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관매도 해송림
주민 살린 곰솔숲, 이젠 사람이 돌봐야 할 숲이 돼
▶관매도 해송림 전경. 겨울 북서풍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1600년대 조성한 방풍, 방사림이다.
“폭풍을 피해 관매도에 배를 대고 솔숲에 들어갔더니 촛불이 꺼지지도 않더랍니다.”
부친이 어업을 하는 강양호 진도군청 녹색산업과 관매도 담당자의 말이다. 관매도는 한반도의 서남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그러나 300여년 역사를 지닌 이곳의 해송림은 전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해안림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 숲은 또 앞으로 소나무 숲을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곳이기도 하다.
“모래 서 말 먹어야 시집 간다"
▶아침 해무가 내린 송림을 탐방객이 산책하고 있다.
지난 15일 찾은 관매도 해송림은 거무스름한 수피를 지닌 우람한 곰솔이 백사장을 따라 기다란 띠 모양으로 펼쳐져 있었다. 숲 안에 들어서니 파도와 바람소리가 뚝 끊기며 갑자기 아늑해진다. 소나무 숲의 폭은 무려 200m이고 길이는 2㎞에 이른다.
진도군은 1600년께 강릉 함씨가 이 섬에 들어와 마을을 일궜다고 설명한다. 소나무 숲은 주민들이 “살기 위해서” 조성했다.
해송림이 있는 해안은 북서풍이 불어오는 모래언덕이다. “관매도 처녀는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람 세고 모래 많은 곳이었다.
▶관매도 해송림은 애초 해안사구에 조성한 숲이다. 태풍 피해로 숲 가장자리가 허물어졌다.
모래밭 위에 솔숲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관매리 주민 이규종(76)씨는 “조상들이 억새 등을 엮어 만든 발로 바람을 막아 소나무 묘목을 길렀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문을 닫은 관매초등학교 근처에는 어른 두 아름은 되는 곰솔 거목이 있어 숲의 역사를 말해준다. 해송림 13㏊에는 모두 4600여 주의 소나무가 있는데, 가슴둘레가 평균 42㎝에 이르고 수령은 150~300년으로 추정된다.
▶해풍과 모래로부터 300여년 동안 마을을 지킨 늙은 소나무. 나무 줄기 위에 일엽초와 풍란이 자라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길러온 소나무들은 일본 강점기 때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이규종씨는 “전봇대로 쓰려고 곧고 굵은 소나무를 베어내 해변에 쌓아두었는데 전쟁이 끝나 그대로 썩어 버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해방 뒤 혼란과 가난 속에서 어떻게 솔숲을 지킬 수 있었을까. 주민 이현심(64)씨는 “마을에서 관리인을 두어 소나무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감시했지만 바람이 세 나뭇가지가 많이 떨어지는 날엔 숲을 열어 주민들이 땔감으로 쓰도록 했다”고 말했다.
병충해와 태풍 피해로 곰솔밭 ‘흔들’
▶관매도 해송림은 폭이 200미터에 이르러 다른 어떤 해안 송림보다 폭이 넓다. 염해를 입은 나무가 누렇게 죽어 있다.
정작 관매도 해송림의 위기는 다른 곳에서 왔다. 2004년 솔껍질깍지벌레가 번져 소나무의 30%가 죽었고, 수세가 약해진 숲에 소나무좀이 발생해 고사가 이어졌다. 지난해 태풍 무이파는 염해와 풍해를 불러와 아직도 숲 여기저기엔 누렇게 말라죽어 가는 소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해송림의 북쪽 절반은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솔숲을 지키려는 주민과 지자체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해에는 시민단체 ‘생명의 숲’이 주관하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을 받기도 했다.
동행한 김세진 호남생태정보센터 소장은 “관매도 해송림은 다른 해안 방풍림에 견줘 규모가 큰데다 공중의 습기에 의존해 사는 착생식물인 풍란과 일엽초가 자생하는 생태적 가치 높은 숲”이라고 평가했다.
▶고사리 등 하층식생에 뒤덮인 송림. 소나무림의 존립을 위해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림 속을 돌아다니는 붉은발농게.
▶꽃며느리밥풀
관매도 해송림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소나무가 주인인 숲을 유지하는 것이다. 과거 숲 바닥을 긁어 연료림으로 쓰던 때는 소나무 이외의 다른 나무가 전혀 없었다. 주민들은 “맨발로 숲 속을 다녀도 될 만큼 숲 바닥엔 아무 것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숲 바닥에 손을 대지 않자 팽나무, 사스레피나무, 예덕나무 등 난대수종이 무성한 하층식생을 이루게 됐다. 게다가 병충해로 빽빽하던 숲에 빈 틈이 생기고 소나무의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토양개량제를 뿌리자 하층식생은 더욱 세력을 늘릴 조짐이다.
김세진 소장은 “그대로 내버려두면 소나무숲은 수십년 안에 난대림에 자리를 내 줄 수밖에 없다”며 “소나무의 생육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이 있어 인위적인 간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나무숲을 유지하는 데 관리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강양호 진도군청 담당자는 “어린 소나무는 병해충에 쉽게 죽어 후계림 유지가 어렵고, 지난 10년 동안 국비를 포함해 10억원이 든 관리비용도 적지 않은 부담”이라고 말했다.
▶바다쪽에서 본 관매도 해송림 전경.폭 200미터의 곰솔숲이 길이 2킬로미터의 해변을 따라 조성됐다.
섬 주민들이 어렵게 만든 해송림은 주민의 삶을 지켜주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숲의 생존을 돌봐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진도 관매도/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관매도란 어떤 섬?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위치한 관매도는 한반도의 남서쪽 끝인 진도군 팽목항에서 다시 24㎞ 떨어진 면적 5.73㎢의 작은 섬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포함돼 있으며, 관매도 해수욕장을 포함한 관매 8경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올 봄 텔레비전 프로그램 <1박 2일>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주민들은 “태어나서 올해처럼 많은 사람이 오기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용능력은 300명인데 최고 하루에 1300명이 찾았다. 과거와 달리 관광객이 여름 성수기를 지나서도 오고 있고, 해수욕장을 문을 닫은 뒤에도 솔밭 트래킹 등 걷는 관광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126세대 212명의 주민이 상주하고 있다.
‘바람 난 섬’에 꽃피운 풍란…복원 노력 5년만에 첫 성과
▶올해 처음 꽃을 피운 관매도 복원 풍란(아래 연두색 작은 개체).지난 7월28일 관매초등학교 옆 곰솔 위에 붙어 자라던 풍란이 흰 앙증맞은 꽃을 피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희귀한 난이 인공증식된 이후 자연에서 처음으로 개화에 성공한 것이다.신원철 순천향대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환경부의 지원을 받아 2006년 인공 증식한 풍란 1만5000 포기를 해송 100그루에 부착했다. 그로부터 5년 만에 복원을 향한 첫 성과가 나타난 것이다.현장을 둘러본 신 교수는 “개화는 했지만 아직 열매를 맺지 않아 완전한 복원에 이르지는 못했다”며 “그러나 복원의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평가했다.자연에 증식한 풍란 개체가 씨앗을 맺어 어린 개체가 태어난다면, 지리산에 풀어놓은 반달가슴곰이 새끼를 낳은 것처럼 자생개체군이 생겨나는 것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멸종위기종 1급인 풍란으로서는 한 개체라도 귀하다.▶풍란과 함께 곰솔에 부착해 자라는 일엽초. 공기 속에 습기가 많고 바람이 많은 환경에서만 자란다.풍란은 우리나라 난 가운데 남획의 피해가 가장 심한 종이다. 남해안의 거제도, 거문도, 완도, 흑산도와 제주도 등에 자생했으나 관매도를 빼고는 모두 사라졌다.관매도에서도 2002년 50여 개체가 발견됐으나 이듬해 모두 사라져 섬의 다른 곳에서 구한 2~3개체로부터 씨앗을 받아 복원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처음 3년간 일본산 풍란 9000 포기로 예비 복원을 했을 때 절반이 사라졌고, 특히 사람 손이 닿는 2m 이하의 풍란은 거의 모두 떼어갔다.2006년 복원 때는 높이 3~5m에 부착해 사람 손을 타지 않도록 했다. 신 교수는 현재 약 70%가 살아 남았으며 피해는 주로 병충해와 태풍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풍란은 따뜻한 해풍이 불고 안개가 많은 남부 지방 바닷가 절벽이나 나뭇가지에 붙어 살며, 공중에 드러난 뿌리로 질소를 고정한다.관매도 풍란 복원은 주민의 참여로 이뤄져, ‘바람 난 섬’이란 브랜드를 만들어 생태관광을 추진하고 있고 주민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진도풍란보존회가 정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진도 관매도/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