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백운산 깊은 계곡, 은은한 향기로 등산객 붙잡아
기품 있고 정갈한 모습, "땅만 보고 가느라 못 보았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떠한 관계가 가장 좋은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부대껴도 서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상처는 남기지 않으려 애쓰는 좋은 사람들과 전라남도 광양에 위치한 백운산에 올랐습니다.
며칠 전, 봄비로는 꽤 많은 비를 내려주신 터라 그렇지 않아도 깊은 계곡에는 풍성한 물줄기가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너울너울 춤사위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급할 것도 없이 천천히 이동하며 풀과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곤충 이야기도 듣고, 계곡에 앉아 쉴 때면 물고기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우리의 자연을 어떻게 가꿀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토론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상에는 올랐다 와야 했기에 말도 줄여가며 바닥만 보고 걸어 정상에 올랐다 다시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거칠어진 숨을 달래려 적당한 그루터기에 털썩 몸을 내려놓으며, “봄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였는데 벌써 여름이 오시는 가…”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침 불어주는 한 줄기 고마운 바람 속에 깊고도 그윽한 향기가 함께 배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향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한참을 두리번거렸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을 때 바로 그 곳에는 오르면서도 그냥 지나쳐버렸던 함박꽃나무 꽃이 이제야 보았냐는 듯 함박웃음을 활짝 머금은 채 가지런히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산 속 깊은 골짜기에서 살아가는 목련이라 하여 산목련이라고도 부르는 함박꽃나무는 그 키가 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크지도 않습니다. 또한, 잎보다 앞서 꽃만 먼저 피우는 목련과 달리 잎과 꽃이 더불어 있습니다. 깊은 산중에 꽃 먼저 외롭게 서있어야 함을 잎은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함박꽃나무의 잎은 꽤나 넓으면서도 가장자리가 매끈하며 잎맥도 간결하여 우선 단정한 인상을 줍니다. 꽃은 우리의 땅에서 자생하는 꽃으로는 말 그대로 가히 함지박만큼의 크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꽃잎의 빛깔은 흰색으로 순결한 자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박꽃나무 꽃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바람 드나들 사이도 없이 빼곡하게 피어 있지 않고 듬성듬성 달려있는 그 여유로움에도 있을 것입니다.
조금 먼발치에서일 뿐 함박꽃나무는 언제나 이렇게 지나는 모든 이들 그 누구도 구분 없이 똑같은 함박웃음으로 바라보아 주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당장, 그리고 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것은 순전히 가야할 길이 바쁘고 험하다 하여 그저 땅만 바라보고 걸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글·사진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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