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명의 목수들이 참죽나무를 잡으러 왔다. 시내에서 가구점을 하는 사람들이 참죽나무를 흥정하러 왔다. 어느 서늘한 가을날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한 참죽나무가 울안에 있었다. 신주단지를 모셔 넣은 뒤곁에 있었다. 몇 백 년이나 묵은 나무인지는 모르지만 마을에서 제일 컸다. 어린 내가 안으면 두 아름이 넘었고 키 큰 어른들도 한 아름에 안지 못하였다.
10여m를 쭉 벋어 오른 참죽나무에는 까치가 둥지를 틀었다. 몇 대에 걸쳐 이곳에 사는지는 모르지만 해마다 새끼를 쳤다. 어른들의 말로는 우리 동네 까치는 모두 이 까치둥지에서 새끼 쳐 나간 것이라고 했다.
까치둥지도 매우 컸다. 해마다 새로 덧붙여 짓는 까닭에 여느 까치둥지의 두세 배는 되었다. 까치둥지를 거두면 나뭇짐 한 지게는 될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큰 것은 까치가 둥지를 튼 참죽나무였다.
목수들이 오자 동네 어른들도 몰려와 두 팔로 나무를 안아 보았다. 서로 돌아가면서 자기 몸집에 대여섯 배는 되는 참죽나무를 끌어안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은 작별 인사였다.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정든 나무와의 이별이었다.
장롱을 짜는 목수들은 참죽나무의 둘레를 재고 지름을 계산하였다. 기둥의 높이는 잴 수 없으니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보았다. 참죽나무의 기둥을 눈대중으로 계산하였다. 재목으로 쓸 부분은 아마도 9~10m 정도였다. 한 옥에 쓰이는 기둥 하나가 290cm이니 기둥 3개가 나오는 크기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목수들은 참죽나무가 매우 탐이 났던 모양이었다.
목수들이 참죽나무를 보고 간 다음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까치들의 행동이 수상해졌다. 할머니께서 학교 갔다 돌아온 나를 부르시더니 작은 소리로 귀띔을 하셨다.
“얘야, 까치가 이사를 간다.”
“까치가 이사를 간다고요?"
“그래, 저기 좀 봐라.”
우리 집 까치가 무슨 일을 하는 가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까치가 나뭇가지를 물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살던 둥지를 허물어 건너편 밭둑의 미루나무로 이사를 가는 것이었다. 마을 어른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한 마디씩 하셨다.
“영물일세. 영물이야!”
“그러게 말이야. 제 집이 헐릴 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아마도 그날 지켜본 게지. 목수들이 나무 둘레를 재는 것을 말이야.”
“그런 모양일세 그려. 참 신기한 일도 다 있지.”
미루나무에 짓는 까치둥지는 나날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미미하더니 1주일이 지나자 제법 까치둥지의 흔적이 뚜렷하였다. 그 후로 한 달이 지났다. 어느덧 미루나무에 까치둥지가 마련되었다. 제 둥지를 헐어 급히 이사를 마쳤다. 우리 집 까치는 이제 참죽나무 둥지로 날아오지 않았다. 참죽나무의 까치둥지가 줄어든 만큼 미루나무의 까치둥지가 커졌다.
참죽나무는 멀구슬과 식물이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높이 20m까지 자라는 큰 나무이다. 봄에 참죽나무의 붉은 새순을 따서 나물로 먹는다. 끓는 물에 데쳐서 먹기도 하고 찹쌀 풀을 입혀 기름에 튀겨서 부각으로 먹기도 한다. 그 맛과 향이 독특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대나무 죽순처럼 새순을 먹는다 하여 대나무 죽(竹)자가 붙었다고 한다.
참죽나무의 어원은 가죽나무에 있다. 나무 중에는 그 모양이 다른 나무와 비슷하기 때문에 이름이 바뀌는 것이 있다. 바로 참죽나무와 가죽나무가 그런 경우의 하나이다.
참죽나무와 가죽나무는 둘 다 중국에서 들여왔다. 우리나라 잣나무가 중국으로 건너가듯 바다를 건너왔다. 그런데 유사한 두 개의 죽나무가 건너오자 이름에 혼동이 생겼다. 그래서 새 순을 먹을 수 있는 나무와 먹을 수 없는 나무로 쉽게 구분되었다. 그래서 참죽나무는 진짜 죽나무가 되었고 가죽나무는 가짜 죽나무가 되었다. 참옻나무와 개옻나무의 경우와 유사한 방식의 이름이 붙었다.
가죽나무의 새순은 먹을 수 없다. 소태나무과 식물인 가죽나무는 잎 줄기에 독성이있고 냄새가 지독하다. 단지 뿌리껍질을 저근백피(樗根白皮)라 하여 한약재로 쓸 뿐이다. 그런데도 남도의 일부지방에서는 참죽나무를 가죽나무라 혼동하여 부른다. 가죽나무는 빨리 자라고 잎줄기가 시원하여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참죽나무 목재는 무늬와 붉은 속살이 아름다워 가구재로 이용한다. 중국에서 들여온 나무이기에 산에는 없다. 시골에서 밭둑이나 울타리나무로 많이 심는다. 참죽나무의 꽃은 흰빛이다. 높은 곳에 피는 까닭에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참죽나무의 열매는 독특하다. 다 여물면 목련꽃 피어나듯 벌어진다.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겨울바람에 흔들려 떨어진다.
울안의 나무에 까치가 둥지를 틀면 과거에 급제하는 경사가 난다고 하였다. 그래서 참죽나무를 울타리나무로 많이 심었다. 그러나 지금은 참죽나무 그늘이 지는 까닭에 한번 베면 다시 심지는 않는다.
까치둥지를 틀었던 우리 집 참죽나무는 그해 겨울에 베어졌다. 학교에 갔다 돌아와 보니 그 거대하였던 참죽나무는 걸리버처럼 쓰러져 울었다. 도끼로 찍어 넘긴 밑둥치의 속살은 피눈물을 흘리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참죽나무 밑둥치에 막걸리를 부어 예를 표하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까치둥지가 궁금한 나문 얼른 둥지로 가보았다. 지게로 한 짐은 되었을 것이라는 까치 둥지는 부서져 빈집만 남았다. 그 모습을 보자니 공연히 집 떠난 까치의 눈치가 보였다. 꿩알 크기의 파란 알과 이소하던 새끼 까치의 모습이 어른거려 마음이 심란했다.
얼마 후에 참죽나무로 만든 붉은 교자상 두 개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참죽나무 목재 두 쪽으로 만든 커다란 교자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고향의 논밭을 팔고 대도시로 이사를 갔다. 참죽나무 교자상은 오랫동안 가보처럼 두고 썼다. 십여 차례가 넘게 이사하면서도 족보처럼 가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참죽나무 교자상을 자개무늬가 든 교자상과 바꾸셨다.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 못내 아쉬웠다.
이후 반백년을 지나면서 아직 그만한 참죽나무를 보지 못하였다. 우리 집 참죽나무로 만든 교자상은 지금 어디에 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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