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신비·환경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37] 저음의 매력

자운영 추억 2013. 11. 2. 18:33

 

입력 : 2013.10.29 03:02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
여성들이 남성의 저음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남성은 남들도 그리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캐나다 맥매스터대 연구진이 발표한 최근 논문에 따르면 여성들은 저음의 남성일수록 바람둥이 성향이 커서 내 곁을 오랫동안 지켜주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하릴없이 그런 남성에게 끌린단다.

나는 번잡한 대도시에서 혼자 사는 어느 고독한 여인의 일상을 노래한 폴 매카트니의 '어나더 데이(Another Day)'를 스마트폰 통화 연결음으로 사용한다.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그녀는 꿈의 남자가 나타나주기를 기다린다. 아아, 함께 있어줘, 기다리게 하지 말고. 그가 온다. 그가 함께 있어준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그는 떠나버린다." 나는 매일 이 노래를 들으며 그 남자는 필경 매력적인 저음을 지녔으리라 상상해 본다.

저음이 수컷의 매력임은 이미 오래전에 케임브리지대의 붉은사슴(red deer) 연구에서 밝혀졌다. 붉은사슴은 능력 있는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는 일부다처제 동물이다. 변방에서 떼로 몰려다니며 호시탐탐 암컷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리는 버금 수컷들이 으뜸 수컷의 권위에 도전하는 과정의 첫 단계가 바로 저음 경쟁이다. 다짜고짜 덤벼들었다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그 전초전으로 일단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곧바로 으뜸 수컷이 화답하고 두 수컷은 여러 차례 목청 대결을 벌인다. 이 같은 대결이 때론 몸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으뜸 수컷만큼 저음을 낼 수 없는 버금 수컷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저음을 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울림통 즉 몸집이 크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원조 '오빠' 가수 남진은 반전 목소리로도 원조 격이다. 노래를 부를 때는 기가 막히게 섹시한 저음을 뽐내지만 그냥 대화할 때는 정감은 넘치지만 거의 촐싹대는 수준의 들뜬 전라도 사투리를 쏟아낸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섭섭하실지 모르지만 그 덕에 이렇다 할 스캔들 없이 오랫동안 스타의 위치에 머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