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릉 산책로에서 번식 나선 숲속의 '색동 신사'
하루 170번 먹이 날라 키워 마침내 둥지 떠나
» 올해 태어난 오색딱따구리 새끼가가 첫 비행에 앞서 나무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지난 4월27일 김포시 장릉산 숲속에 오색딱다구리가 번식을 위해 벚나무에 둥지 구멍을 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닥에는 쪼아낸 나무 부스러기가 수북했다.
이미 열흘쯤 전부터 집짓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구멍으로 수컷 오색딱다구리 몸이 반 이상 들어갈 만큼 판 상태였다.
» 오색딱따구리 둥지 주변의 모습.
» 수컷이 벚나무를 쪼아내 둥지를 파고 있다.
» 상반신이 들어갈 만큼 팠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 부리고 쪼아낸 벚나무 부스러기가 숲 바닥에 수북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빈번하게 다니는 길목에 둥지를 튼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천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러 길 가까이에 둥지를 지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 오색딱따구리가 둥지를 튼 곳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목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엔 경계심이 많은 새들이 잘 날아들지 않기 때문에 다른 새들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고 새끼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둥지를 뚫기에 적당한 나무가 마침 이곳에만 있었을 수도 있다.
새끼들이 다 자라 둥지를 나오는 순간 안전한 곳은 없다. 새끼의 안전을 위해 여러 위험을 고려했을 때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을 골랐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 '이만하면 됐어'. 수컷이 애써 파놓은 둥지와 주변 여건을 암컷이 둘러보고 있다.
» 둥지 주변에 개복숭아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4월30일 마침내 집이 완성되었다. 암컷은 바로 산란에 들어같 태세다.
» 잘 정돈된 오색딱따구리 둥지의 들머리.
» 딱따구리 둥지는 사진 맨 왼쪽 나무에 있어 인근 벤치로부터 몇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다.
정성스럽게 알을 품고 있는 오색딱다구리는 새끼가 부화하기를 기다리며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5월17일 오랜 시간을 뒤로 하고 알이 14일 만에 부화 되어 나무 구멍 속에서 생명의 소리가 나즈막 하게 들린다. 대략 4개의 알을 낳고 부화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 마침내 알에서 깨어난 새끼에게 수컷이 첫 먹이를 날라왔다.
» 암수가 먹이를 함께 가지고 왔다.
오색딱다구리는 빨간색, 검은색 ,흰색 ,주홍색 깃털로 되어 있어 '오색'이 아니라 '사색'이지만, 빛이 반사하는 각도에 따라 남청색, 회색, 갈색 등 여러 가지 색깔로 보인다. 오색은 꼭 다섯 가지 새깔이라기보다는 화려하다는 뜻에서 붙은 말일 것이다. 수컷은 머리 위에 빨간 반점이 있으나 암컷은 머리가 검은 빛이어서 구별하기가 쉽다.
» 새끼가 어려 먹이를 주려면 몸을 둥지에 깊숙히 넣어야 한다.
오색딱따구리는 나무에 수직으로 붙어 나선형으로 돌며 오르내린다. 먹이를 줄 때도 방해요인이 있으면 노출되는 것을 피해 나선형으로 돌며 나무 뒤로 숨었다 좌우로 번갈아 가며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꼭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다.
암수가 작은 먹이를 나르기 시작한다. 하루 하루 새끼들이 내는 소리가 커져 간다.
» 김포 장능관리소가 오색딱다구리 번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놓은 안내판을 탐방객들이 살펴 보고 있다.
» 먹이를 받아 먹은 새끼의 배설물을 버리기 위해 물고 나오는 어미.
구멍 속에 들어있으니 소리 크기를 듣고 얼마나 자랐는지 짐작할 따름이다. 태어난 지 열흘이 되면서 오색딱따구리 암수가 바쁘게 움직인다. 새끼들이 커가면서 먹는 양이 늘었기 때문이다. 동이 트는 새벽 5시부터 해가 긴 유월 저녁 7시까지 먹이를 열심히 나른다.
어미가 먹이를 가져오는 간격은 5분 정도이고 길면 7분 가량이 걸린다. 하루에 한 마리가 85번 정도 먹이를 나르니 두 마리가 약 170번 정도 먹이를 새끼들에게 먹인다. 구멍 들머리의 벚나무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들락거린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자식에 대한 지극한 정성은 눈물겹다.
6월1일 알이 깬 지 16일만에 어두운 구멍 속에 새끼가 어렴풋이 보인다. 세상의 빛줄기와 가까워진다. 새끼가 자랄수록 둥지가 좁아지는지 수시로 어미가 들어가 구멍을 넓게 파낸다.
» 구멍 속에서 새끼가 보이기 시작한다.
» 배고픈 새끼는 구멍 밖으로 목을 내밀고 먹이를 기다린다.
6월6일 부화 20일만에 오색딱다구리 새끼가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세상을 바라본다. 이제 곧 둥지 밖으로 나올 것이다.
이 즈음에 주변 연못에서는 흰뺨검둥오리 새끼가 무려 18마리나 태어났고 쇠물닭도 4마리의 새끼를 쳤다.
» 흰뺨검둥오리의 대 가족.
» 몸이 가벼운 흰뺨검둥오리 새끼들이 연잎 위에 올라가 쉬고 있다.
» 새끼들을 데리고 나온 쇠물닭.
» 쇠물닭 새끼도 연잎 위에서 쉬기를 좋아한다.
» 시민들은 오색딱따구리의 둥지와 번식 모습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 새끼에게 먹이를 주기에 바쁜 암컷(오른쪽)과 수컷.
» 오색딱다구리 새끼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먹이를 주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
번식 관찰의 마지막 정점은 새끼가 둥지를 떠나는 모습이다. 새끼가 구멍의 테두리를 밟고 올라서면 둥지를 박차고 떠날 확률이 높다.
» 뽕나무 오디 열매를 물고 온 오색딱다구리 암컷.
» 암컷은 곤충을 물어오고 수컷은 둥지 밖으로 배설물을 가지고 나온다.
» 어미는 곤충, 애벌레, 열매등 다양한 먹이를 잡아준다.
» 먹이를 주고 날아가는 어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새끼.
6월11일, 알에서 깬 지 25일이 지났다. 새벽 5시10분께 새끼 한 마리가 갑자기 구멍에서 빠져나와 나무 밑으로 떨어진다. 땅에 닿자 빠르게 걸어서 숲속으로 숨는다. 이어 나무가 있는 곳을 향해 가더니 나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나무 구멍에서 생활한 탓에 새끼의 첫 비행은 다른 새들보다 어설프다. 그래서 땅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새끼는 마르지 않은 듯 촉촉한 깃털을 가지고 있다. 주로 새벽에 둥지를 떠나지만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 처음으로 둥지를 떠나 밖으로 나온 오색딱다구리 새끼.
» 땅에 떨어진 뒤 나무를 황급히 찾아 위로 올라 가는 오색딱다구리 새끼.
» 암컷은 뽕나무 열매 오디를 새끼 먹이로 선호하는 것 같다.
» 수컷이 둥지 밖으로 새끼를 유인하고 있다.
6월12일, 부화 26일만에 3마리의 오색딱다구리 새끼들이 차례로 둥지를 떠났다.
다른 새끼들은 구멍 둥지를 나오다 모두가 땅에 떨어졌지만 마지막 새끼는 구멍에서 나와 나무 위를 향해 올라간다.
» 겁많은 새끼의 이소를 돕기 위해 아빠가 나섰다.
» '자, 한 발 이렇게 내디뎌 봐'
» '나무에선 이렇게 위를 향해 서는 거야'
» '이렇게요?' '그래, 잘 했다'
» '이제 어떻게 해요?'
» '조심, 주변을 경계해야지'
» '아빠를 따라서 더 높이 올라와야 날 수 있어'
» 이얍! 첫 비행이다.
» '아빠, 나 어때요?'
그러더니 다른 나무로 건너 뛰는 멋진 비행 모습을 선보인다. 26일 만에 모든 새끼들이 둥지에서 나왔다.
» 밖에서 첫 먹이를 먹는 오색딱다구리 새끼.
21일이면 둥지에서 밖으로 나오지만 5일 정도 늦은 것은 사람통행이 많아 새끼를 키우는데 방해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끼를 노리는 천적은 없으니 안심이다.
» 아름답던 털은 새끼를 기르느라 칙칙해졌다. 46일만에 몸 단장을 하는 오색딱따구리 어미.
■ 장기간의 오색딱따구리 번식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 김포 장릉 관리사무소 소장과 직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