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전통】

[만물상] 도화서 화원(畵員)

자운영 추억 2013. 10. 9. 08:35

  • 김태익 논설위원
  • 입력 : 2013.10.09 03:01

    서울 청계천을 걷다 보면 광교에서 삼일빌딩에 이르는 길에 길이 186m 거대한 도자기 벽화를 만난다. 조선시대 최고의 기록화이자 풍속화로 일컫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다. 정조 임금이 1795년, 비운에 돌아간 아버지 사도세자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역시 회갑인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 지금의 수원으로 가는 그림을 옮겼다. 가로세로 30㎝짜리 세라믹 타일 5120장을 이어 붙인 화면에는 왕실과 신하를 비롯해 인물 1779명과 말 779필이 등장한다. 그 인마(人馬)의 표정과 몸짓을 저마다 다르게 그린 솜씨가 놀랍다.

    ▶행렬 중간쯤 혜경궁 홍씨가 탄 화려한 가마가 보이고 그 뒤를 임금의 말 좌마(座馬)가 따르고 있다. 관례대로 말 위엔 햇빛 가리개만 그렸고 임금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팔 피리 북 장구로 이뤄진 악대에선 금방이라도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올 듯하다. 선과 색채 하나하나에서 부흥기를 맞은 조선 왕조의 자신감이 전해 온다. 이 대작을 그린 사람들은 김홍도 김득신 이인문 같은 당대 최고 궁중 화가들이었다.

    
	만물상 일러스트

    ▶조선의 르네상스를 연 정조는 화가들도 이전 임금들과는 다르게 대접했다. 개국 이래 왕실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도화서(圖畫署) 화원들은 중인(中人) 중에서도 아래 취급을 받았다. 정조는 도화서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 열 명을 뽑아 창덕궁 안에서 그림을 그리게 했다. 대우도 양반에 버금가게 해줬다. 그림 내용에서도 파격을 요구했다. 한번은 직접 궁중 화가를 뽑으며 '논에서 새참을 먹다'라는 화제(畫題)를 냈다. 궁중에선 금기로 여기던 풍속화를 그리라는 거였다. 정조는 "모두 보자마자 껄껄 웃을 만한 그림을 그려라"고 주문했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진경시대 화원전(展)'을 13일부터 연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수집한 고미술품들 가운데 조선 후기 화려하게 꽃핀 도화서 화원들의 명품들만 골라 보여준다. 김홍도 김득신 이인문 신윤복 최북 같은 익숙한 이름의 화가 스물한 명 작품 100여점이 나온다.

    ▶도화서 화원 오순(吳珣)은 정조가 그림을 그리라고 하사한 종이를 팔아 술을 마시고 도망을 가버렸다. 고종 시대 장승업은 궁중 생활이 답답한 데다 술 생각을 누르지 못하자 궁궐 담을 넘어 술집으로 도망쳤다 붙잡혀 오기를 여러 차례 했다. 도화서 화원은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실력에서는 누구에게도 밀리고 싶지 않은 프로 화가들이었다. 낙엽이 물들기 시작하는 성북동 산기슭에서 벌어질 '화원들의 향연'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