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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때아닌 봄날의 폭설이 쏟아진 전남 구례의 지리산 만폭대 아래 위안제에서 만난 설경. 아름다움 경관 앞에서 ‘숨이 막힐 듯하다’는 표현은 이런 때 하는 것이겠다. 겨우내 꽝꽝 언 저수지의 얼음이 풀린 뒤라 수면 위로 눈을 이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거울처럼 수면에 찍혔다. 이런 풍경은 이른 봄에만 볼 수 있다. 사진 오른쪽이 산수유나무인데 꽃의 노란 빛깔이 모두 눈 속에 파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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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여행의 행로는 ‘선(線)’으로 이어집니다.
때로 점(點)이나 면(面)에 머물 때 여행은 더 깊어지는 법이지만, 봄꽃을 따라가는 여정만큼은 꽃향기를 쫓아 소요하듯 선처럼 흘러야 제맛입니다. 그 행로의 길잡이가 되는 건 바로 남도 땅에서 부드러운 굽이를 이루는 섬진강입니다. 봄볕으로 따스해진 섬진강이 지리산 아랫마을 구례에서 광양과 하동을 굽이치면 그 물길을 따라 계절도 흘러갑니다.
마침 지리산 만폭대에 때아닌 폭설이 쏟아졌지만, 이제 퍼붓는 눈발로도 계절은 막을 수 없습니다. 겨우내 쌓인 눈은 봄의 훈김에 녹아 섬진강으로 흘러들었고, 그 강물을 빨아들여 촉촉해진 가지마다 봄꽃이 만발했습니다. 구례의 산수유는 절정을 향하고, 광양과 하동의 매화도 이제 지천이었습니다. 봄꽃을 따라 더 멀리 여수까지 이은 길 끝에서는 동백이 봄의 입구에서 후드득 꽃을 떨구고 있었습니다. 남도의 가장 아름다운 봄날이 이제 시작된 것입니다.
# 구례에서 봄꽃을 따라 출발하다
해마다 봄이면 ‘도리없이’ 다시 섬진강이다. 감히 어떤 곳이 봄날의 섬진강을 넘볼 수 있을까. 물고기비늘처럼 반짝거리는 섬진강 청류를 따라가는 이른봄 꽃구경에 견줄만한 봄맞이가 또 어디 있을까. 섬진강의 봄꽃이라면 우선 산수유와 매화다. 봄날 섬진강에 갔다면 산골마을을 휘감은 노란 꽃구름 같은 구례의 산수유만 보고 온다거나, 순백의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는 광양의 매화 하나만 보고 올 수는 없는 일이다. 매화와 산수유는 한 두름으로 엮인다. 최소한 섬진강변에서는 그렇다. 본디 개화 순서로 따지면 매화 다음이 산수유지만, 이태 전부터인가 이게 도무지 순서가 없다. 지난해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꽃송이가 터지더니만, 올해는 매화가 이르게 피었지만 지난주쯤 뒤따른 산수유에 거의 다 따라잡혀 버렸다. 그러니 이번 주말부터는 섬진강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매화와 산수유를 두루 다 보고 오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겠다.
꽃향기를 따라가는 여행의 출발지점으로 삼기에 맞춤한 곳이 지리산의 아래 전남 구례다. 구례의 봄꽃은 단연 산수유다. 산수유는 꽃 속에서 다시 꽃송이가 폭죽처럼 터진다. 꽃송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뜻을 금세 안다. 둥글게 뭉쳐 꽃술처럼 보이는 게 실은 꽃이어서 그게 봄볕에 속눈썹처럼 툭 터진다. 산수유꽃은 거친 수피의 가지에 듬성듬성 피어나 한그루 한그루만으로는 볼품이 없지만, 아름드리나무의 가지 끝에서 무리 지어 피어나면 흡사 파스텔로 그려낸 몽실몽실한 노란 구름과도 같다. 현란하게 피어나는 꽃이 향내가 없길래 망정이지, 노란빛에 걸맞은 향이라도 가졌다면 그 아찔함을 어떡할 뻔했을까.
구례에는 샛노란 산수유로 꽃담을 삼은 마을이 여럿이다. 자그마한 저수지를 끼고 있는 현천마을도, 유독 늙은 산수유가 많은 계척마을도 노란 산수유 하나만으로 꽃대궐을 이룬다. 하지만 구례에서 가장 대표적인 산수유의 명소는 바로 산동면 상위마을 일대다. 구례로 산수유꽃을 보러 간다면 십중팔구 상위마을을 찾게 된다. 지리산 만폭대 아래라 해발고도가 높아서 다른 곳보다 꽃은 저 아래보다 닷새쯤 늦지만, 푸른 이끼의 돌담과 맑은 개울을 끼고 피어나니 그 정취가 그만이다. 봄꽃 중에서 산수유는 저홀로 피어난 것보다 사람 사는 마을의 오래된 돌담에 피어나야 제맛이다. 저홀로 숲을 이뤄 피었을 때보다 돌담 골목과 집들을 휘감으며 어우러져 피어난 마을의 산수유꽃이 더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산수유 농사란 게 난리통에 산중으로 밀려난 주민들의 생계와 바꾸던 더없이 고된 노동이어서 그렇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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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의 최참판댁 위쪽 한산사에서 고소산성으로 오르는 길. 지난겨울 큰 추위가 없었던 탓에 가을의 단풍이 여태 가지마다 매달려있고 바닥에는 낙엽이 수북했다. 그 길을 걷는 내내 마치 가을의 한복판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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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만폭대 아래서 만난 봄날의 설경
지리산 만폭대 아래 상위마을에는 이즈음 만날 수 있는 최고의 호사라면 산수유꽃과 흰 눈이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상위마을에는 봄에 때아닌 눈이 내리는 날이 드물지 않다. 마을 뒤편 지리산의 서부능선은 완연한 봄날에도 자주 순백의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산 아래쪽의 산수유 꽃잎에 봄비가 동그르르 구를 때면 어김없이 지리산 만폭대의 능선은 온통 눈부신 겨울의 설산이 된다. 노란 꽃과 흰 눈이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이 펼쳐 보여주는 건 낯선 미감이다.
지난주에 상위마을을 찾아간 날도 그랬다. 전날부터 보슬거리던 봄비가 구례에 당도할 무렵에는 새벽에 진눈깨비로 바뀌는가 싶더니, 상위마을로 들어서자 이내 탐스러운 함박눈으로 쏟아졌다. 봄기운 완연한 3월 중순의 남도 땅에 이 무슨 변고인가 싶겠지만, 지리산 아랫마을에는 이런 날들이 흔하다. 3월 말까지도 눈이 내리는 일이 잦은데 어떤 해인가는 4월 초까지 눈이 내려 제법 쌓였다고 했다. 마을로 드는 길가의 산수유나무 가지마다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3월의 눈치고는 많은 편이어서 아예 꽃이 눈 속에 파묻혀 버렸다.
이런 날이면 카메라를 든 이들이 상위마을 아래 서시천의 물길이 흘러내리는 반곡마을 쪽으로 모여든다. 서시천의 물길을 따라 만발한 노란 산수유꽃과 그 너머의 지리산의 설경을 한 장의 사진 안에 담기 위해 눈 소식을 기다렸던 이들이다. 산수유꽃과 설경은 카메라가 없이 눈으로만 바라본대도 감탄사가 절로 나는 풍경이다. 하지만 더 근사한 설경은 마을 위쪽의 저수지 위안제에서 만날 수 있다. 눈이 내리면 지리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을 가둔 위안제 주변의 숲은 온통 설국이 된다. 눈으로 덮인 숲과 일대의 전경이 진즉 얼음이 풀린 저수지의 수면 위로 데칼코마니처럼 선명하게 찍히는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한 치도 부족함이 없다. 눈이 그치고 햇볕이 들면 가지에 얹힌 눈들이 풀썩거리며 떨어져 이내 다 녹아버려 사라지고 말 풍경이어서 더 감동적인지도 모르겠다.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서둘러 제방을 끼고 올라가 위안제의 설경을 마주하고서 그만 말을 잊고 말았다.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엄격하게 통제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위안제의 설경은 울타리 너머로 바라본 풍경은 마음속에 도장처럼 찍혀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폭설에 파묻혀버리긴 했지만 위안제 주변에도 산수유 꽃이 피었다. 이곳의 산수유나무는 나라 안을 통틀어 가장 높은 지대에서 자라는 것들이다. 거기 집을 짓고 산수유를 심어 거두던 이들은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오래전에 뿔뿔이 흩어졌지만, 산수유는 남아서 봄이면 꽃을 피운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반달곰이 지리산의 반달곰이 어슬렁거린다. 지난가을, 도토리가 채 여물기 전에 반달곰 한 마리가 양봉업자와 대치하다가 벌통을 탈취해가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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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의 섬진강변 차밭 주위로 활짝 피어난 백매. 섬진강 건너 전남 광양이 촘촘히 피어난 매화만으로 화려한 꽃대궐을 이루고 있다면, 강 이쪽 하동의 매화는 성글긴 하지만 차밭의 초록과 함께 어우러져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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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의 매화가 저마다 품은 색깔들
봄꽃을 따라가는 여정에서 산수유 다음 순서는 매화다. 구례의 들판을 굽이쳐 흘러온 섬진강은 화개장터쯤에서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가 된다. 섬진강을 경계로 북쪽이 경남 하동 땅이고, 남쪽은 전남 광양 땅이다. 구례에서 흘러온 섬진강 물길의 양옆으로 두 개의 길이 나란히 이어진다. 북쪽 하동 쪽으로 난 길이 19번 국도이고, 남쪽 광양 쪽으로 난 길은 861번 지방도다. 팝콘처럼 터진 매화를 보겠다면 하동 쪽보다는 광양 땅의 861번 국도를 따라가는 게 옳은 선택이다.
섬진강을 따라가는 도로 인근의 매화는 일찌감치 절정을 넘어섰다. 일찌감치 꽃을 틔운 것 중에서는 벌써 꽃잎을 분분히 날리며 져가는 것도 있다. 여러 겹의 꽃잎이 화려한 만첩 홍매는 개화가 일러서 몇 그루만 남기고 이미 다 져가고 있다. 강변 구릉의 절반 아래쪽의 매화도 절정에 달했고, 그 위쪽은 이제 막 수런거리며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같은 매화라도 저마다 빛깔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백매와 홍매야 색깔만으로 확연하게 차이가 나고, 중간 색조의 고운 분홍빛의 매화도 구분이 쉽다. 하지만 같은 백매화라도 꽃받침이 붉은 것과 녹색 두 가지가 있는데, 꽃받침의 색 때문에 꽃의 빛깔이 미묘하게 다르다. 같은 백매도 붉은 꽃받침의 꽃은 설명할 수 없는 붉은 기운이 느껴지고, 초록 꽃받침은 푸른 기운이 감돈다. 유심히 살피면 화르르 피어난 매화를 먼발치에서 본다 해도 꽃받침이 어떤 색인지 금세 짐작이 간다. 꽃받침이 녹색인 흰 매화를 두고 그냥 ‘백매’라고 부르기도 하고, 더러는 ‘청매’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사람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라 영 헷갈린다.
광양에서 매화가 가장 흐드러진 곳이 바로 섬진강변의 청매실농원이다. 1만여 그루가 넘는 매화나무가 그득한 청매실농원은 매실을 거두는 농원이지만, 정작 거두는 매실보다는 맑은 빛의 백매화의 정취와 잘 다듬어낸 조경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일찌감치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음에도 농원 주인은 단 한 번도 입장권을 받으려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봄나물과 묘목을 가져다 좌판을 펴는 동네 할머니들도 기꺼이 농원 안으로 품어 자리를 내준다. 그 바람에 농원 아래 도로변에는 장사꾼들이 모여들어 트로트를 소리높여 틀어놓고 술이며 안주 따위를 팔고 있어 영 소란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장독대 너머로 섬진강이 펼쳐지는 농원 안으로 들면 매화의 그윽한 향과 대숲의 청량함을 맛볼 수 있다.
매화가 품은 정취의 삼분의 일쯤은 향기로 맡아야 한다. 매화 향은 부드럽고 은은하지만 그 내음이 흐릿하지 않고 명료하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매화 꽃 터널 속에서도 향을 맡을 수 없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코끝을 스치는 달큼한 내음만으로 주변에서 매화를 찾아낼 수 있을 정도다. 매화의 향기를 일러 ‘암향(暗香)’이라고 부르는 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 싶다.
# 먹점마을 매화, 고소산성에서 본 섬진강
광양에서 섬진강 건너편은 경남 하동이다. 하동에서 섬진강을 따라가는 19번 국도는 우람한 아름드리 벚꽃의 터널이다. 벚꽃은 아직 멀었어도 대신 하동에는 초록의 차밭이 있다. 섬진강변까지 주르륵 흘러내려 온 차 이랑과 한데 어우러지는 하동의 백매는 광양의 그것과는 느낌이 또 다르다. 하동은 광양보다 매화가 띄엄띄엄하지만, 지리산 자락 깊숙이 들어가면 광양 못지않은 매화마을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지리산 자락 구제봉 중턱에 자리 잡은 산간마을인 먹점마을이다. 먹점마을에 피어나는 매화는 강 건너 광양의 농원의 매화와는 달리 달리 휘어진 흙길과 오래된 집, 그리고 다랑이밭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먹점마을은 구제봉의 가파른 능선을 힘겹게 치고 올라가는 해발 400m 고지에 있다. 황토흙을 이겨 바른 집이 있고 오래된 돌담이 있는 마을에서는 오래전 산골마을의 정취가 오롯하다. 이곳의 매화는 대부분 토종. 개량종처럼 꽃이 다닥다닥 피지 않아 화려하진 않지만 빈 화선지에 드문드문 찍어낸 물감이 번지듯 마을 주변에 화르르 피어난다. 먹점마을로 오르는 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붉은 기운의 꽃받침으로 꽃잎이 발그레한 매화들이 한쪽 경사면을 따라 가득 피어난 모습이었다.
하동에서 봄날의 으뜸가는 명소로 꼽히는 곳은 소설 ‘토지’의 무대를 재현한 최참판댁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최참판댁은 세트장에 불과하다. 그보다 하동에서는 형제봉 자락의 한산사에서 악양의 들판 풍경과 고소산성을 더 쳐줄 수 있겠다. 악양 들판의 보리밭은 띄엄띄엄하고 아직 논과 밭은 비어있지만, 봄이 더 무르익어 자운영이 피어날 무렵이면 들판 한가운데 두 그루 소나무가 어우러지면서 가장 아름다운 들판을 보여준다. 산도 아니고 강도 아닌, 들판이 이렇듯 아름다울 수 있음이 새삼스럽다.
한산사 위쪽에는 가야시대의 산성인 고소산성이 있다. 한산사에서 제법 가파른 산길을 따라 20분 남짓을 걸으면 산성에 오를 수 있다. 고소산성이 빼어난 건 거기서 섬진강의 물굽이와 악양의 들판을 함께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성을 따라오르는 산길은 난데없는 가을분위기다. 지난 겨울추위가 덜해서 그럴까. 단풍이 아직 가지끝에 매달려있고 발밑으로는 낙엽이 수북하다. 산성에서 보는 섬진강은 화려하거나 빼어나지 않다. 오히려 수더분하고 밋밋하다. 사실 그게 섬진강이다. 이렇게 멀리 물러나서야 비로소 섬진강이 오래된 강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오동도의 동백, 그리고 봄의 맛
봄꽃 따라 나선 여정을 광양이나 하동에서 마무리하기에 아무래도 아쉽다면 전남 여수 쪽으로 길을 이어보는 건 어떨까. 이순신대교가 놓이면서 광양에서 여수까지는 금방이다. 여수에는 아시다시피 봄날이면 동백꽃 후드득 떨어지는 오동도가 있다. 오동도의 어둑한 숲에는 동백나무 300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선홍빛으로 불타는 동백이 가장 아름답게 피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낙화는 시작된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모가지째 떨군 꽃으로 낭자한 숲길을 걷는 맛을 어디에다 댈까.
동백섬을 찾는 이들이 빠뜨리지 않는 곳이 오동도 등대다. 6·25전쟁 당시인 1952년 5월 처음 불을 켠 등대다. 본래 둥근 철근콘크리트 건물이었으나 지난 2002년 다시 27m 높이의 우람한 팔각형 등대로 다시 세워졌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단숨에 남해바다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등대의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등대까지 갔다면 등대주변의 해장죽 숲 터널을 꼭 걸어보자. 척척 휘어진 해장죽 터널을 걷는 기분은 동백 숲과는 또 다르다.
꽃구경의 행로를 여수까지 길게 이은 까닭 중의 하나는 봄맛 때문이기도 하다. 여수에서는 이즈음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금풍생이 구이도 맛볼 수 있다. 금풍생이는 딱돔의 일종으로 주로 구이로 해먹는다. 이름만큼이나 우리를 정겹게 하는 것은 이 생선의 별칭. 여수의 아낙들이 남편에게는 구워주지 않고 아껴두었다가 애인에게만 내놓는다고 해서 ‘샛서방고기’라고도 불린다. 서대를 썰어낸 서대회나 붕장어구이도 여수의 봄 별미로 꼽힌다. 서대의 부드러운 살에 막걸리 식초, 설탕의 새콤달콤함이 어우러져 산뜻한 맛을 낸다. 붕장어는 소금구이와 양념구이로 나뉘는데, 소금구이를 맛본 뒤 양념구이를 주문하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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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상위마을 가는 길 = 호남고속도로 익산 갈림목에서 익산∼포항 간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가다 완주갈림목에서 다시 완주∼순천 간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구례화엄사 나들목으로 나간 뒤 용방교차로에서 좌회전한다. 이어 산동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지리산온천랜드가 나온다. 여기서 서시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반곡마을, 하위마을을 지나 상위마을에 닿는다. 상위마을의 자그마한 저수지 위안제는 산수유펜션을 가늠해서 찾아가면 된다. 산수유펜션 옆으로 위안제로 이어지는 시멘트도로가 있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봄꽃 따라가는 여정을 전남 여수까지 이은 것은 숙소와 먹거리 때문이기도 하다. 한때 ‘여수읍장’으로 불리던 서시장 주변에는 서대회, 금풍생이 구이 등을 내는 맛집들이 몰려있다. 서대회는 구백식당(061-662-0900), 장어탕은 산골식당(061-642-3455), 한정식은 한일관(061-654-0091)이 손꼽히는 맛집이다. 여수에서 숙소는 단연 엠블호텔 여수다. 여수엑스포 개막과 함께 지난 2012년 문을 연 특1급 호텔 엠블호텔 여수는 311개의 전 객실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숙소의 창밖으로 여수 밤바다를 내려다보는 낭만을 즐길 수 있고, 오동도와 남해바다 사이로 떠오르는 해도 침대에서 볼 수 있다. 스탠다드 객실뿐만 아니라 디럭스, 스위트, 노블리안스위트 등 고급객실도 두루 갖추고 있다. 특히 17층부터 20층까지 48실은 스페인, 아랍, 일본 등을 테마로 인테리어를 마감하고 각종 소품까지 배치해 고급스럽게 꾸며놓았다. 여수엑스포 당시 국빈들의 만찬장소였던 26층의 스카이라운지 ‘마레첼로’는 경관뿐만 아니라 음식도 좋다. 식사가 부담스럽다면 치즈퐁뒤 등으로 구성한 애프터눈티세트와 스파클링 와인이 제공되는 샴페인 프로모션세트도 있다. 3월 말까지 아드리아 레스토랑에서는 생맥주를 무제한 제공하는 디너뷔페 이벤트를 진행하고, 테라피 메뉴와 샐러드바 이용을 묶은 런치 스페셜 메뉴도 내놓고 있다. 디너뷔페 이용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100만 원 상당의 해외여행권과 객실 무료숙박권, 무료식사권 등을 증정한다. 런치스페셜은 건강식 메뉴 주문 시 샐러드바를 함께 이용할 수 있다. 봄꽃 여정의 첫머리인 전남 구례 쪽에서 숙박을 잡는다면 상위마을의 산수유펜션(061-783-9114)을 추천한다. 섬진강변의 광양과 하동에서는 재첩국과 참게매운탕이 이름난 먹거리다. 참게를 껍질째 갈아 곡물을 넣고 함께 끓여내는 부드러운 참게가리장도 이색적인 맛이다. 광양의 청매실농원 인근과 하동쪽 19번 국도변에 참게와 재첩을 내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즈음에는 대부분의 식당들의 맛이 평준화돼 어디를 딱 집어 선택하는 게 그다지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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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광양·하동·여수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게재 일자 : 2014년 3월 19일 수요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