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신비·환경

끈적한 루비의 치명적 유혹-식충식물 끈끈이주걱

자운영 추억 2012. 7. 23. 22:39

김성호 2012.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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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 양분 구할 수 없는 산성 습지에 분포…끈질긴 생명력의 화신

끈끈이에 벌레 잡히면 6시간 동안 소화액 분비, 껍질과 날개까지 흡수 

 

rotundifolia01.JPG »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볼 수 있는 식충식물 끈끈이주걱. 사진=김성호 교수

 

아무리 혹독한 환경에 놓인 생명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살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을 눈여겨보면 쉽게 살아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더욱이 뿌리를 땅에 묻고 있기에 모든 환경의 변화를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식물이  환경의 변화를 견뎌냄은 물론 끝내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리저리 편한 곳으로만 파고드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00103821_P_0.jpg » 끈끈이주걱의 루비빛 끈끈이를 확대한 모습.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식물은 빛에너지를 이용하여 두 가지의 무기물, 곧 잎을 통해 흡수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흡수한 물로부터 탄수화물이라는 유기물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귀한 능력을 개발했습니다.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을 만드는 것이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엄청난 능력입니다.

 

하지만 물과 이산화탄소만으로 온전히 식물이라는 생명을 유지할 수는 없고 16 종류의 원소만큼은 필수적으로 흡수해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질소는 단백질과 핵산의 합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원소입니다.

 

대기는 무려 78%가 질소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많은 질소를 직접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몇몇 세균뿐이며, 식물이 간접적으로라도 대기 중의 질소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질소고정세균과 공생하는 아주 좁은 길뿐입니다.

 

하여 대부분의 식물은 할 수 없이 토양으로부터 질소를 흡수해야 하는데, 토양에 있는 질소의 공급원은 식물과 동물의 사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물의 사체에서 비롯하는 유기물 형태의 질소 역시 식물은 바로 흡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때, 유기물 형태의 질소를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무기물 형태로 바꾸어 주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토양에 서식하는 세균과 균류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습지나 소택지는 강한 산성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강한 산성 환경에서는 유기물 형태의 질소를 무기물 형태로 바꾸어 주는 토양미생물이 살기가 힘듭니다. 결국 습지나 소택지는 원초적으로 식물이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습지와 소택지에는 여전히 식물이 무성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식물들은 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것인데, 그 중에 벌레를 잡아 소화시켜 벌레의 질소성분을 흡수하는 식물이 있어 이를 벌레잡이식물 또는 식충식물이라고 합니다. 벌레잡이식물은 전 세계에 600여종이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끈끈이귀개과 2속 4종, 통발과 2속 7종으로 모두 2과 4속 11종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00768934_P_0.jpg » 벌레잡이식물 끈끈이귀개.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우리나라에서는 볕이 잘 드는 고산습지가 벌레잡이식물의 주요 분포지가 됩니다. 이렇게 서식 환경이 워낙 독특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벌레잡이식물을 만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나마 개체수가 많은 것은 끈끈한 물질을 분비하며 생김새는 주걱을 닮은 끈끈이주걱입니다.

 

끈끈이주걱이 곤충을 유인하고, 포획하고, 소화시키는 일은 잎에 나있는 선모(腺毛)가 담당합니다. 붉은 빛깔의 작은 루비 알갱이가 방울방울 달려 있는 것 같은 선모 끝에는 평소 끈끈한 점액이 묻어있습니다.

 

00186606_P_0.jpg » 대암산 용늪의 끈끈이주걱. 사진=강재훈 기자

 

끈끈이주걱을 '선 듀'(sundew)라고 부르는 이유는 선모의 모습이 마치 태양이 이슬이 되어 맺혀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붉은 보석에 현혹된 벌레가 오목한 주걱에 달라붙으면 가까이 있는 선모부터 구부러지면서 벌레를 감싸기 시작합니다.

 

벌레를 완전히 감싸는 데에는 6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벌레를 감싼 선모는 이제 더 이상 끈끈한 점액을 분비하지 않고 벌레를 소화시킬 소화효소를 본격적으로 분비하기 시작합니다. 최소한 6 종류의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 중에는 단백질분해효소와 키틴분해효소가 있어 곤충의 껍질과 날개마저 모두 소화를 시킵니다. 이렇게 선모와 잎을 통해 흡수된 소화산물은 토양에서 얻을 수 없는 양분을 대신 채워줍니다.

 

00198762_P_0.jpg » 벌레잡이식물인 통발. 수원 칠보산 습지에서 촬영한 것이다.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벌레잡이식물이 벌레를 잡고 또 그것을 소화시켜 얻은 양분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독특한 식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토양으로부터 양분을 얻을 수 있는 정상적인 길이 있는데도 그 길을 버리고 다른 생명체인 곤충을 잡아 허기를 채우는 것은 아닙니다.

 

곧 저들이 곤충을 취하는 것은 자신을 갉아 먹는 곤충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그저 습지라는 독특한 환경에서도 생명을 포기할 수 않는 생명에 대한 강한 의지의 발현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만난 끈끈이주걱은 나에게 이런 말은 전하는 듯합니다. 생명체에게 스스로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없다면 그것을 더 이상 생명체라 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