다 한가운데서 한밤중에 낚여 올라오는 갈치의 꼬리를 물고 또 갈치가 달려올라와 한 큐에 두 마리가 잡힌 것이다. 뱃전에 내동댕이쳐진 은백의 갈치가 어둠속 달빛 아래에서 등지느러미를 파르르 떨며 몸부림치는 모습이 마치 밸리댄스를 추는 듯해 그 섹시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갓 잡은 갈치 표면에는 비늘 대신 구아닌이라는 은색 가루의 유기염기가 손으로 만지면 묻어 나오는데, 날로 먹을 때는 이것을 깨끗이 벗겨내지 않으면 복통과 두드러기가 날 수 있다. 그런데 반짝이는 이 은색 가루는 인조진주의 광택원료나 립스틱 성분으로 쓰이기도 한다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좋고 나쁨이 공존하는 것 같다.

 

이것을 걷어내는 방법으로는 보통 칼로 긁어내기도 있지만, 시골에서는 호박잎으로 문질러 벗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갈치 요리는 토막을 내어 약간의 소금에 절였다가 기름에 튀겨내는 것이 제 맛이며, 무를 넣고 적당히 양념을 한 조림이 두 번째이다. 그러나 아마도 으뜸은 ‘갈치 회’일 것이다.

 

요즘은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신선하게 곧바로 유통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서울에서도 갈치를 회로 먹을 수가 있는 곳이 더러 있다. 하지만 갈치에게서 묻어나오는 구아닌 성분은 신선도가 떨어지면 공기 중 산소에 의해 산화되어 쉽게 변질되고 비린내가 나 현지가 아니고서는 회를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여름밤 약간은 쌀쌀한 제주도 해안가를 걷다 보면 밤바다 수평선 너머에 야간 야구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갈치를 낚는 어선 불빛임을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밤새 낚은 갈치가 다음날 아침에 수산시장으로 들어오면 그 신선함이 유지된 채로 ‘회’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갈치는 육식성 어류이다. 그래서 그런지 육질이 쫀득한 것이 형용할 수 없는 고유의 맛이 있다. 담담한 흰색의 담백함이다.

 

gal2.jpg » 갈치 요리의 으뜸으로 꼽히는 갈치회. 사진=김순경

 

갈치구이_김순경.jpg » 갈치구이 사진=김순경

 

갈치조림_정신우.jpg » 갈치조림 사진=정신우  

 

은갈치 잡이 본고장 거문도


우리가 보통 은갈치라고 부르는 것은 갈치와 다른 종이 아니다. 다만 은빛 나는 큰 갈치를 통상 그렇게 부른다. 갈치는 생활사에 따라 서식처가 좀 다르기는 하나 심해성 어류로 먼바다 깊은 곳에 산다. 그래서 남해안 그것도 바다 한가운데 우뚝 있는 섬들이 갈치 잡이의 전진기지일 수밖에 없다.

 

필자가 1999년 자원조사를 위해 한 달여 동안 배를 타고 남해안을 항해했을 때의 기억이다. 트롤이라고 부르는 시험어구를 내리면, 갈치가 늦여름에 가장 많이 잡히는 우점종이었다. 때에 따라 ‘풀치’라고 불리는 어린 갈치가 한 가구씩 가득 든다. 식당에서 조림으로 나오는 풀치는 아직 한번도 산란을 하지 못한 어린 놈으로 자원보존 차원에서는 어획해서는 아니 되는 것들이다.

 

남해안 일대에서 잡혀 와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에 쌓여 있는 ‘풀치’(어린 갈치). 국내에서 가장 많은 갈치가 거래되는 이 시장에서 올 들어 지금까지 위판된 ‘풀치’는 이미 1만9천t으로, 다 자란 갈치의 1.8배가 넘는다. 이동우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관 제공.jpg » 남해안 일대에서 잡혀 와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에 산처럼 쌓여 있는 어린 갈치 ‘풀치’. 이런 남획이 자원 고갈을 일으킨다. 사진=이동우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관

 

보통 수백톤이나 되는 조사선에 승선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사기간 동안 육지에 내리지 않고 배에서 숙식을 하며 정해진 조사 정점을 따라 계속 항해를 하면서 그물로 고기를 잡아 생물측정도 하고 실험도 한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해안에 불어닥친 태풍 때문에 더 이상의 항해를 하지 못하고 가까운 거문도로 피항하여 보름만에 육지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배를 정박시키고 이런 저런 조처를 취하고는 조사선 살롱에 모여앉아 비오는 밖을 할 일없이 내다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저녁을 먹기 전에 날궂이 한잔하자는 이야기가 돌더니만 급기야 몇몇이 조를 맞춰 빗속을 뚫고 그 유명하다는 ‘할매 막걸리집’으로 향하였다. 찾아간 집은 허름한 민가로 정식 술집은 아닌 듯했다.

 

젖은 옷을 벗고 주인집 안방을 차지하고 앉았는데, 빛바랜 옛날 사진 여러 장이 액자 하나에 담겨 벽 한가운데 걸려 있는 방안 풍경은 집에서 빚은 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았다. 한참 만에 들어온 상에는 퀘퀘한 냄새로 코를 찌르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갈치 젓갈이었다.

 

gal6.jpg » 수산자원 조사선. 한 번 조사에 나서면 몇달씩 바다 위에 머물러야 한다. 사진=황선도 박사

 

흑산도 홍탁을 방불케 하는 갈치속젓은 먹어 보니 역시 맛의 깊이가 있었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젓갈 중에서 갈치 내장으로 만든 ‘갈치 속젓’을 최고로 치는데 아주 별미다. 처음 먹는 사람은 그 강한 맛 때문에 먹기 쉽지 않지만 맛을 들이면 이를 따라갈 만한 젓갈이 없다.

 

어디서나 그렇듯 그 지방 전통 음식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진다. 남해 한 가운데 위치한 거문도의 갈치 젓갈은 오래전부터 그곳 바다에서 잡아온 갈치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거문도는 갈치의 산지이고, 더욱이 갈치 잡이 어선들의 피항지로 갈치의 본고장이다. 처마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막걸리로 취기가 오르니 갈치 젓갈과 함께 술은 익어가고…. 여기가 무릉이었다.

 

술자리가 파할 때쯤, 다른 곳에서 선박 직원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린다는 연락이 와서 찾아간 곳은 역시 조잡한 선술집 ‘중앙회집’. 그러나 술상에 올라와 있는 전복죽과 삼치 회, 오분자기 무침, 소라 삶은 음식들은 집 분위기와는 딴판이었다. 인심 좋고 음식 맛 좋은 주인 아주머니의 후의에 흥까지 돋아 갑자기 노래방 분위기로 바뀌었다. 육지에 내린 안도감과 조사도 순조롭게 끝나가고 있어 연구원과 선원들 모두 흥겹게 놀아났다.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거문도 항구_이정아.jpg » 해질녘의 거문도 항구. 은갈치의 본고장이다. 사진=이정아 기자

 

늘 그렇듯이 전날의 과음은 다음날 아침에는 후회와 피곤으로 다가왔다. 모두들 늦잠을 잔 탓에 아침도 못 먹어 뒤늦은 '아점'을 하기 위해 배에서 내렸다.

 

낮에 본 거문도는 과연 어업 전진기지로 손색이 없었다. 동도와 서도 그리고 고도로 나뉘어진 섬들, 그래서 ‘삼부도’라고도 불리는 거문도는 이 세 섬으로 둘러싸여 천연 그대로가 항(港)이었다.

 

항구 밖은 아직도 세찬 바람에 백파가 일어나고 있는데 항내는 잔잔한 호수 같다. 한 시간은 걸어야 식당과 다방이라도 있다는 고도로 갈 수 있다. 바람은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었으나, 하늘은 청명하다. 산을 넘고 해안을 끼고 돌아가는 길 옆으로는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나무와 풀과 꽃들로 군락이 이루어져 있었다.

 

어제의 술기가 맑은 바람과 푸르른 풀내음으로 말끔히 씻어지는 것 같았다. 지나가던 차들이 태워주겠다는 호의도 마다하고 걸었다. 모처럼 자연을 만끽하고 싶어서였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거문도는 어업 전진기지로서 뿐만 아니라 관광휴양지로서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높은 돌담은 나름대로 멋스러웠다.

 

말동무 삼아 한참을 걷다보니 제법 번화한 곳이 나타났다. 제일 먼저 다방을 찾는 사람, 자장면 집을 찾는 사람, 전화를 거는 사람, 갇힌 배에서 벗어나 육지를 만났을 때의 모습들이다. 이곳은 피항해 온 어선들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인 것 같았다. 이 작은 동네에 다방이 11개나 되는 것은 단적으로 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thumbnail3.jpg » 거문도가 영국 함대가 포트 해밀턴 항이라고 불렀다는 안내 비.

 

영국군 묘를 찾았다. 거문도는 186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영국군 상선과 해군이 드나들던 곳으로 영국군 함대가 헤밀턴 항(port Hemilton)이라고 자기식 이름까지 붙여 놓고 주둔하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힘없던 나라의 비애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바람이 참 많이 불었다.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