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도 박사의 물고기 이야기 ④ 실치
실치는 흰베도라치 새끼, 뱅어와는 무관
먼바다에서 산란 뒤 새끼 때 연안에 몰려와…어획량 급감, 자원회복 시급
▲흰베도라치 성어의 얼굴 모습. 먼바다 바닥에 사는 물고기이다. 사진=국가자연사연구종합정보시스템.
■ 곡우 때 장고항에서만 맛 보는 실치회
봄 한철, 그것도 4월 한 달 동안만 맛 볼 수 있는 실치가 당진시 장고항 포구에서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조금 이른 3월말부터 잡히기 시작해 갓잡아 올린 살아있는 실치를 회로 맛볼 수 있으니 서둘러야겠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 말이다.
육지에서는 경칩을 전후해 고로쇠 수액을 먹을 수 있다면, 바다에서는 곡우를 전후해서 실치회를 한정 판매한다. 극히 제한된 시기에 극히 제한된 곳에서만 음식으로 맛 볼 수 있기 때문에 제철 음식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전국에서 장고항으로 몰려 공급이 달릴 정도다.
▲장고항에 신축된 당진시 수산물유통센터.
▲먹음직스런 실치회. 사진=노한욱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원.
■ 알쏭달쏭한 실치의 실체
이러한 인기와 달리 실치가 어떤 물고기인지, 왜 이때만 실치를 잡을 수 있는지, 또 실치가 뱅어 새끼인지 등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대 초반 실치가 처음 학계에 보고된 이후 1989년야 석사학위 논문 한 편이 나온 것이 연구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10여년 넘게 검증과 보완 조사 끝에 2001년에 국내 학술지와 2008년 국제학술지에 실치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이 유명한 물고기의 정체가 조금이나마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실치 엄마는 베도라치류이다. 서해에서는 흰베도라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실치는 ‘흰베도라치 새끼’라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뱅어 새끼가 아니다.
베도라치류는 분류학적 어려움 때문에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황줄베도라치과에 속하는 베도라치에 흰베도라치가 새롭게 보고되어 몇 종밖에 구분되지 않았으나, 최근 어류도감에는 2개 과에 25종으로 분류되어 있어 분류학의 발전을 실감하게 한다.
이웃하는 분류계통으로 장갱이과가 있는데, 가끔 베도라치류 무리 속에 모양은 비슷하나 덩치가 제법 크고 머리 위쪽에 아귀처럼 흉칙한 돌기가 괴상하게 돋아 있는 것들이 눈에 띄는데 이들은 괴도라치나 왜도라치이다.
▲갓 잡아올린 흰베도라치의 새끼인 실치.
▲실치가 자란 흰베도라치 성어. 미꾸리처럼 생겨 깊은 바다 밑바닥의 돌틈에 숨어 산다. 사진=국가자연사연구종합정보시스템.
■ 깊은 바다와 연안을 오가는 흰베도라치의 한살이
▲외해와 연안을 오가는 흰베도라치의 한살이. 왜 이런 이동을 하게 됐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흰베도라치는 10월부터 알이 배기 시작하여 대부분의 물고기가 산란하지 않는 겨울철인 11~12월에 연안을 벗어나 먼바다에서 산란한다. 낮은 수온 때문에 알에서 깨어나는 부화기간이 한 달 정도 길게 지속되어 1월이 되면 알에서 깨어난다.
2월이면 1㎝ 크기의 흰베도라치 치어인 실치가 서해 중부 보령 앞바다에 넓게 퍼져 있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해류를 따라 먼바다에서 앞바다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회유를 한다.
2월이 지나 3월에는 이미 어린 것들이 보육장인 연안과 만 안쪽으로 바짝 붙어 떠서 들어오며, 3~4월에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하면서 우리가 잡는 크기의 실치가 되는 것이다.
4월이 끝나면서는 급속하게 연안을 빠져나가 5~6월까지 먼 바다로 이동하고, 7월부터는 훌쩍 커서 어미 모양을 하게 된 흰베도라치가 바닷속 깊은 바닥으로 이동하여 다시 연안 얕은 곳으로 이동하는 10월까지는 저층 생활을 한다.
다 자란 어미는 암초지대에 살며 3살까지 산다. 그래서 8~9월 여름철에는 조류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낭장망 어구로 흰베도라치 어미를 채집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이제 실치의 실체인 흰베도라치의 한살이가 이해되었길 바란다.
▲실치잡이 배들이 들어오는 장고항의 석양 풍경.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당진 장고항은 서산 삼길포와 함께 지난 1970년대 실치잡이가 성행할 때는 150여 가구가 소위 멍텅구리배로 불리던 무동력 중선으로 실치잡이를 해왔다. 그러나 1980년대 시작된 방조제 축조와 산업단지 개발로 1990년대 들어서는 연안에서 실치잡이 어선은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인근 앞바다에서 개량 안강망 그물로 실치를 잡고 있다.
이 지역 주민 강정의(53)씨는 “실치를 본격적으로 횟집에서 회로 팔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이며 2000년 초부터 장고항 실치회 축제를 만들어 이젠 성공한 지역축제로 발전하였다”며 “그러나 예전에 비해 어획량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 물량 대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실치를 말린 뱅어포. 자원회복이 시급하다. 사진=노한욱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원.
작은 멸치인 세멸과 함께 실치는 자원 보호를 위해서는 잡지 말아야 하는 치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영세 어업인의 생활과 전통적 요식문화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어느 한쪽에서만 볼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쯤해서 정부와 학계에서는 자원회복 방안을 슬기롭게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흰베도라치 생활사에서 알 수 있듯이 어미로 여름내 바다 속 암초지대에서 살며 산란을 준비한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이사장 양태선)은 당진시와 함께 지난해부터 물고기의 서식장 조성을 위해 연안 바다목장 사업을 준비해 오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두어 지역특산 수산물을 이용한 관광산업이 계속될 수 있길 기대한다.
장고항 실치회는 4월 말까지 즐길 수 있으며, 더불어 이곳에서 ‘뱅어포’도 찾아볼 만하다. 실치를 뱅어 새끼로 잘못 알고 붙여졌던 이름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실치포’라 부르는 것이 옳겠다.
옛날 어머니가 고추장 발라 살짝 구워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셨던 그 뱅어포를 맛보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뱅어포는 멸치와 달리 삶지 않고 생 실치를 김발에 널어 말리는데, 해풍과 태양광으로 자연 건조시키는 전통방법을 고수하는 집이 아직 남아있다. 추억이 서린 수산물이다.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