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완연한 남도의 섬을 찾아갔다. 남녘에는 동백꽃 만발한 섬이 부지기수이지만, week&은 올 봄 전혀 다른 매력의 두 섬을 골랐다. 경남 통영 수우도와 전남 완도 보길도다.
수우도는 남해안에 있는 작고 조용한 섬이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고 구멍가게도 없는 이 궁벽한 섬이 봄이 되면 동백꽃으로 붉게 물든다.
북적거리는 관광지를 벗어나 한갓진 섬에서 봄을 맞고 싶다면 제격이다.
반면에 보길도는 익히 알려진 봄 여행 명소다. 보길도에서는 동백이 어우러진 배경조차 근사하다. 윤선도가 가꾼 정원, 파도소리 아름다운 몽돌해변이 봄날의 정취를 북돋는다.
수우도 가장 먼저 봄이 찾아오는 섬
“여행기자가 우째 수우도를 모르나. 이쪽에서는 억수로(엄청) 유명하데이.”
한려해상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 있는 지인에게 봄 여행지를 추천해 달랬다가 핀잔만 들었다. 지심도·욕지도·내도 등 남해에는 동백으로 유명한 섬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수우도라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남해에서 가장 빨리 봄이 오는 섬’이라고 소개한 글 몇 개가 보였다. “백 패커의 천국”이라는 글이 가장 많았다. 백 패커가 좋아한다는 건, 섬에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뜻도 된다.
경남 사천 삼천포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만에 도착했다. 섬은 아담했다. 면적이 약 1㎢로, 지척에 있는 사량도나 남해도에 비하면 손바닥만 했다. 섬에서는 수우도를 동백섬이라고 불렀다. 토박이 김영근(56)씨가 섬 이름을 풀어줬다.
“수는 나무 수(樹) 자인데 바로 동백나무를 뜻하는 기라예. 동네 뒷산(은박산)이 전부 동백아입니꺼. 우(牛) 자는 섬이 소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예.”
섬 중앙에는 폭이 2m쯤 되는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민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한때 40여 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23가구만 남았단다. 그래서인지 폐가가 많았다. 사량초등학교 수우도분교도 2008년 문을 닫았다. 이 학교는 올 여름 숙박시설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수우도가 2014년 행정자치부로부터 ‘찾아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돼 조만간 리모델링에 들어간다고 한다. 학교 옆에는 왜구를 물리쳤다는 설운 장군을 모신 사당도 보였다. 수우도에서 ‘인어장군’으로 불리는 전설 속 인물이다.
봄을 찾아 섬을 한바퀴 돌았다. 아니 찾아 다닐 필요도 없었다. 이미 수우도에는 봄이 내려앉아 있었다. 서울은 영하의 날씨였지만 수우도, 아니 동백섬에는 봄이 성큼 와 있었다. 서울보다 5도 이상 높은 기온 덕분이었다.
마을에서 몽돌해변까지 10분 남짓 걸어가는 길에도 동백나무 20여 그루가 모조리 꽃망울을 터뜨렸다. 한국전력 수우도 분소 앞의 동백나무는 온통 붉은 화장을 한 듯했다. 키가 10m는 넘어 보였는데 모두 수령 40년은 된 나무라고 김씨가 설명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더. 3월 중순이면 정말로 뻐얼겋습니더.”
은박산(189m) 능선과 등산로를 따라 동백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수우도를 왜 동백섬이라 하는지 알 만했다.
산 정상부 너럭바위에 앉아 봄을 감상했다. 따사로운 봄 기운이 몸을 파고들었다. 햇볕에 반짝이는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은근히 졸음이 몰려왔다. 웅크렸던 가슴을 활짝 열고 봄을 맞이했다. 겨우내 쌓였던 응어리 같은 게 빠져나간 것처럼 시원했다. 온몸이 초록으로 물든 느낌이었다.
섬을 한바퀴 돌고 다시 선착장으로 내려오니 작은 어선에서 한 아주머니가 내렸다. 마을 앞바다 홍합 양식장에서 작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온종일 고된 노동으로 허리조차 제대로 펴지 못했다.
“이제 홍합 따는 것도 끝물입니더. 봄이 오긴 온 모양입니더.”
홍합 채취와 봄이 무슨 상관일까. 김영근씨가 설명했다. “서울에서 언제 홍합을 많이 먹습미꺼. 겨울아입니꺼. 날씨가 따뜻해지면 홍합을 덜 먹지예. 바로 봄인기라예.”
삼천포항으로 가는 배가 도착하자 김씨가 큰소리로 외쳤다. “3월에 꼭 한번 더 오이소. 봄이 끝내 줍니더.”
보길도 윤선도가 가꾼 지상 낙원
해남 땅끝선착장을 출발한 배는 30분 만에 노화도 산양항에 도착했다. 내비게이션에 ‘세연정’을 입력했다. 보길대교를 건너 목적지에 닿았다. 세연정은 고산 윤선도(1587∼1671)가 보길도 부용리에 꾸민 원림(園林), 즉 인공 정원이다. 고산은 51세에 제주로 가다가 보길도를 발견하고 눌러앉았다. 아름다운 산세에 반해서였다. 이후 전국 각지로 유배를 다니다 이 섬으로 돌아와 85세에 숨을 거뒀다. 세연정 입구에 좌판을 차린 할매가 말을 걸었다.
“서울서 왔는가? 안 사도 됭께, 이거 하나만 먹어봐.” 할매가 간장에 졸인 전복 한 조각을 돌김에 얹어 건넸다.
“미역은 지금 것이 제일이여. 이것도 한 입 먹어보랑께.” 다른 할매는 미역을 건넸다. 맛도 맛이었지만 남도 인심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자동차 트렁크에 김과 톳, 미역을 한 보따리씩 실었다.
세연정은 이미 봄이었다. 입구부터 동백꽃 흐드러진 숲이 빽빽했다. 낙화한 동백이 붉은 융단을 깔았고, 청록빛 연못 ‘세연지’는 따뜻한 봄 햇살에 보석처럼 반짝였다. 직박구리와 곤줄박이가 정신없이 지저귀며 동백 숲을 들락거렸고, 온몸이 파란 물총새가 연못 위를 날았다.
보길도 여행을 하면서 윤선도를 빗겨갈 순 없었다. 마침 임자를 만났다. 함께한 문화해설사 윤창하(77)씨가 고산의 10대 손이었다. 윤씨는 “고산은 훌륭한 문신(文臣)이었을 뿐 아니라 예술과 과학에도 능통한 천재였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세연정을 보면 그랬다. 홍수가 나도 연못이 넘치지 않도록 보를 만들어 물길을 이리저리 틀어 놓은 것이나, 연못을 파다가 나온 바위를 조형적으로 활용한 것은 지금 봐도 기막힌 발상이었다. 한국 3대 원림으로 꼽는 이유를 알 만했다.
더 깊이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부용리는 보길도에서 드물게 밭농사를 하는 분지 마을이다. 이곳에도 고산의 유적이 많았다. 해발 약 100m 산 중턱 기암괴석 위에 만든 정원 동천석실(洞天石室)이 특히 근사했다. 동백숲을 지나 10여 분 산길을 오르니 방 한 칸짜리 집 두 채로 구성된 동천석실이 나왔다. 여기서 굽어본 마을 풍경은 아늑했다. 고산도 이 풍경에 반했을 터였다.
보길도는 섬 대부분이 산지다. 난대림이 섬을 뒤덮고 있다. 난대림은 겨울에도 평균 기온 0도 이상인 지역에 형성된 삼림이다. 하여 보길도의 산과 숲은 사철 푸르다. 동백 외에도 녹나무·황칠나무·후박나무 등이 보길도에 많은 난대림 종이다. 모두 동백나무처럼 잎사귀는 기름을 칠한 듯이 미끈하고, 나무 줄기는 결이 없어 매끈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도 있다. 섬 남동쪽 예송리 상록수림이다. 예송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전망대에 서니 초승달 모양의 해변 뒤쪽에 가림막처럼 길게 늘어선 푸른 숲이 보였다. 동백과 각종 난대림 우거진 숲 안은 찬찬히 산책하기에 좋았다. 바로 앞 몽돌해변에서는 한 가족이 물수제비를 뜨고 있었다. 바닷가에 털썩 앉아 눈을 감고 파도가 몽돌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감상했다. 시르르, 차르르. 봄볕 내리쬐니 마냥 나른해졌다.
공룡알해변이 있는 보옥리도 찾아갔다. 이곳의 몽돌은 공룡알, 아니 사람 머리만했다. 해변 뒷편에도 동백나무 우거진 숲이 있었다. 공룡알 같은 돌에 동백꽃이 툭툭 떨어져 있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붉은 생명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