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색·글·책 】

[만물상] 중·노년 이혼

자운영 추억 2013. 10. 23. 21:04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 입력 : 2013.10.22 03:04

    남편은 권위적이어서 위로가 필요없는 사람이었다. 입만 열면 도덕책 같은 소리를 했다. 넌더리를 내던 아내는 딸의 대학 진학을 핑계 삼아 서울로 와 별거했다. 남편은 다달이 봉급을 아내 통장으로 입금했다. 은퇴한 뒤에도 연금을 꼬박꼬박 보내왔다. 그래도 아내는 남편을 찾아가지 않았다. 박완서 단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부부의 결혼은 껍데기만 남았다. 많은 아내가 벼른다. '남편 늙어 아파도 눈 하나 깜짝하나 봐라.'

    ▶자식은 부부를 이어주는 끈이다. 낯 붉혔다가도 아이들 봐서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다 자식 크고 남편 은퇴하면 일이 꼬인다. 남편은 할 줄 아는 게 없어 집에만 붙어 있다. 평생 가족 먹여 살리느라 고생했으니 편히 수발받고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손가락 까딱 안 하는 남편에게 세 끼 챙겨주자니 열불이 난다. 갖은 살림 참견을 해대는 '남편 살이'에 시달린다. 애들 키우고 이제야 하고 싶은 일 하려는데 남편이 발목을 붙잡는다. 재작년 10개국 조사에서 한국 50대 여성의 행복도가 꼴찌였다. '불행하다'는 답이 37%였다.

    
	만물상 일러스트

    ▶일본에 '나리타의 이별'이라는 말이 있다. 부부가 막내 결혼식 치르고 공항에서 신혼여행을 떠나보낸 뒤 갈라선다는 얘기다. 우리에게도 '인천의 이별'이 닥쳤다. 지난해 이혼한 부부 중에 결혼 20년 넘은 부부가 26.4%를 차지했다. 그동안 가장 높던 4년 이하 신혼부부 이혼 비율(24.7%)을 처음 넘어섰다. 자식 뒷바라지 끝났고, 이혼을 보는 사회 시선이 너그러워졌고, 여자 몫 재산 분할이 나아지면서다.

    ▶'툭 불거진 무릎 아래 털이 듬성듬성한 정강이가 몽둥이처럼 깡말라 보였다.' 단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아내는 남편의 모기 물린 정강이를 어루만지며 화해한다. 박완서는 그것이 측은한 마음도 동정도 아니라고 했다. "세월을 함께하며 생기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자, 늙음과 삶의 허망함에 대한 연민"이라고 했다. 우리 중·노년 이혼이 늘었다지만 대다수는 결혼 서약을 지키며 산다.

    ▶유대 금언집 탈무드에 '아내의 키가 작으면 남편이 키를 낮추라'고 했다. 결혼은 둘이 다리 하나씩 묶고 뛰는 이인삼각(二人三脚)이다. 시인 함민복은 마주 보며 긴 상(床)을 들고 가는 두 사람에 비유했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춰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중·노년뿐 아니라 모든 부부가 새겨들을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