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서 꽃피운 풍수, 동아시아 전통지식으로 주목…제1회 아시아 풍수 학술회의 열려
동구릉, 신륵사, 보룡마을 둘러보며 현대화 가능성 공감, "아시아 공유 가치로 키워야"
» 조선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 태조 이성계의 왕릉 건원릉에서 바라본 전경. 풍수의 요건을 두루 갖춰 부드럽고 안온한 느낌을 준다. 이곳에 묏자리를 정한 뒤 시름을 덜었다는 뜻에서 ‘망우리’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성계의 뜻을 따라 봉분에는 억새가 자란다.
지난 25일 조선 왕조를 일으킨 태조 이성계가 묻힌 건원릉에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에서 풍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였다. 봉분(능침)이 있는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이들은 하나같이 “아, 좋다!”라는 탄사를 내놓았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을 대표하는 곳이다. 동구릉에서 가장 먼저 1408년 조성된 건원릉은 태조의 묏자리를 찾아 전국의 명당을 뒤진 끝에 고른 최고의 길지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이란 뒤에 찬바람을 막아 줄 큰 산이 있고 앞은 탁 틔어 햇볕이 잘 들며, 좌우 양쪽에는 낮은 산자락이 비바람을 막아주고 포근하게 둘러싸인 안쪽을 냇물이 휘감아 흐르는 곳이다. 이른바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의 사신사를 갖춘 배산임수의 지형을 가리킨다.
»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의 지은이 이현군 박사가 회의 참가자에게 동구릉의 옛 지도로 지형을 설명하고 있다.
건원릉은 주산인 검암산 산줄기가 내려오다 봉긋 솟아오른 봉우리 조금 아래 위치한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안온하고 전망이 좋다. 최원석 경상대 교수는 “조선 최고의 명당 형국을 갖추었다. 앞에 놓인 안산이 다섯 겹의 산줄기로 생명의 기운을 가두는 형상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풍수 연구자들이 명당을 구경하러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아니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소장 강명구 교수) 등이 주관해 24~26일 동안 열린 제1회 아시아 풍수 학술회의 참가자들은 풍수가 동아시아 각국에서 어떤 차이와 공통점이 있는지 알아보고 이를 지속가능한 토지관리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는지 논의했다.
건원릉에서도 즉석토론이 벌어졌다. 량뤄후이 일본 국제연합대학 학술연구관은 “중국에서도 왕릉을 산 중턱에 만들지 평지에 조성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늘 남향은 아니며 지역적 상황을 고려한다”고 말했다.
린 쥔촨 대만대 교수도 “한국의 왕릉이 산자락의 능선에 자리 잡는다면 중국은 능선과 능선 사이의 평지에 만드는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 건원릉 옆에서 본 전경.
시부야 시즈아키 일본 중부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왕릉을 일반 건물처럼 평지에 만들기 때문에 풍수가 조성원리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키나와에는 풍수의 영향이 분명히 남아있는 곳이 있다. 천비샤 일본 유구대 교수는 “오키나와에도 왕릉을 전망 좋은 높은 곳에 조성하지만 방향은 반드시 토착 종교의 영향을 받아 서쪽을 향한다”고 말했다.
풍수는 중국에서 기원했지만 동아시아는 물론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까지 번져나갔고 지역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며 응용됐다.
» 지난 24일 서울대 아시아센터에서 열린 젭회 아시아 풍수 학술회의에 동아시아 풍수 연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활기찬 토론을 벌였다.
량뤄후이 박사는 24일 서울대에서 열린 학술회의 주제발표를 통해 중국 운남성의 소수민족 하니족이 아이랴오산 중턱에 자리 잡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바탕은 풍수에 따른 전통지혜라고 주장했다. 계단식 논으로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기도 한 하니족 마을은 북향이란 점만 빼면 풍수의 명당 입지이다. 량 박사는 “추운 북풍이 불지 않고 오히려 마을 북쪽에 있는 강에서 수분을 날라오기 때문에 풍수를 이렇게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오키나와는 독립국가였던 약 300년 전에 풍수를 국가 정책으로 도입했다.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다’는 장풍득수의 풍수 원리는 태풍이 잦고 평지가 많은 오키나와에서 집이나 마을을 숲으로 둘러싸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구불구불한 녹색 회랑으로 마을과 집을 잇는 이런 독특한 풍수 경관은 2차대전 뒤 거의 사라지고 현재 타라마 섬 등 일부 지역에만 남아있다고 천비야 교수는 밝혔다.
» 학술회의에서 기조강연을 한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며 흠 있는 땅을 고치는 자생 풍수의 특징을 설명했다.
중국이 풍수 이론을 만든 기원지라면 우리나라는 그것을 꽃피운 나라였다. 최원석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풍수의 영향은 불교와 유교보다 강력했고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풍수가 일본에서 문화적 요소의 하나로, 오키나와나 베트남에서 공간적 패러다임을 제공했다면, 우리나라에는 문명사적 전환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날 기조강연에서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한국 풍수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개벽사상과 비보를 들었다. 풍수는 엘리트뿐 아니라 일반 백성에게 널리 퍼졌으며 홍경래에서 전봉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세상을 여는 명당이 있었다. 비보는 풍수에서 부족한 부분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중국에도 비보는 있지만 한국만큼 다양하고 풍부하지는 않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형적 풍수마을의 하나로 꼽히는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보룡1리의 비보숲. 느티나무로 풍수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학술회의 참가자들이 찾은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보룡1리는 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형적인 풍수 마을로 꼽는 곳이다. 이 마을은 마을 들머리(수구)가 허술한 것을 빼면 완벽한 풍수 형국을 갖추었고, 이곳에 터를 잡은 무안 박씨는 느티나무로 마을숲을 만들어 그것을 보완했다. 또 부족한 좌청룡 산줄기에는 상수리나무를 심어 보했고, 수구막이 숲 밖에는 연못을 조성했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수구막이와 연못 등의 비보를 통해 이 동네 생태계가 문을 닫은 것처럼 물질 순환을 이뤄 지속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수구막이 숲은 숲 안쪽 마을의 온도변화와 풍속을 누그러뜨리고 함께 설치한 연못은 마을의 영양분 유출을 막아주며 상수리숲은 구황작물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밝혀진 바 있다. 박찬열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이런 비보숲이 우리나라에 1340개나 된다고 밝혔다.
»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의 강월헌 앞에서 최원석 경상대 교수가 고려 다층전탑이 남한강의 홍수를 상징하는 용마를 제어하기 위한 사찰 비보라고 참가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박수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풍수가 땅이 발전해가는 경로를 관찰하고 분류한 뒤, 그 발전방향 혹은 경로를 유지·보완해 나가는 방향으로 땅을 이용하는 인식체계라는 점에서 토지의 지속가능한 이용이라는 현대적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회의를 열게 된 것도 “풍수가 아시아적 가치이자 전통지식으로서 공유할 만한 유력한 후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원석 교수도 “역사, 문화, 생태 등 전공이 다른 동아시아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풍수를 토론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발상지인 중국에서 제대로 계승·발전하지 못한 풍수를 우리나라가 앞장서 인류 문화유산으로 키워나가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지리산에만 500여개의 풍수 형국이 있을 정도로 풍수는 자연환경을 인식하고 평가하는 유력한 도구였지만, 이를 전통지식으로 계승하는 일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도원 교수는 “이대로 방치하면 10~20년 뒤에는 풍수를 영어로 배워야 하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고 꼬집었다.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풍수는 왜 과학적인가
지반 안정·물질 순환
생태학적 원리 담겨
풍수는 흔히 좋은 묏자리를 보는 미신으로 치부되지만 실은 땅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하는 과학적인 사고체계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출간된 책 <전통생태와 풍수지리>(지오북)를 통해 이를 알아본다.
윤홍기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교수(문화지리)는 기를 받아서 잃지 않는 것이 풍수의 핵심 목적인데 기가 전달되는 길목인 산줄기를 파헤치려는 시도를 죽기를 각오하고 대항하는 식으로 마을의 변형을 막았다고 말한다.
또 환경용량을 넘지 않도록 개발을 억제하는 구실도 한다. 그는 전북 장수군 장수읍 선창리에 있는 양선부락의 사례를 들었다. 배에 해당하는 ‘행주형’ 풍수 형국을 지니고 있는 이 마을에는 집이 40호가 넘으면 운수가 기울지만 그 밑으로 내려가면 다시 흥한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마치 배에 실을 수 있는 용량의 한계를 둔 것 같은 형국이 마을 개발의 한계를 두어 지속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고 윤 교수는 설명한다.
행주형 풍수형국에서는 배의 침몰을 막기 위해 우물을 파면 좋지 않다는 속설이 있고, 실제로 이 형국인 평양에서 우물을 파지 않고 대동강 물을 길어 마셨다. 김선달이 한강이 아닌 대동강에서 물을 팔아먹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지형학적으로 타당한 측면이 있다. 박수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평양이나 안동 등은 강물이 구불구불하게 흐르면서 이뤄진 퇴적 지형이어서 이런 곳에 구멍을 뚫어 지하수를 채취하면 지반침하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 풍수의 사신사 지형
■ 풍수를 따른 전통마을 공간 배치
풍수는 ‘환경’이란 용어의 원형인 셈이다. 최원석 경상대 교수는 “풍수가 마을의 자연환경적 조건을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을의 풍수를 본다’는 말은 ‘마을의 환경을 평가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조선시대 풍수지식인(승려, 유학자, 지관 등)이 어떤 마을을 지나치면서 ‘이 마을은 풍수가 안 좋으니 동구에 숲을 조성하라’고 했다면 ‘마을의 기상과 경관생태적인 환경관리를 위해 숲을 조성하라’는 당시 환경전문가의 조언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풍수는 생태학적으로도 설득력이 있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생태학)는 “터진 마을 앞을 수구막이로 막는 공간구조를 유지하면 영양물질이 내부순환을 통해 최대한 이용되는 물질순환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자연히 이런 곳에는 생물다양성도 풍부하다.
풍수에서 명당으로 치는 좌청룡 우백호, 배산임수의 지형은 우리나라에서 광범하게 나타나며 지형 발달과정에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박수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서서히 융기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융기하고 깎이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계단 형태의 지형이 생기는데, 먼 높은 산줄기부터 차츰 고도가 낮은 산줄기가 나타나고 산자락이 평지와 만나는 곳에 사신사 지형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런 사신사 지형은 카오스 이론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자기조직화 지형이라고 말한다. 곧, 부분 안에 전체의 모습이 무한 반복되는, 예컨대 해안선과 같은 모습을 띤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신사 지형을 갖춘 서울 안에 다시 명당의 마을 터가 있고 그 중에서도 명당 자리에 묘를 쓰는 것이 그런 예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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