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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펫 음높이에 숨은 과학

자운영 추억 2011. 8. 18. 10:17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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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빠라밤~ 빰빠빠 빰빠라밤~~”

축전이나 의식 등을 알릴 때 많이 들을 수 있는 팡파르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악기가 있다. 바로 팡파르의 시작을 알리는 트럼펫이다.

영화에서 옛날 군악대의 트럼펫 주자들이 연주하는 장면을 보면 그들의 트럼펫은 아무런 장치 없이 길고 밋밋한 관으로 만들어져 있다. 마치 남아공 월드컵에서 응원할 때 불던 ‘부부젤라’처럼 생겼다. 차이가 있다면 부부젤라가 ‘붕붕’거리는 하나의 음만 내는 것과 달리 트럼펫은 여러 개의 음들을 낸다는 것이다. 누를 버튼도, 피스톤도 없이 단순한 관으로만 이루어진 트럼펫으로 어떻게 서로 다른 높이의 음들을 만들 수 있을까?

악기에서 음높이는 시간당 공기가 진동하는 수인 주파수에 의해서 결정된다. 파장이 길면 주파수가 작아 낮은 음이 되고 파장이 짧으면 주파수가 커져 높은 음이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관악기의 음높이는 관의 길이에 의해 결정된다. 관악기는 관 속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데 관이 길면 그 파장이 길고 관이 짧으면 파장도 짧아진다. 때문에 긴 관은 낮은 소리를 내고 짧은 관은 높은 소리를 낸다. 예를 들어 같은 악기라도 1.3m 길이의 트럼펫은 ‘시 플랫(♭)’음이 나지만 이보다 좀 더 짧은 트럼펫은 한 음 높은 ‘도’음이 난다.

이렇듯 각각의 관이 갖는 기본음은 관을 불었을 때 관의 양쪽 끝에 배고리가 생기고 중앙에 마디가 있는 형태의 기본적인 파동에 의해 만들어진 소리다.


» 양쪽이 열려 있는 관을 불었을 때 나타나는 파동의 형태

하지만 실제로 관을 불면 이런 진동만 생기지 않는다. 미세하긴 하지만 관의 길이를 정수로 나눈 길이에 해당하는 다른 진동들도 일어난다. 이 진동들로 인해 그 줄어든 길이에 해당하는 음높이를 갖는 음들이 만들어 지는데, 이 음들을 기본음에 대한 배음(倍音, harmonics)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기본음이 낮은 도(c)음을 낸다면 정수비로 나누어지는 미세한 진동들에 의해 다음과 같은 자연 배음들이 나온다.

이론적으로는 어떤 음이 진동할 때마다 그 음과 정수비가 되는 주파수의 배음들이 함께 울리지만 워낙 미세한 진동이어서 여러 배음들을 따로따로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악기를 부는 힘을 조절하면 원래의 기준음이 들리지 않고 특정한 배음만 들리도록 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트럼펫 연주자들이 아무런 키를 누르지 않고도 여러 음을 만들어 내는 비밀이다.

예를 들어 트럼펫 연주자들은 국기를 계양할 때 연주되는 아래 악보의 선율을 배음만으로 훌륭히 연주할 수 있다.

트럼펫뿐만 아니라 호른, 트롬본, 튜바와 같은 금관악기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배음들을 연주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트럼펫 연주자들이 기본음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오히려 배음들의 소리를 더 쉽게 낸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긴 악기 전체를 공명시켜서 내야 하는 기본음을 불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펫은 이렇듯 여러 개의 배음을 낼 수 있지만 음계에서 보면 배음 사이에 빠진 음들이 많다. 때문에 다양한 선율을 연주하기 위해서 관의 길이를 몇 가지로 다르게 조정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게 됐다.

» 현대의 트럼펫은 3개의 피스톤으로 7개의 음을 낼 수 있다. 사진 출처 : SXC

피스톤을 부착해 관을 통하는 길을 열었다 닫았다 함으로써 관의 길이를 조절하는 장치가 그것이다. 세 개의 피스톤을 하나씩 누르거나 둘 또는 세 개를 모두 누르는 식으로 그 방식을 달리한다면 서로 길이가 다른 7개의 관을 얻는 셈이 된다.

바로 이것이 건반악기라면 수십 개의 건반으로 연주해야 할 음악을 트럼펫은 세 개의 피스톤만 가지고도 연주할 수 있는 과학적 원리이다. 우리가 트럼펫의 낭랑하고 시원한 음색의 화려한 선율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트럼펫 안에서 과학과 음악이 만났기 때문이다.

글 : 민은기 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