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4. 29
너무 친해 존재감 못 느끼는 든든한 나무
배고팠던 시절, 속껍질과 꽃으로 허기 채우기도
소나무는 친근한 나무이다. 너무나 가까워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나무를 소개하는 책에도 너무 흔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소나무를 다루지 않기도 한다. 없는 듯 든든한 소나무에 더욱 애착이 가는 이유이다.
새 순이 오르는 소나무를 보고 있자니 잊고 지냈던 소나무에 관한 추억이 하나 둘 떠오른다. 배고팠던 어린 시절 동네 들머리나 뒷동산 소나무는 입을 즐겁게 했던 나무였다.
» 드리워진 소나무 가지가 마을을 감싸안고 있는 듯하다.
물오른 소나무 가지를 잘라낸 뒤 겉껍질을 살짝 벗겨내면 안에 하얀 속살이 나온다. 소나무 가지를 하모니카처럼 불며 단물을 빨아 먹던 기억이 새롭다.
'털털이'란 것도 있었다. 6월께 새 가지가 나오면 연한 껍질을 한 바퀴 돌려낸 뒤 솔잎으로 죽 훑으면 씹을 만한 솔 껍질이 나온다. 소나무의 수꽃을 질겅질겅 씹으면 껌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어른들은 봄에 소나무 꽃가루(송화가루)를 받아두었다 추석 때 다식을 만들었고 송편을 빚을 때 솔잎을 바닥에 깔아 그윽한 솔향기도 줄기고 쉽게 상하지 않도록 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없던 시절, 늘 입이 궁금해도 군것질거리가 잘 없었던 아이들에겐 누구나 이런 추억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엔 우리 동네 소나무 한 그루씩이 자라고 있다.
» 소나무는 지금도 아파트 단지, 공원 등 어디서나 우리 곁에 있다.
소나무는 늘푸르고 오래 사는 생태적 특징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장수는 물론 꿋꿋한 태도와 끝까지 지키는 굳건함을 표현할 때 이 나무를 든다. 또 소나무의 형상엔 저마다 자유로움이 있고 개성이 돋보여, 예스럽고 수수한 우리나라 자연미에 빠질 수 없는 존재이다. 선인들은 두루미, 달, 바람, 구름, 소리와 어우러진 소나무의 자태를 한 폭의 그림과 시에 담기도 했다.
» 지난 4월 2일 신라의 옛 도시 경주 삼릉에서 본 소나무. 신라의 역사를 보는 듯했다.
소나무는 언제 어디서나 다정다감하면서도 정중한 느낌과 엄숙하고 과묵한 모습을 함께 지닌다. 우리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심성과 닮았다. 철갑을 두른 듯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소나무 껍질은 우리의 슬픔과 고난, 기쁨을 상징한다.
오래 살아 거목이 된 소나무는 신성을 지닌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런 나무는 마을을 지켜 준다고 믿어 당산목으로 받든다. 거대하게 자란 소나무는 기상과 품격 그리고 눈서리를 이기는 곧은 마음과 굳은 의지를 상징한다.
이제 곧 송화가루가 산을 노랗게 물들이는 철이 올 것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나무처럼 봄을 황홀하게 맞이하는 나무가 있을까.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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