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수컷이 암컷 에워싸고 '내 가슴 어때요?' 간택 애원
다양한 겨울철새 쫓는 불법 낚시꾼…"도심공원에 새 먹이 유실수 심자"
» 번식기를 맞아 화사하게 단장한 원앙 수컷. 천연기념물 제 327호이자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의 보호종이다.
지난 1월26일 서울의 도심을 관통하는 중랑천 주변의 새를 찾아 나섰다. 중랑천은 한강으로 흘러드는 그나마 자연성을 간직한 하천으로, 전체 길이 약 36.5㎞ 가운데 서울 관내에 19.38㎞가 위치하며 평균 하폭은 150m인 제법 큰 물줄기이다.
» 서울 성동구의 중랑천 하류 모습.
중랑천은 경기도 양주 불국산에서 발원하여 장암동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교 부근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경기도 관내의 중랑천은 지방하천으로 분류되지만, 서울에 접어들면 국가하천으로 등급이 바뀐다.
» 중랑천에는 도심 하천이라고 믿기기 힘들 만큼 다양한 새들이 몰려든다.
제법 다양한 새들이 엄청나게 크게 들리는 전철과 자동차 소음, 그리고 빈번하게 오가는 산책인에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롭게 놀고 있다. 도시 속에서 이 정도는 학습한 결과인 것 같다.
» 중랑천 하류 너머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동호대교와 한남대교가 멀리 보인다.
» 크고 넓적한 부리가 특징인 오리 넓적부리.
산책하는 사람들마다 작년보다 새들이 많이 찾아 왔다고 즐거워한다. 눈에 보이는 물새들만 꼽아도 넓적부리, 고방오리, 댕기흰죽지, 흰죽지, 민물가마우지, 청머리오리, 황오리,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등 열 손가락을 거의 꼽는다. 이곳에서 친근하지만 귀한 새인 원앙 70여 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 물 위에서 크게 날갯짓을 하며 몸단장을 하는 고방오리.
» 수컷 머리 뒤에 늘어진 댕기와 노란 눈이 특징인 댕기흰죽지 부부의 다정한 휴식.
» 민물가마우지. 깃털에 푸른 광택이 있고, 꼬리가 길어서 날 때 다리 뒤로 꼬리가 길게 나온다. 한강에 텃새로 정착하는 무리가 늘고 있다. 김포시 월곶면 보구곳리 한강 하구 유도에서 번식한다.
» 몸에 비늘무늬 깃털과 녹색 머리, 노란 엉덩이가 특징인 청머리오리.
이미 새들은 번식기를 맞을 채비가 돼 있다. 암컷 원앙 한 마리에 수컷 원앙이 화려한 색깔의 깃털을 뽐내며 주위에 몰려들어 암컷에게 간택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 물가에 나온 암컷 원앙 한 마리를 수많은 수컷이 둘러싸고 있다. 암컷을 차지하려는 수컷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다.
암컷이 지나가면 수컷은 앞가슴을 부풀려 더 크고 멋지게 보이려고 애를 쓴다. 이미 암컷을 차지한 수컷은 암컷을 지키는 일이 힘들고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도 짝을 찾지 못한 원앙보다는 행복한 것이 분명하다.
» "내 가슴 좀 보세요!" 암컷 원앙이 지나가자 수컷들이 가슴을 한껏 부풀려 자태를 과시하며 관심을 끌려하고 있다.
» 갈대밭 속에서도 암컷을 에워싸는 수컷들의 모습이 흔히 보인다.
» 짝을 맺은 원앙 부부의 여유로운 산책. 수컷 원앙은 번식기가 끝나면 화려한 깃털이 사라져 암컷과 비슷해지지만 암컷은 부리가 검고 수컷은 부리가 붉은 차이가 있다.
» '어쩌면 이렇게 잘 생겼을까.' 물위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는 수컷 원앙.
아쉬운 것은 새들이 쉬고 먹이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수변 공간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을 야박하게 독차지하지 말고 야생동물과 공유한다면 오히려 지친 마음을 달래고 여유로움을 얻는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 수컷 원앙이 고개를 들어 암컷에게 다가오는 다른 수컷에게 경고하고 있다.
» 부채 모양의 주황색 셋째 날개 깃이 위로 솟아 돛단배를 연상케 한다.
낚시금지 안내문이 있어도 무시하고 그나마 새들이 쉴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가 하루 종일 낚시를 하는 모습도 눈에 보인다. 자연을 배려하지 않고 그저 자연으로부터 무언가를 얻겠다는 생각이 앞서는 야박한 처사 같았다. 어제와 달리 새들의 활동이 불안해 보이고 눈치만 살피고 있다.
» 낚시 금지를 무시하고 새들의 쉼터를 점령한 낚시꾼.
» 낚시꾼들에게 밀려 새가 떠난 자리는 황량하기만 하다.
» 낚시 금지 구역에 들어가 불까지 피우는 낚시꾼들.
저녁 무렵 올림픽공원에 황여새와 홍여새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1986년에 완공한 면적이 13만㎡가 넘는 큰 공원이다.
» 올림픽 공원내 몽촌토성.
» 올림픽공원 산책길.
원래는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나, 지금은 체육·문화예술·역사·교육·휴식 등 다양한 용도를 갖춘 종합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 넓은 땅에서 자연에 대한 배려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보기 좋고 걷기 좋은 인위적인 자연을 흉내 냈을 뿐, 야생동물이 머물고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안전하고 자연친화적인 공간은 거의 없었다.
» 산수유 열매.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이다.
» 열매를 먹는 직박구리. 씨끄럽게 울고 파도 모양을 그리며 난다.
» 노랑지빠귀.
» 머리와 등이 진홍색인 양진이.
야생동물을 위한 배려를 한다면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이라도 쉽게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덴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나마 산수유 나무 삼십여 그루가 산책로를 따라 빨간 열매를 떨구지 않고 겨울을 지내고 있어 새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다행스런 일이다. 산수유는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이다.
» 부리가 두터운 콩새 수컷, 낙옆을 들춰 먹이를 찾고 있다.
»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자 목을 빼고 바로 경계자세에 들어가는 콩새 암컷. 수컷보다 색이 연하다.
콩새, 박새, 홍여새, 황여새, 양진이, 직박구리, 노랑지빠귀, 흰지빠귀, 박새, 쇠박새 등 다양한 새들이 많은 산책인들의 눈치를 보며 높은 나무 가지에 앉아 있다가 안전한 틈을 타 산수유 나무로 달려들고, 먹이를 먹은 뒤 다시 날아가는 행동을 반복했다. 사람 때문에 먹이를 먹는 것도 가슴 조이는 긴장의 연속이다.
» 꼬리 끝이 빨간 홍여새.
» 홍여새의 뒷모습.
» 바닥에 떨어진 산수유 열매를 먹고 있는 홍여새.
공원이나 정원에는 열매를 맺는 나무나 씨앗이 많이 달리는 식물을 심는 일이 흔치 않다. 이제는 새들이 풀씨와 열매를 먹을 수 있는 한 그루라도 심는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 꼬리 끝이 노란 황여새 산수유를 부리에 물고 주변을 살핀다.
» 먹이를 물고 쨉싸게 달아나는 황여새.
» 바닥에 떨어진 산수유 열매를 먹고 있는 황여새.
환경을 지키고 보전하는 일이 어려울 것 같지만 해법은 늘 일상 속에 들어 있다. 머지않아 식목일이 다가온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동네마다 있는 공원에 새들이 먹이로 이용할 수 있는 나무를 한 그루라도 심으면, 삭막하던 공원에 새들이 모여들어 어느덧 자연공원으로 탈바꿈하는 기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