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트레킹

설악산 어머니의 깊은 신음이 들리는가

자운영 추억 2013. 7. 24. 21:02

박그림 2013.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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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림의 설악가 ① 나는 저항한다

우리의 탐욕과 무관심이 설악산을 죽이고 있다

아이들이 어른 되어 대청봉에서 외경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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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 속에 묻힌 설악산은 내 가슴 속에 우뚝한 모습으로 남아 언제나 나를 당신의 품속으로 이끌고, 눈을 감으면 발길이 닿았던 곳마다 생명의 흔적들이 내게 다가와 그들의 삶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한 여름의 짙푸른 숲에 들면 어둑하고 서늘한 산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고 손을 내밀면 부드럽게 나를 스치는 여린 풀잎 하나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바위 밑에 소복이 쌓여 있는 산양 똥을 볼 때마다 작은 소리에도 귀를 바짝 세우고 불안스러운 눈빛으로 두리번거릴 산양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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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걸음으로 지나간 짐승들의 발자국을 볼 때마다 쫓기는 삶을 생각하며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따져보게 된다.
 
바람 부는 날이면 가슴 깊이 파고드는 산의 울음소리가 나를 흔들어대는 까닭을 안다. 설악산어머니의 상처는 늘어나고 아픔은 커지고 있지만 우리들의 탐욕과 무관심은 설악산을 죽음의 산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온몸으로 저항한다. 비록 작은 힘이지만 간절함으로 내 몸을 던져 저항한다.

sol2.jpg » 동도 트기 전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로 랜턴을 밝히며 넘어오는 무박산행 등산객의 끝없는 행렬. 설악산은 쉴 틈이 없다.  
 

대청봉에 깊이 패 인 상처가 아물고 푸른 나무들이 가득할 때까지 나는 저항한다.
 

설악산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때까지 나는 저항한다.
 

숲 속에서 짐승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침묵의 숲이 되지 않도록 나는 저항한다.
 

한 겨울 눈 위에 짐승들의 발자국이 없는 황량하고 쓸쓸함을 견딜 수 없기에 나는 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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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산길을 갈 때 소리 없이 다가와 부드럽게 나를 스치는 생명의 감촉을 잊을 수 없기에 나는 저항한다.
 

어둠 속에서 어린 짐승의 투정소리를 들을 수 없는 절망의 때를 맞이할 수 없기에 나는 저항한다.
 

바위 밑에 앉아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내 곁에 산양이 뛰어들기를 꿈꾸며 나는 저항한다.
 

깊은 눈을 헤치고 지나간 멧돼지의 훅훅 거리는 숨소리가 멈추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저항한다.

sol4.jpg » 산양의 똥자리

 

숲 속에 들어 나무통을 두드리는 딱따구리의 두드림 소리가 그치지 않기를 바라기에 나는 저항한다.
 

거친 비바람이 몰아쳐도 꼿꼿하게 서서 견디는 나무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저항한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누었다 다시 일어서는 풀꽃을 보고 싶기에 나는 저항한다.
 

무리지어 피어나 하늘 꽃밭을 이루는 꽃들의 아름다움을 잃고 싶지 않기에 나는 저항한다.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아름다움조차도 누릴 수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기에 나는 저항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되돌려 주어야 하는지를 알기에 나는 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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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른 되어 대청봉에 올라 정상의 존엄성과 외경심에 빠질 수 있기를 바람하며 나는 저항한다.
 

설악산이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우리들의 삶을 이끌어주기를 바라며 나는 저항한다.
 

신이 바라본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잃고 싶지 않기에 나는 저항한다.
 

잘못된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기에 나는 저항한다.
 

나의 힘은 적고 보잘것없지만 간절함은 하늘에 닿고 사무치는 마음은 꽃을 피울 것임을 알기에 나는 저항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삶에서 무엇이 가장 큰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 알기에 나는 저항한다.
 
sol3.jpg » 탐방객에 밟혀 맨땅이 드러난 대청봉 정상에 엎드리는 필자.

 

대청봉에 올라 깊이 패인 땅에 손을 대고 엎드려 차마 일어서지 못한다. 손바닥에 피가 묻어날 것 같은 깊은 상처의 아픔이 온몸을 전율처럼 휘감아 내린다.

 

무엇이 이토록 설악산어머니를 아프게 하는 것이며, 우리들은 어머니의 상처와 아픔을 모른척할 수 있는 것일까!

 

무관심뿐 아니라 산양들의 삶터를 꿰뚫는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그들을 볼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기 어렵다.

 

산에 들 때마다 자연은 그렇게 어수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늘 부드러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자연의 보복은 정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잡고 오른 바위는 설악산어머니의 뼈고 딛고 오른 땅은 설악산어머니의 살이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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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설악산어머니의 정수리인 대청봉에 서서 초록치마를 바람에 휘날리며 둥근판을 든다. 초록치마는 나의 갑옷이며 둥근판은 방패다. 나를 감싸고 나아가는 보호막이며 저항의 상징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생각한다. 모든 생명이 제 자리에서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글·사진 작은뿔 박그림/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설악녹색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