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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착한 산양, 비무장지대에서 만나다---7/30 한겨레

자운영 추억 2011. 8. 13. 22:43

철책선 근처에서 칡잎과 버섯 먹는 모습 지척에서 촬영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살아있는 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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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6개 바꿔 타고 고진동으로


산양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북한강 최상류 지역으로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에 해당하는 오작교 지역이니 우선 화천으로 가야 합니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강원지역의 비무장지대에 접근하는 것은 조금 먼 길입니다. 길은 여러 갈래여서 갈 때마다 혹시 좀 가까운 길은 없나 하고 새로운 경로를 탐색해 보지만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소요 시간은 거의 비슷합니다. 


밤길인데다 몸마저 살짝 고단하니 오늘은 운전이 편한 고속도로를 이어가는 것으로 정합니다. 88고속도로, 대진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포함하여 6개의 고속도로를 지나 춘천에 이르고, 춘천 시내를 관통한 다음 구불구불한 국도를 30분 정도 더 지나 화천에 도착하는 경로입니다.


지금까지 산양을 만나기 위해 다녔던 비무장지대는 양구의 두타연, 가칠봉, 천미리 지역과 고성의 오소동 계곡, 고진동 계곡이었습니다. 


고진동(苦盡洞)이라는 지명은 금강산으로 향하는 여정 중 이곳만 오르면 그 고생이 끝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계곡의 경관이 빼어나기 이를 데 없어서 이곳만 둘러보아도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고진동 계곡뿐만 아니라 둘러본 지역 모두 원시림이 보존되고 있는 높은 산악지역으로 산양의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 해당하는 곳이었으나 결국 산양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시기적으로 워낙 녹음이 우거지고 풀이 무성하여 관찰의 어려움 또한 크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림과 만남의 의미를 지닌 오작교에서는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자정이 막 넘은 시간, 88고속도로 남원 톨게이트로 진입합니다.


철책선 넘어 강물은 구불구불 흐르고


고속도로 6개를 차례로 지나고 춘천도 지나 마침내 화천에 도착했습니다. 푸르른 빛이 어두움을 분주히 밀어내고 있습니다. 곧 동이 트려나 봅니다. 오작교 일대의 비무장지대 취재팀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북한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곳에서 잠시 눈을 붙입니다.


취재팀과 합류한 뒤 민간인통제선 초소로 이동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공보장교가 약속시간에 맞춰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정식절차를 거쳐 군부대 측에 출입에 대한 허락을 미리 얻었고, 같은 부대의 장교가 배석까지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민통선 통제소의 출입문이 바로 열려지는 않습니다. 


출입을 신청한 사람과 직접 온 사람의 신원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출입문이 열리고 민통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행동은 공보장교의 통제에 철저히 따라야 합니다. 어디에 지뢰가 묻혀있는지는 귀신이 있다 해도 모를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몇 곳의 초소를 더 거친 후 비포장도로에 들어섭니다. 민통선 지대는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인데, 특히 동부전선의 비포장도로는 사실 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험합니다.


구불구불한 북한강 상류의 물줄기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급경사의 좁은 벼랑길을 아슬아슬하게 감아 돌며 한참을 지나 오작교에 도착합니다. 새로 만든 오작교가 강을 가로지르고 있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민족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예전의 다리입니다. 


폭격으로 이리저리 휜 철골에는 붉은 녹이 묵묵히 내려앉아 스스로 갉아먹은 60년의 세월에 지치지도 않는지 여전히 북한강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나는 알바 없다며 굽이쳐 흘러가기 바쁜 강물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강 양쪽으로는 철책이 이어집니다. 흐르는 바람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소통할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이제 철책에 바로 붙어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아득하게 치솟은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산과 계단 사이에는 폭 10 미터 정도의 산비탈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시야 확보를 위해 마련한 공간이므로 나무는 베어져 있고 풀만 무성합니다. 


8월 중순의 폭염은 참 부지런도 합니다. 해가 중천으로 자리를 옮기려면 아직 멀었건만 장비를 챙기는 잠시 동안에도 땀이 뚝뚝 떨어집니다. 욕심을 내서 여러 개의 렌즈를 챙겨 짊어졌더니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망원렌즈 하나로 짐을 줄입니다. 혹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산양을 만나게 된다면 눈으로만 담아야 하겠습니다. 사실 망원렌즈와 카메라 한 대 그리고 삼각대만으로도 한 짐입니다.


산의 중턱 정도에 올랐습니다. 다리가 휘청거려 도저히 한 계단조차 더는 오르지 못하겠는데 산양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까마득하게만 올려다 보이는 정상까지 철책을 점검하고 내려오는 병사들은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으면서도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내려갑니다. 


물이라도 전해주고 싶은데 물마저 이미 바닥이 났습니다. 오직 계단으로만 하루에도 몇 번씩 정상을 오르내리며 철책을 점검하는 단순한 일상의 임무를 꿋꿋하게 지켜내는 우리의 아들들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잠시 계단을 비켜설 수 있는 곳이 나와 짐을 내립니다. 다리의 형편도 그렇지만 숨이 턱까지 차올라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포기합니다. 중턱에만 이른 것이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철책을 경계로 북녘과 남녘이 한 눈에 들어오며, 이미 꽤 높은 곳이라 구불구불 휘감아 도는 북한강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입니다.


"너무 가까워 화각이 넘칩니다"


이글거리는 땡볕을 두 시간 가까이 온 몸으로 흡수하고 있을 때였나 봅니다. 주로 시선이 멈춰있던 정상 쪽이 아니라 오히려 아래쪽에서 뭔가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풀에 가려 몸이 온전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움직임이 있는 희끗희끗한 물체이니 산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상 쪽으로 향해있던 카메라의 방향을 조용히 바꿉니다. 


마침내 녹색의 풀 사이로 끝이 뾰족한 두 개의 검은 색 뿔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산양입니다. 산과 계단 사이의 좁고 급한 비탈에서 산양 하나가 풀을 뜯다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산속에서 막 비탈로 빠져 나온 듯 산 쪽에 가깝게 있습니다. 


망원렌즈를 통해 보고 있지만 아직 멉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몸을 돌려 산으로 다시 들어가도 끝이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도 끝입니다. 산비탈을 타고 그대로 올라와 주면 좋겠는데 산양이 어디로 이동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풀을 뜯던 산양이 방향을 바꿔 다시 산으로 들어가는 듯하더니 비탈을 따라 조금씩 올라와줍니다. 산양의 걸음 하나하나에 나의 맥박 수는 수시로 바뀝니다. 다양한 종류의 풀들이 있는데 유난히 칡잎만 골라 뜯어 먹고 있습니다. 


다시 산 쪽으로 들어가나 싶었는데 숲 가장자리에 있는 잘려진 나무 밑동으로 향합니다. 버섯을 찾아 먹고 있습니다. 어떤 버섯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거리로는 너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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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산양이 바로 내 앞을 지나갑니다. 너무 가까워서 몸 전체가 화각을 넘칠 정도입니다. 눈까지 서로 마주칩니다. 눈이 정말 착합니다. 


아무리 얼어붙은 듯 서있는 것이라도 커다란 삼각대 위에 놓인 카메라는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데도 산양이 너무 경계를 하지 않아 오히려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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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있는 곳을 지나 위쪽으로 계속 오르더니 몸 전체가 적절히 화각에 들어올 즈음에서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고개까지 돌려줍니다. 게다가 특별한 몸짓까지 하나 더 보탭니다. 오른쪽 뒷다리를 올려 머리를 긁고 있습니다. 덕분에 배가 온전히 드러나게 되었는데, 4개의 젖꼭지가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암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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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되짚어 내려오는 길은 지옥 계단이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부터 벌컥 벌컥 들이키고 차가운 계곡 물로 등목을 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입니다. 


철책을 점검하고 내려 온 병사들이 정상 쪽에서 3마리의 산양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취재팀 전체가 말없이 서로 얼굴만 보고 있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것으로 의견을 하나로 정합니다. 가을을 기약합니다.


산양을 만난 지 시간이 조금 흘렀는데도 잠을 청하며 눈을 감으면 산양의 맑고 착한 눈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벼랑 끝에서도 200만 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지구의 모진 역사를 다 이겨낸 산양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벼랑 앞에서는 불과 수십 년의 짧은 시간에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산양이란 어떤 동물?


산양은 200만 년 전 지구상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직립을 하고 불과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를 160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산양은 그보다 훨씬 앞서 출현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산양은 태초의 모습을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립니다. 산양은 우제목 소과에 속하는 야생 동물로 천연기념물 제 217호와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Ⅰ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강원도의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일부 개체가 생존합니다. 또한 산양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의 부속서Ⅰ에 등재되어 있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기도 합니다.


산양은 다른 동물이 접근하기 어려운 1,000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서식하며, 특히 서식지의 기본 요건은 암벽지역입니다.


겨울철에 폭설이 내리면 먹을 것을 찾아 민가 주변의 낮은 지대로 내려오기도 하지만, 한 번 서식처를 정하면 그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벗어나더라도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는 습성이 무척 강한 동물입니다. 


체형은 염소와 비슷하나 더 큰 편이고 턱에 수염이 없습니다. 다리는 짧으며 체색은 전반적으로 회색이 두드러진데 등 쪽 중앙으로는 검은 색 띠가 꼬리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암수 모두 뒤로 굽은 뿔이 있으며, 뿔의 밑 부분에 있는 고리 모양의 주름은 나이에 따라 늘어납니다. 발굽은 험준한 산악 지형의 생활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 아찔할 정도로 깎아지른 절벽도 미끄러짐 없이 잘 타고 다닙니다.


산양은 식물의 연한 잎과 줄기라면 딱히 가리지 않고 잘 먹습니다. 도토리를 비롯하여 산에서 나는 열매도 즐겨먹으며, 먹이가 부족한 겨울에는 낙엽, 이끼류, 조릿대, 나무껍질, 침엽수의 잎과 가지까지 먹습니다. 


짝짓기는 10월 즈음에 이루어지며, 7개월이 지난 이듬해 5월께 보통 한 마리 혹은 드물게 두 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수유 기간은 1개월 정도이고, 태어난 지 20일 남짓 지나면 어린 산양은 먹이활동을 시작합니다. 어린 산양이 먹이활동을 시작하는 5 ~ 6월은 산의 모든 식물에서 잎이 돋아나 먹이가 가장 풍부할 때입니다. 


2 ~ 5 개체가 작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경우가 많으며, 낮에는 주로 안전한 바위 벼랑의 쉼터에서 되새김질을 하고 이른 아침과 저녁에 인접한 숲으로 옮겨 먹이활동을 하다 밤에는 바위 사이의 틈 또는 동굴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잠을 잡니다.


1950년대 까지만 해도 태백산맥 줄기의 높은 산악지역에서 산양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산양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게 되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는 한약재, 박제, 먹을거리 용도로 이루어진 무분별한 포획이었습니다.


1964년 3월과 1965년 2월 강원도 지역에 내린 폭설 때 포획된 산양이 무려 3,000 개체가 넘었다는 기록마저 있을 정도입니다. 그 많았던 산양의 개체수가 종 존속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감소하자 1968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보호하게 됩니다.


2002년 환경부 자료를 보면, 산양은 전국 21 곳의 서식지에 690 ~ 784 개체가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눈길이 멈추는 것은 21 곳의 서식지 중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여 자체적으로 번식과 존속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100 개체 이상의 서식지는 4곳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4곳(비무장지대, 양구-화천, 설악산, 울진-삼척-봉화)을 제외한 다른 서식지는 소규모의 개체들이 산재해 있어 근친교배 등의 이유로 향후 수십 년 이내에 멸종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서식지 주변의 환경단체와 정부는 힘을 모아 산양 복원사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산양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강원도 양구에서는 2007년 산양증식복원센터의 문을 열고 산양의 증식과 복원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의 증식 및 복원 사업은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입니다. 하지만 외양간을 잘 고치면 다시 소를 잃는 일은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