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8. 01
황선도 박사의 물고기 이야기 ⑧ 뱀장어(상)
민물에서 7년 성숙하면 태평양 마리아나 해저산맥으로 3000㎞ 여행
알에서 깬 댓잎뱀장어 해류 바꿔 타고 다시 민물로 돌아와
» '풍천장어'의 고향 전북 고창 인천강. 사진=전북도
■ 풍천장어의 비밀
뱀장어하면, 그 맛있다는 고창 선운사 풍천장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풍천'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이제 최종 정리하자면 고창, 그곳엔 풍천이 없다. 그곳에 있는 하천은 '인천강'이다.
그럼 풍천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나라 서, 남해에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하구(河口), 즉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기수역이 풍천(風川)이다. 기수역이란 평균 염분 35‰(퍼어밀이란 천분율을 말한다)의 짠 바닷물(海水, sea water)과 맹 맛의 민물(淡水, fresh water)이 만나 염분이 낮은 건건짭짤한 기수(汽水, brackish water)가 모여 있는 하구역에 해당한다.
풍천은 조석(달과 태양의 인력에 의해 밀물과 썰물이 나타나는 현상)에 의한 조차(밀물과 썰물에 따른 해수위 차이)가 큰 서해안에 인접한 강이나 하천에 간만(밀물과 썰물) 변화에 물흐름의 변화가 생기고, 해풍과 육풍이 교대로 부는 이곳에 서식하는 장어가 바닷물과 함께 바람을 몰고 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하구에서 육지로부터 영양염류 유입이 많고, 담수종과 해수종의 플랑크톤이 함께 서식하여 먹이가 풍부하며, 수온차가 크고 들물과 날물에 따른 물의 흐름이 커서 육질이 좋고 영양이 최고라 하여 민물장어 중에서 하구역 뱀장어인 풍천장어를 최고로 친다.
사실, 뱀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서 강물로 회유하도록 진화되어 있으나, 민물로 올라가지 못하고 하구에서 머물러 사는 놈들도 있다. 어쨋튼, 강으로부터 풍부한 영양염이 흘러 내려오고 바다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물살이 일어 뱀장어가 서식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는 하구에서 잡은 뱀장어가 어찌 맛있지 않겠는가?
» 뱀장어의 한 종류인 갯장어.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뱀장어 조사 십수년에 자연산 뱀장어 한 마리 맛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낙동강 하구에서 실뱀장어 수집상을 하는 하영두씨가 물가에 떠 있는 바지선에서 숯불로 구어 준 자연산 뱀장어는 잊을 수가 없다.
실뱀장어 어도실험을 위해 시료를 구하다 진작에 인연을 맺었으나 특별한 개인적 만남이 없었는데, 어느 늦가을날 초대를 받았다. 찾아간 우리를 배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그곳은 낙동강 하구 한가운데 떠있는 바지선이었다. 화로 숯불 위 석쇠에 자연산 뱀장어가 왕소금이 뿌려진 채 누워있었다.
겨울이 오면 김 양식을 겸하는 하 선장 부부가 그동안 인연에 대한 끈끈한 의리로 뱀장어를 구워 소주 한 잔을 대접해준 것이다. 낙동강 한가운데서 다소 쌀쌀한 늦가을 바람을 맞으면서 뱀장어 한 점에 소주 한 잔이 끝없이 넘어가는 가을밤은 깊어만 갔다.
■ '뻘두적'을 아십니까
뱀장어는 ‘뱀’과 ‘장어’로 이루어진 것으로 장어(長魚)는 긴 물고기란 말이다. 그러니까 뱀장어란 ‘뱀처럼 긴 물고기’란 뜻이다. 뱀장어는 민물장어, 드물장어, 구무장어, 궁장어, 밈장어, 배무장우, 배암장어, 뱀종어, 장어, 짱어, 비암치, 참장어 등의 방언이 각 지방에서 쓰이고 있으며, 전남 고흥 지방에서는 늦은 가을 펄 속에서 잡히는 맛좋은 뱀장어는 ‘뻘두적’이라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일(eel)'이라고 부르는데, 원주민이 장어를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우나기(ウトギ, 鰻)'라 부른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으나 뱀처럼 구불거리며 기어간다는 것을 우네루(ウネル)라 하므로 그 말이 변하여 우나기로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만리(鰻驪), 바이산(白鱔)으로 부른다.
뱀장어 종류에 천연기념물 장어가 있다는데, 어떤 장어일까? 제주도 천지연에 서식하는 무태장어(학명 Anguilla marmorata)가 천연기념물이다. 이는 민물장어와는 다른 종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천지연에만 살고 있지는 않다. 남해안 일부에서도 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시중에 장어라고 통칭하는 것엔 여러 종류가 포함되어 있다. ‘민물장어’라고 불리는 뱀장어(Anguilla japonicus), ‘아나고’라고 불리며 횟감으로 즐겨먹는 붕장어(Conger myriaster), ‘하모’라고 불리며 여수에서나 여름철에 ‘하모 유비끼’(필자는 ‘갯장어 포 데침’이라고 우리말 이름을 붙였다)로 먹을 수 있는 갯장어(Muraenesox cinereus), 그리고 포장마차 연탄불에 즐겨 구워 먹던 ‘꼼장어’라고 불리는 먹장어가 그것이다.
뱀장어, 붕장어, 갯장어는 척추가 딱딱한 뼈로 이루어진 경골어류인데 반해, 먹장어는 입이 흡반 형태에 눈이 퇴화된 원구류로 체형은 장어 모양으로 비슷하나 분류학상 다른 체계에 속한다.
» 일본 나가사키 펭귄수족관에서 촬영된 무태장어. 사진=후우케, 위키미디어 코먼스
■ 뱀장어의 한살이의 미스테리
뱀장어는 연어와 반대로 민물에서 자라다가 산란을 할 때가 되면 깊은 바다로 회유하는데, 바닷물에 적응하기 위하여 2~3개월 동안 강어귀에 머물다가 가을에 먼 바다 산란장으로 이동한다. 이와 같이 뱀장어는 성어기 대부분을 민물에 살기 때문에 흔히 ‘민물장어’라 부른다.
뱀장어와 같이 바닷물과 민물을 왕래하는 왕복성 어류 환경 변화에 적응해야 살 수 있다. 김장 김치 담글 때 배추 숨을 죽이기 위해 소금물에 절이면 그 생생하던 배추가 축 늘어지는 것과 같이 해수와 담수간에는 소금기인 염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을 뱀장어는 다행히 삼투압 조절이라는 생리적응을 통해 이겨낸다.
» 뱀장어의 한살이. 그림=한겨레 물바람숲
그러면 민물에서 자란 뱀장어는 자신이 태어났던 먼 바다의 산란장을 어떻게 찾아갈까? ‘망망대해에 무슨 이정표가 있을 리 없고 오로지 감각과 본능을 내비게이션 삼아 헤엄쳐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설명은 아니다.
이제까지 뱀장어는 심해의 바닥을 따라가는 줄 알았으나, 최근 뱀장어에 무선추적기를 달고 인공위성으로 추적한 결과, 낮에는 천적을 피해 수심 500~900m의 깊은 곳을 헤엄치다 해가 지면 100~300m 수심의 비교적 얕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약 3000㎞ 떨어진 산란장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구체적인 이동경로는 아무도 모른 채 숙제로 남겨져있다.
이동하는 6개월 동안 뱀장어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 때문에 위와 장은 퇴화해 거의 보이지 않고 그 빈자리를 생식소가 채우고 있다. 그러다가 필리핀 동쪽, 괌의 서쪽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 북쪽의 마리아나 해저산맥으로 향한다. 뱀장어는 해저산맥 때문에 교란된 지자기와 염분과 수온이 다른 해류가 만나는 독특한 심해 바닷물을 감지하여 ‘그곳’ 산란장을 찾는다는 설이 있을 뿐이다.
» 동아시아 뱀장어의 산란지. 붉은 원은 성체 발견 장소. 출처=쓰카모토 교수,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산란할 때가 되면 암컷 뱀장어는 눈에 띄게 부푼 배를 하고 있고 수컷은 이보다 조금 작다. 수온은 25~27도로 따뜻한 4월~8월 사이 수심 160m쯤 되는 그곳 해저 산봉우리에서 달이 없어 캄캄한 그믐밤에 떼로 모여 산란을 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뱀장어는 애초 심해어였다가 경쟁을 피해 육지의 담수로 피신해 살지만 죽을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와 알을 낳아 자손을 번식하는 마지막 할 일을 다한다. 모든 것을 쏟아낸 어미 뱀장어는 커다란 눈과 꼬리만 남아 처음 바다를 떠날 때보다 몸무게가 5분의 1로 줄 정도로 수척해진다.
이렇게 종족번식의 사명을 다한 어미들은 산란 후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에 살다 강에 와서 알을 낳고 최후를 맞는 연어와는 정반대지만, 새끼를 낳는 어미의 숭고한 사랑은 매 한가지인 것 같다.
» 산란 전 뱀장어 성어. 출처=쓰카모토 교수, 어류생물학회지
뱀장어의 이러한 신비로운 생활사 때문에 20세기 초부터 뱀장어의 생태에 대해 많은 연구가 수행되었으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미스테리로 남아 있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강에 사는 동북아 뱀장어(학명 Anguilla japonica)의 산란장이 어렴풋이 밝혀진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이다.
일본 동경대학교 해양연구소는 20여년 동안 태평양 일대를 뒤진 끝에 지난 1991년 필리핀 동쪽 해역에서 뱀장어 치어 수백 마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이 연구소의 쓰카모토 교수는 필리핀과 마리아나 해저산맥 사이의 서북 태평양을 뱀장어 산란장이라고 추정하는 논문을<네이처>에 발표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계속된 노력으로 추정 산란장에서 2006년에는 3일된 난황을 가진 새끼를, 2008년엔 알을 품은 성어를, 그리고 2009년에는 알과 성숙한 뱀장어를 발견함으로써 산란장을 알 수 없었던 뱀장어의 생태는 베일을 벗고 있다. 필자도 2006년에 해양조사선 ‘하쿠호마루’호를 타고 태평양 한복판에 있는 마리아나 해산을 누볐던 기억이 난다.
» 마리아나 해산 산란장 부근의 일본 뱀장어 조사선(왼쪽)과 뱀장어 치어를 잡는 모습. 사진=황선도 박사
동북아산 뱀장어는 북위 15도 동경 140도 부근의 마리아나 해산 서쪽 태평양에서 알에서 깨어 ‘렙토세팔루스(leptocephalus)’라는 투명한 대나무 잎(유럽에서는 버들잎으로 표현함) 모양의 댓잎뱀장어 형태로 북적도 해류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 후,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6~12 개월 간 약 3000㎞의 끝없는 여행을 해 오다가 대륙사면에 이르면 측편된 몸이 원통형의 실뱀장어(glass eel)로 변태하여 한국과 중국, 일본의 연안으로 들어온다.
이와 같이 자기 어미가 자란 민물로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모천회유(母川回遊)를 한다는 것은 신비에 가깝다. 댓잎뱀장어에서 원통형의 투명한 실뱀장어로 변태할 때 몸길이가 7~8㎝에서 5~6㎝로 오히려 작아지고, 어미와 그 모양이 완전히 달라 옛날에는 다른 종으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댓잎뱀장어는 대륙사면 밖에서만 채집되며, 변태 과정의 댓잎뱀장어는 동중국해의 1,000m 수심보다 깊은 곳에서만 몇 마리가 채집되었을 뿐으로 자료부족 때문에 뱀장어 유어의 대륙사면 변태기와 대륙붕 회유기에 대한 생태는 아직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 댓잎뱅장어의 변태 과정, 부화 뒤 날짜별 크기를 표시하고 있다. 사진=쓰카모토 교수, 어류생물학회지
그러면 유영력이 약한 댓잎뱀장어가 그렇게 먼 바다에서 어떻게 우리나라 하구까지 올수 있는지, 또 매년 같은 양의 실뱀장어가 올라오는지가 의문이다. 원래 뱀장어는 바다에서 산란해 상대적으로 거친 서식환경과 많은 포식자를 피해 강으로 회유해 와서 성장하고 다시 산란을 위해 강을 내려가도록 진화해온 강하성(降河性, catadromus, 강내림) 물고기이다.
» 뱀장어의 생활사와 회유 과정
태평양에서 부화한 뱀장어 새끼는 북적도 해류와 쿠로시오 해류가 만나 염분이 다른 경계면을 따라 이동하여 우리나라 하구로 회유하게 된다. 이와 같이 동북아산 뱀장어 유생은 몇 만년 동안 계속하여 해류를 잘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살아 남았고, 현재의 회유형태를 형성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얼마 전 연구에서는 해에 따라 변하는 염분전선의 위치와 무역풍에 따른 해수 유동 패턴이 동북아산 뱀장어 자원량 변동을 지배한다고 밝혔다. 태평양 적도 부근에는 폭이 넓은 북적도 해류가 항상 동에서 서로 흐르고, 필리핀 근해에서 쿠로시오 해류와 이와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민다나오 해류로 나누어진다.
만약 뱀장어 유생이 남쪽으로 치우쳐 위치하면 동북아산 뱀장어가 서식하고 있지 않는 민다나오 해류역으로 운반되어 버리고, 훨씬 북쪽에 위치한다면 유속이 아주 느리기 때문에 댓잎뱀장어에서 변태한 실뱀장어가 육지로 회유하는 시기를 놓쳐버리게 된다.
1998년 엘니뇨 때에는 전선의 위치와 해수 유동이 바뀌어 치어가 성공적으로 쿠로시오에 이르지 못했고, 이에 따라 실뱀장어 어획량이 감소한 일이 있었다. 이는 평상시에는 염분전선이 북위 15~16도에 있었으나, 엘니뇨 발생시에는 적도쪽으로 이동하여 뱀장어가 염분전선 남쪽에서 산란하므로 쿠로시오 해류에 편승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엘니뇨 같은 지구적 기상변동으로 바다 환경이 달라지면 실뱀장어가 동아시아로 돌아오는 패턴에 변화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실뱀장어 어획량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치어 회유기 동안 염분전선 위치 확인과 북서태평양 해류 양상을 조사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실뱀장어는 대만 및 일본 남부 도서에는 12월부터, 제주도 및 양쯔강 하구는 1월부터, 남해안에는 2월부터, 서해 연안에는 3월부터 약 3달간 소상(遡上, 강오름)하는데, 남쪽일수록 빠르고 북쪽으로 갈수록 늦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때부터 몸에 색소가 형성되기 시작한 ‘엘버(elver)’를 통틀어 실처럼 가늘고 길다고 해서 ‘실뱀장어’라고 부른다. 뱀장어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성장함에 따라 이름이 달라 부화 직후부터 어미 뱀장어가 될 때까지 댓잎뱀장어, 흰실뱀장어, 흑실뱀장어로 부르고 있다.
» 실뱀장어. 사진=황선도 박사
부화 후 2년까지는 암수 구별이 어려우며(체장 35㎝가 되어야 암수 구별이 가능하다), 자연에서 성장한 뱀장어는 등이 아주 검지 않고 약간 노란색이며 배쪽도 약간 노란색을 띠나, 양식산은 등이 검고 배쪽이 흰색으로 자연산과 구분된다.
뱀장어는 여름철 수온 20~32도 범위에서 새우, 게, 곤충까지 잡아먹는 등 활발한 먹이활동을 하지만, 수온이 내려가면 식욕이 줄고 10도 이하에서는 거의 먹지 않으며 겨울철에는 진흙 속에 묻혀 지낸다.
이렇게 민물에서 평균 5~7년(우리나라에선 최대 17년생 발견)간 생활하다가 성숙하면 바다로 내려가 산란한 후 죽는 것으로 추정된다. 민물장어 가운데 민물에 사는 것은 배 부분이 노랗게 되어 있어 ‘황뱀장어’라 부르며 10~11월 가을에 산란하러 바다로 내려가는 놈은 ‘은뱀장어’라 한다.
» 민물에서 성숙중인 황뱀장어(Yellow eel)과 바다로 가기 위해 은색으로 변한 은뱀장어(Silver eel).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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