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 食 】

전라도 음식은 개미가 있더라.|

자운영 추억 2013. 7. 4. 21:33

전라도 음식에는 ‘개미’가 있더라




중국 음식이 불, 일본 음식이 칼로 규정된다면 전라도(한국) 음식맛은 삭힘문화(장 김치 젓갈)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콩메주를 잘 띄워서 소금물에 절이면 된장이 되고 간장이 된다. 이렇게 갈무리해서 나온 찬품饌品들을 발효식품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 대표적인 찬품이 젓갈이요 김치다. 이것들은 모두 건건한 맛들이며 고추가 등장하기 이전의 껄끄러운 식탁을 이르는 말이다.
고추가 등장하기 이전에 벌써 우리의 장醬문화는 활짝 꽃피었다. 「삼국유사」의 김현감호金現感虎편에는 유명한 흥륜사의 된장이 맛으로뿐 아니라 ‘호랑이에게 물린 데는 제일이다’라는 그 특효약의 성능까지 검증되어 있다. 물론 「가락국기」의 ‘이 땅이 여뀌잎과 같이 생겼다’는 기록으로 보아 여뀌는 임진왜란 이전의 산초열매와 함께 향신료로 어염魚鹽과 함께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추가 등장함으로써 3차의 식탁혁명이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맛으로 한국의 요구르트라 칭하는 김치가 완성되었으며, 전주비빔밥이 꽃피었다. 그러므로 남도음식은 이 발효식품의 절정에 있는 음식들이다.
또 자산어보玆山魚譜에 나와 있는 대로 흑산홍어는 거름벼늘 속에 삭혀야 그 독특한 ‘지린 맛’을 낸다. ‘홍어회’는 해묵은 배추김치, 돼지편육과 함께 합을 이루면 목포 삼합이 되고 막걸리를 곁들이면 홍탁이 되는데, 이것이 없으면 충청도 서해안에서 ‘무젓(꽃무침)’이 빠져버린 것처럼 남도 잔치판은 되는 일이 없다.
지린맛이 냄새로 갈 때는 ‘지린내’가 되고, 제주 음식의 몸국이나 자리젓에서 나는 늘냇내와 같은 향이 되어 콧속을 얼얼하도록 자극한다. 남도 식탁 또는 맛을 논할 때는 자산어보의 물목(목포-나주까지의 물목, 영산강)을 끌어들인 까닭은 식탁에 ‘힘’을 실어주는 물목이 되기 때문이다. 영암 세발낙지의 원론적인 힘이 그렇고, 여름 물 만 밥의 밑반찬인 영광 굴비가닥이 그렇고 무안 해제의 뻘낙지 등이 그렇고 영암 어란이 그렇다.
식탁의 3요소는 맛과 메시지와 정서인데 자산어보의 물목이 없으면 남도의 식탁엔 힘이 실리지 않는다. 외지인을 구별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은 홍어를 먹여 보거나 세발낙지를 먹여 보거나 삶은 참꼬막을 주어보면 금방 알게 된다.

결국 우리 맛의 발전은 삭힘 즉 발효와 숙성법인 조장기술造醬技術에서 왔으며 천년 고도 나주목을 가르고 가는 원시적 생생력生生力인 자산어보의 물목에서 독특한 맛이 나왔다. 나주 집장汁醬 또한 홍어와 함께 두엄 속에 삭혔으며 이 물목의 어팔진미魚八眞味와 소팔진미疏八眞味가 그렇고 해주반, 통영반과 함께 나주반 등의 밥상이 이름난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평야권과 해양권 기후대의 토양 속에서 형성된 맛이 곧 ‘남도의 맛’인 셈이다.
그래서 ‘사불여’四不如란 말이 일찍이 있어 왔다. 벼슬아치가 구실아치만 못하고 구실아치가 기생만 못하고 기생이 음식 맛만 못하다 함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길러진 맛이 멋으로 가고 이 멋이 곧 검약과 절제 선풍仙風을 낳는데 이것이 전라도의 풍류다. 이 멋과 맛이 가락을 탈 때는 ‘소리’가 된다. 판소리 가락에서 국창이니 명창이니 할 때는 천구성의 양성(해맑은 소리)이 아니라 이 양성에 시김새(삭힘)가 붙어야 수리성이 된다. 독공에 의해 수리성의 목이 텄을 때 우리는 그것을 ‘그늘 있는 소리’라 말한다. ‘그늘 있는 맛’‘그늘 있는 소리’‘그늘 있는 사람’등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국어사전에도 없는 ‘그늘’이야 말로 이 시김새(삭힘)로 맛에서 온 말이며 맛을 논할 때는 ‘개미가 쏠쏠하다’라고 표현한다. 그 ‘개미’가 곧 ‘그늘’이란 뜻으로 시 또한 깡마른 소리가 아닌 가락으로 휘늘어지면 그것이 ‘그늘 있는 시’가 된다.
동편제와 서편제의 차이성은 여기에서 온다. 따라서 ‘문안에 들면 대밭이 있는데, 방안에 들면 어찌 난초가 없겠는가?’라는 말은 전라도 사람들이 그 ‘쟁이 기질’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대숲은 곧 광대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허균이 죽순맛을 못 잊어 ‘죽순은 노령이남’이라고 「도문대작」에서 썼듯이 대밭은 남도의 고향이며 충청도 목천지방 이북으로 가면 ‘대’竹는 희귀해진다. 태평성대엔 대금, 중금, 소금의 3죽의 피리소리로 뜨고 난세엔 죽창竹槍으로 빛났던 것이 남도의 삶이며 역사다.

예향이니 의향이니 하는 말은 식성食性이 곧 인성人性이란 말과 같다. 5.18의 정신도 이 보수전통의 식탁에서 나온 정신이다. 구약성경의 레위기에 나오는 모세의 이동식탁(유목민의 이동식탁)이 아닌 우리 식탁은 붙박이 식탁인 까닭이다. 그래서 ‘꿀과 젖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가자!’는 그 성경식탁의 구호가 아니라 ‘이 땅을 지키자’라는 악착같은 기질이 형성된 것이다. 이것이 곧 전라도 풍류의 멋과 맛이며 일찍이 태산풍류로부터 원효문풍, 적벽풍류 등으로 흘러온 것들이다.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바람 소리 속에는/대숲바람 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년 한숨/삿갓머리에 후둑이는 밤쏘낙 빗물소리//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肝 큰/아이들, 황토현을 넘어가던/징소리 꽹과리 소리들…>
이는 필자의 ‘대숲바람 소리’란 시의 일부분이지만, 이처럼 대숲바람을 귀에 밟히고 살아온 사람들이 곧 남도사람들인 것이다. 죽순 맛을 모르고, 대숲머리를 휘돌아 들판으로 나직이 흘러 나가는 ‘저녁 밥짓는 연기’의 그 향수와 배고픔을 모르면서 맛과 풍류를 논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송수권님은 시인이며 순천대 문창과 교수입니다. 『산문에 기대어』『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 등의 시집과 더불어 『남도의 맛과 멋』『송수권 풍류 맛기행』등의 산문집을 냈습니다.(전라도 닷컴에서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