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경골어답게 천적 없는 듯, 무인 잠수정에 놀라지 않아
알려진 것만큼 심해어는 아니야…도마뱀처럼 꼬리 자를 가능성도 제기
» 2011년 8월15일 멕시코만에서 무인 잠수정이 촬영한 산갈치의 모습. 긴 등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 몸 옆의 위장 무늬, 끝이 잘린 꼬리 등이 보인다. 사진=마크 벤필드 외, <어류 생물학>
종종 해변에 죽은 채 밀려와 발견되는 산갈치는 신비로운 물고기다. 얼핏 갈치처럼 생겼지만 거대한 몸집과 기다란 볏이 달린 머리 등 범상치 않은 모습에다, 최근 일본과 대만에서는 대지진 직전에 많이 나타나 마치 천재지변을 예견하는 능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물고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갈치의 정체가 해양생물학자들에 의해 차츰 밝혀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최근 깊은 바다에서 석유와 가스를 채굴하는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이 해양생물의 베일이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해상 시추시설이 보유한 무인 잠수정에서 조사를 하다가 또는 심해 기름유출 사고를 조사하다 산갈치를 목격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제까지는 이 생물이 해안 가까이에서 죽거나 죽어가는 상태에서 발견됐다면 최근엔 바다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있는 개체를 관찰하는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마크 벤필드 미국 루이지애나 대학 해양학자 등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어류 생물학> 온라인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2008~2011년 사이 무인잠수정이 멕시코만 일원에서 우연히 촬영하게 된 5건의 산갈치 동영상을 분석했다. 촬영시간은 4초~10분 등으로 그리 길지 않지만 산갈치의 행동을 살아있는 상태에서 관찰한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 수직으로 서 있는 산갈치의 모습. 물결치듯 움직이는 것이 등지느러미이다. 사진=마크 벤필드 외, <어류 생물학>
» 물결치듯 움직이는 등지느러미로 수직 이동을 한다. 사진=마크 벤필드 외, <어류 생물학>
» 산갈치는 아래턱이 튀어나온 독특한 입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빨이 없다. 사진=마크 벤필드 외, <어류 생물학>
» 위 사진은 모두 2011년 8월15일 걸프만의 해저 942m 지점에서 무인 잠수정으로 촬영한 산갈치의 여러 모습이다. 사진=마크 벤필드 외, <어류 생물학>
산갈치(정식 명칭은 산갈치과의 ‘리본이악어’)는 지구상에서 단단한 뼈를 가진 물고기 가운데 가장 큰 종이다. 열대와 온대 따뜻한 바다에 살며 우리나라 주변에도 서식한다.
산갈치는 은빛 피부와 칼처럼 가늘고 긴 몸매가 갈치와 비슷하지만 아래턱이 삐죽 튀어나온 입과 등지느러미 앞이 길게 늘어나 끝에 붉은 볏을 달고 있고 배지느러미가 노처럼 길게 늘어나 있는 등 갈치와는 거리가 먼 심해어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바다속에서의 행동은 갈치를 빼닮았다.
» 선 자세로 먹이를 노리는 갈치의 모습. 사진=오픈 케이지
무인 잠수정이 본 산갈치는 모두 머리를 위로 하고 비스듬하거나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 상태에서 등지느러미를 리드미컬하게 연속적으로 움직여 위아래로 이동했다. 이런 모습은 갈치가 멸치를 사냥하기 위해 수직으로 서 있는 것과 비슷하다.(■ 관련기사: 은빛 칼날의 공포…갈치는 꼿꼿이 서서 사냥한다)
산갈치는 크고 빛을 내는 시끄러운 물체인 무인 잠수정이 접근해도 황급히 도망치지 않았다. 이는 자연에서 천적이 별로 없음을 가리킨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그렇지만 2011년에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잠수정이 10분쯤 귀찮게 쫓아다니며 촬영하자 지금까지의 움직임과 달리 빠른 속도로 깊은 바다로 달아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산갈치는 주로 크릴 같은 난바다곤쟁이를 먹고 살지만, 덩치가 커 최상위 포식자처럼 살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상어나 다른 물고기가 산갈치를 잡아먹은 흔적은 발견된 적이 없다.
그러나 짧은 동영상은 깊은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의 한 단면만 보여줄 뿐이다. 이 동영상에서 특이한 것은, 산갈치의 상당수가 꼬리가 잘려나간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 길이 1.5m 이상의 산갈치는 대개 꼬리끝이 잘려 있다. 천적을 피해 도마뱀처럼 스스로 끊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사진=마크 벤필드 외, <어류 생물학>
해안에서 발견되는 산갈치도 길이 1.5m 이상의 개체에선 꼬리가 없는 것이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 물고기의 주요 장기가 몸 앞부분에 몰려 있음에 비춰 이 물고기가 천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도마뱀처럼 꼬리의 일부를 스스로 잘라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연구진은 또 흔히 산갈치가 아주 깊은 바다에서 사는 심해어로 알고 있으나 이번 촬영 결과를 보면 300~1000m 사이의 바다에서 서식해 알려진 만큼 깊은 바다의 심해어는 아니라고 밝혔다.
» 은색 몸 표면에 나 있는 푸른 무늬는 위장용일 가능성이 있다. 사진=마크 벤필드 외, <어류 생물학>
이 물고기의 은색 표면에 나 있는 푸른 줄무늬도 위장 용도일 가능성이 커, 바다 표면 가까이에 산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물론 먹이를 따라 표층과 심층을 오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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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결과만 보면 산갈치는 몸길이가 최대 7~8m에 이른다. 그러나 최대 17m에 이르는 개체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보통 산갈치의 크기는 3m 정도이다.
» 2010년 부산 해운대에서 죽은 채 발견된 길이 산갈치. 사진=뉴시스
» 미국 샌디에이고 해변에서 1996년 발견된 길이 7m 무게 140 kg의 산갈치.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 2011년 걸프만에서 무인 잠수정이 촬영한 산갈치 유튜브 동영상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Five in situ observations of live oarfish Regalecus glesne (Regalecidae) by remotely operated vehicles in the oceanic waters of the northern Gulf of Mexico
M. C. Benfield*, S. Cook, S. Sharuga, M. M. ValentineArticle first published online: 5 JUN 2013
Journal of Fish Biology
DOI: 10.1111/jfb.1214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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