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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악마’ 아귀는 음흉한 낚시꾼

자운영 추억 2012. 3. 10. 16:32

‘바다의 악마’ 아귀는 음흉한 낚시꾼

등록 : 2012.03.10 15:35 수정 : 2012.03.10 15:43

 
살점을 미끼로 낚시를 하는 아귀의 모습. 사진=아우구스트 브라우어, 위키미디어 커먼스

황선도 박사의 물고기 이야기 / 아귀
바닥에 엎드려 머리 앞쪽 돌기 낚싯대로 먹이 유인
몸의 절만인 입의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 통째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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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절반이 입인 물고기, 맛은 좋지만 한때 어부가 잡자마자 뱃전 너머로 던져 ‘물텀벙이’로 불리는 못생긴 물고기, KBS 2TV ‘해피 선데이 1박2일’에서 가수 은지원이 혼비백산해서 만지지도 못했던 고기…. 이 고기가 바로 겨울철 별미인 아귀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1박2일’에서 은지원이 혼비백산한 그 고기

주로 바다의 바닥에 서식하는 아귀의 모습은 마치 해저의 갱을 떠오르게 한다. 몸과 머리가 납작하고 입은 당치도 않게 크며 아래턱이 위턱보다도 튀어나와 있다. 양 턱에 굵고 뾰족한 이빨이 크고 작은 빗 모양으로 촘촘히 나 있다. 그 날카로운 이빨로 먹이를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 수심이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으며 몸 색깔도 주변의 모래펄 색깔에 맞춰 엎드려 있으며 오로지 먹이가 자동적으로 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아귀의 특징으로 입의 바로 위쪽, 즉 머리 앞쪽에 가느다란 안테나 모양의 유인돌기가 있다.

자기 몸 1/3 크기의 먹이도 단번에…탐욕의 상징

이는 등지느러미의 첫 번째 가시가 변한 것으로 그 끝 부분이 주름진 흰 피막으로 덮여 있는데 이것을 좌우로 흔들어서 먹이를 유인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명 ‘아귀의 낚싯대’라고도 한다.

점잖게 있다가 고기들이 접근하게 되면 순간적으로 큰 입을 벌려서 통째로 삼키고 만다. 따라서 한 번에 자기 크기의 3분의 1정도 크기의 먹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다. 이런 대식성 때문으로 아귀는 탐욕과 욕심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아귀의 뱃속에서는 통 채로 삼킨 값비싼 생선이 들어 있는 수가 있어 횡재할 수가 있다. 이 때문에 ‘아귀 먹고 가자미 먹고’하는 속담이 생겼다. 일거양득이란 뜻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아귀를 낚시 하는 물고기라는 뜻으로 조사어(釣絲魚)라 적고 있다. 실제로 물속에서 아귀가 먹잇감을 사냥하는 장면을 지켜볼 수 있는 잠수장비도 없었을 당시에 선생의 통찰력에 탄복한 만하다.

자연 상태의 아귀 모습. 등지느러미가 변한 낚싯대와 발처럼 바닥을 디딘 가슴지느러미가 눈에 띈다. 사진=NOAA, 위키미디어 커먼스.
정약전 <자산어보>에도 등장

아귀는 헤엄치는 속도가 매우 느려 물고기를 쫓아서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먹잇감을 유인하는 방법을 터득했는데,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변형된 유인 돌기를 미끼처럼 흔드는 것이다. 이를 본 물고기는 만만한 먹잇감으로 알고 가까이 접근한다. 이때 아귀는 순간적으로 큰 입을 ‘쩍’ 벌려 먹이를 한 입에 삼켜 버린다.

서양에서 아귀가 미끼를 가지고 낚시하는 물고기라는 의미에서 '낚시꾼 고기'(anglerfish)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아귀는 방언으로 아구, 물텀벙, 아구어라고 불리며, 한자로 안강어(鮟鱇魚)라고 쓴다. 한자 안(鮟)과 강(鱇)은 모두 아귀를 말하는데, 서해와 같이 조류가 강해 물살이 센 해역에서 아귀처럼 입을 벌려 떠밀려 오는 물고기를 잡는 어구를 안강망(鮟鱇網)이라고 한다.

근래 상업적으로 중요한 수산자원의 감소와 함께 황아귀는 고가 어종으로 부각되어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 큰 입을 가진 포식자로서 생태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제주도 부근의 동중국해에 서식하는 황아귀 암컷의 생식소 발달단계를 조사한 결과 산란기는 2~4월로 추정되며, 난소에 가지고 있는 알의 수인 포란수는 30만~180만개로 크기가 커질수록 포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자원을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알을 많이 낳을 수 있도록 큰 개체의 어미를 보존해야 할 것이다.

비교적 수명 길어 한번 남획 되면 회복 어려워

처음으로 알을 낳을 수 있는 개체의 크기를 나타내는 성숙체장은 암컷 48.5㎝, 수컷 34.7㎝로 2~3살 나이의 개체에 해당한다. 암컷은 8살까지, 수컷은 5살까지 사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우리나라 다른 어류에 비하여 수명이 긴 편이다. 이러한 어류는 남획 등에 의해 한번 자원이 감소되면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어 자원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암수의 성비는 6대 4로 산란기에는 암컷의 비율이 66~81%로 늘어나는데, 수정의 기회를 더 가지려는 종족번식의 본능이 아닐까? 물고기 스스로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데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어떤 배려를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본다.

남해에 자원조사차 갔다가 술 한잔 속에 섞여 들은 말이지만, 아귀가 괴물처럼 생긴 데다 살이 물컹물컹하고 특별히 맛이 있는 생선이 아니기 때문에 옛날에는 그물에 걸리면 바로 버렸다고 한다.

아귀의 모습. 사진=김병직 박사
이때 아귀가 물에 떨어지면서 ‘텀벙’하고 소리가 난다고 해서 ‘물텀벙’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변했지만 50여 년 전 마산 부둣가 옆 오동동에는 선술집이 즐비했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오동동에 장어국을 팔던 혹부리 할머니가 있었단다. 왼쪽 턱 밑에 혹이 있어 그렇게 불렸다는데, 그 할머니 집이 초가여서 사람들은 ‘할매집, 혹부리 할매집 또는 초가집’이라 했다. 어느 겨울날 한 어부가 아귀를 들고 와 “할무이, 이거 요리 한 번 해보소. 어시장에 가모 천지삐까린데 아까바 그라요” 했다. 할머니는 아귀를 들고 한참을 보다 “이 콧물 질질 나는 괴기를 어떻게 먹소”하며 문 밖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물에 걸리면 바로 버려 ‘물텀벙’

그런 지 한 달쯤 됐을까. 혹부리 할머니는 겨울 찬바람을 맞고 얼었다 녹았다 하며 바싹 마른 아귀가 초가집 흙벽 옆에 뒹구는 것을 발견했다. 할머니가 아귀를 들었을 땐 ‘콧물’이 다 말라 있었다.

그때 할머니 생각이 바뀌었다. 혹부리 할머니는 된장과 고추장을 반반씩 섞은 다음 마늘, 파 따위를 넣은 양념을 발라 쪘다. 북어찜 요리법을 아귀에 적용한 것이다. 할머니가 먹어보니 맛이 괜찮았다. 할머니 단골들에게 술안주로 권했다. 손님들도 먹어보니 괜찮았다. 이렇게 해서 ‘아구찜’이 탄생한 것이란다.

이 아구찜에 요즘처럼 콩나물, 미나리 등 채소와 미더덕 등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혹부리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후로 아구찜을 하는 식당의 간판들은 ‘오동동, 할매, 초가’등이 들어간 간판이 유독 많다. 이렇게 오동동 아구찜 집 간판들이 아구찜 창시자 혹부리 할머니를 기릴 뿐이다.

아귀는 생긴 그 모습과는 달리 맛은 화끈하다. 겨울 엄동설한의 1~2월이 제철로서 무, 파 등의 야채와 함께 끓이는 아귀탕은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 검고 물컹물컹한 껍질을 씹었을 때 느껴지는 묘한 감촉, 흰 고기 살은 담백하면서도 진미가 있으며 아귀의 간은 세계 3대 진미식품의 하나인 프랑스 요리의 ‘푸아 그라(거위 간)’에 뒤지지 않을 정도이다.

아귀는 저지방 저칼로리 식품이다. 그러나 아귀의 간은 영양가가 높아 겨울철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유용한 식품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 영양성분은 노화방지와 성인병 예방에 특히 좋다고 한다.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