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야생화

동백나무 숲에 '풍덩', 명품섬 내도 탐방기

자운영 추억 2012. 1. 14. 17:12

동백나무 숲에 '풍덩', 명품섬 내도 탐방기

윤주옥 2012.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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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신비로운 섬, 내도

 

‘내도 가는 배표, 여기서 사나요?’

 

‘탐방하러 오셨습니까?’

 

평범한 질문에 되돌아온 답이 나를 놀라게 했다. ‘탐방’이라니, 10년 넘게 국립공원을 다녔지만 매표원에게선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내도행 배표 매표원이자 내도호 선장인 김명규 님은 그렇게 대답했다. 관광도, 답사도 아닌 ‘탐방’이라 했다. ‘탐방’은 국립공원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국립공원에 오는 사람은 탐방객, 국립공원에 난 길은 탐방로, 국립공원을 안내하는 곳은 탐방안내소, 국립공원 초입에 있는 사무소는 탐방지원센터 등으로 부른다.

 

내가 국립공원에 있음을 알려준 것은 안내판이나 현수막이 아니라 ‘탐방’이란 단어였던 만큼, ‘탐방’이란 매표원의 말 하나로 내도는 나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섬으로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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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돌로 인해 더 진한 빛깔을 간직하게 된 내도 앞 바다.

 

내도는 섬의 섬이다

거제도는 우리나라 섬 중 해안선 길이가 가장 긴 섬이다. 800리에 달하는 해안선 길이는 지리산 둘레와 맞먹는다. 거제도는 10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는데, 내도는 거제도에 달린 그러한 섬의 하나로, 말하자면 섬의 섬인 셈이다.

 

내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배편인 내도호는 허리를 곧게 펴기 힘들 만큼 작은 배다. 배가 작으니 바닷물의 흐름이 그대로 전달됐다. 나룻배에 타고 노를 젓는 느낌이었다. 내도호와 함께 바다가 코앞에서 흔들렸다.

 

거제 구조라항을 떠난 내도호는 끈으로 연결된 듯 스르르 움직였다. 배 한편에 앉아, 바다구나, 비취색 물빛을 하고 있으니 깊겠네, 햇살 받은 바닷물은 따뜻할 거야, 뱃멀미를 하면 어디다 토하나 등 잡스러운 생각에 빠져들려고 하는데 벌써 내도라고 한다. 배 안을 살피기에도 부족한 시간, ‘순간이동을 했나?’ 하고 벙벙한 속에서 내도에 발을 들여놓았다.

 

내도는 서울시청 앞 광장의 6배쯤 되는 크지 않은 섬이다. 한때에는 22가구, 50여명이 살았고, 구조라초등학교 내도분교도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1명이고, 2년마다 신입생을 뽑았던 내도분교 이야기는 지금보다 가난하고 힘겨웠던, 이제는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리운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 내도에는 12가구, 18명이 살고 있다.

 

내도는 섬 전체가 식물원으로 알려진 외도 옆에 떠 있는 섬이다. 선착장이 있는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舊助羅里)에서 바라볼 때 바깥쪽에 있는 게 외도(外島), 안쪽에 위치한 게 내도(內島)다.

 

내도와 외도는 전설도 공유하고 있는데, 옛날 대마도 가까이에 있던 외도(남자섬)가 구조라 마을 앞에 있는 내도(여자섬)를 향해 떠오는 것으로 보고 놀란 동네 여인이 ‘섬이 떠 온다.’고 고함치자 그 자리에 멈췄다고 한다. 전설은 또 다른 전설로 이어져, 동네 여인네들 모두가 잠들면 내도를 향해 떠오는 또 다른 섬이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도 있다.

 

 

내도에서 만난 빛은 귀하고 신비로웠다

배에서 내린 나는 선착장과 선착장에 연결된 방파제, 선착장 뒤 펜션을 바라보며 적잖이 실망했다. 김명규 선장이 말한 ‘아시아의 아마존’하고도, 은근히 상상했던 작고 소박한 섬하고도 거리가 먼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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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도 숲 초입에는 동백나무와 삼나무가 어우러져 살고 있다.

선착장에 나온 최철성 자치위원장(55)에게 우선 섬을 돌아보고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국립공원 안에 있는 마을, 섬 전체가 사유지인 땅, 오랜 세월 사람이 살고 있는 섬에 특별한 기대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냥 그렇고 그런 섬일 거라고 미리 스스로를 위안했다.

 

내도 숲은 방파제를 왼쪽에 두고 5분쯤 걸으니 들머리가 나타났다. 내도 숲은 동백나무로 시작해 소나무로 끝난다. 동백나무 사이사이 감탕나무, 까마귀쪽나무, 육박나무 등 상록활엽수도 보이지만 그러곤 또 다시 동백나무다. 바다도 동백나무 사이로 보이고, 새도 동백나무에서 울고, 고라니도 동백나무를 헤치고 뛰어간다. 동백나무의 심연, 빽빽한 동백나무는 하늘도, 세상도 시야에서 차단한다.

 

그래서 그런가. 동백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은 빛답게 환하고 눈부셨다. 내도 동백나무 숲에서 빛은 귀하고 신비로운 존재였다. 동백나무의 정글인 내도 숲은 생태적 가치를 떠나서도 ‘아시아의 아마존’이라 부를 만한 묘한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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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나무 숲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귀하여 더욱 신비롭다.

 

국립공원이긴 하지만 국유지도, 특별한 보호지구도 아닌 내도 숲이 황홀한 동백나무 숲으로 유지된 이유가 뭘까? 대단한 무엇인가가 있을 듯 했다.

 

‘동백은 가지가 옆으로 퍼지잖아, 가지가 많은 데다가 단단하여 땔감으로는 좋은 나무가 아니야, 땔감으로 안 쓰다 보니 땔감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지, 뭐 특별한 건 없어.’ 마을 어르신은 신성함을 말하지 않았다. 살다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내도 숲에서 느껴진 자유로움과 충만함은 법이 아니라 일상의 삶이 보전한 숲이기 때문인가 보다.

 

동백나무 숲이 끝나면 소나무 숲이 나온다. 소나무 숲을 걷다보면 참식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이 보이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외도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내도 숲은 천천히 걸어 2시간쯤 걸린다. 2시간 동안 원 없이 동백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이 내도다.

 

동백섬이라 이름 붙여진 곳도 있고, 동백섬을 수식어로 달고 다니는 섬도 있지만 동백꽃이 피고 지는 춘삼월에는 그런 섬보다 오늘 와 본 내도에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은 여기서 봐야 제 맛이 날 것 같았다. 내도는 그렇고 그런 섬이 아니었다.

 

 

10년 후 내도는 어떤 모습일까?

내도선착장엔 ‘자연을 품은 섬, 내도’란 돌비석이 있다. 돌비석은 내도가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명품섬 BEST 10’에, 그리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추진하는 명품마을에 선정되며 일어난 작은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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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섬 BEST 10’과 명품마을로 내도 곳곳은 공사 중이다.

 

내도는 ‘명품섬 BEST 10’과 명품마을로 각각 25억 원, 5억 원을 지원받는다고 한다. 지원액을 듣는 순간, 나는 내도가 어떻게 변할지 걱정스러웠다. 명품섬 추진으로 내도에 닥칠 변화, 난개발을 걱정하는 나에게 최 위원장은 내도 사람들도 떼돈 벌 생각이 있는 건 아니라고, 다만 섬을 지키며 살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명품섬도 있는 걸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있는 그대로 유지하려 노력 중이라고, 다만 사람들이 와서 불편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고, 그러면 다시 올 것이고, 그래야 주민들이 살아갈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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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안전부 ‘명품섬 BEST 10’ 지원사업을 총괄하는 최철성 자치위원장.

 

내도의 동백나무 숲에 이미 마음을 빼앗긴 나는, ‘명품섬 BEST 10’도 좋고, ‘국립공원 명품마을’도 좋지만 돈이 섬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내도가 상혼에 오염됨 없이 동백나무와 더불어 언제까지고 소박하고 평화로운 섬으로 남아 있기를 빌면서 돌아 나오는 배에 올랐다.

 

글·사진 윤주옥/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 이글은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소식지 <초록 숨소리> 2012년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