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2.01 09:00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었던 남자는 결국 사귄 지 1년이 채 못 된 이듬해에 그녀와 헤어지기로 합니다. 2년 후 그녀는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로 인해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고 맙니다.
사생아로 태어나서 성장기에 많은 상처를 받고 자라 당시의 사회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 남자는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한 편의 소설을 씁니다. 사랑했던 여인 마리 뒤플레시스를 ‘마르그리트 고티에’라는 창부로, 그리고 자신을 ‘아르망’이라는 순진한 청년으로 등장시켜서 말입니다. 그가 바로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소설가 알렉산드르 뒤마의 아들이고, 그 작품이 바로 『La dame aux camélias』입니다. 여주인공이 동백꽃으로 치장하고 다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네들에게 붉은 동백꽃은 정열의 꽃으로 인식되는 모양입니다. 참고로, 알렉산드르 뒤마는 아버지나 아들이나 같은 이름을 썼기 때문에 아버지를 뜻하는 페르(pere)와 아들을 뜻하는 피스(fils)로 구별해 부릅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거쳐 『춘희(椿姬)』라는 작품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춘희는 일본식 한자어로, 춘(椿)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참죽나무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동백나무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제목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한테도 춘(椿)자는 동백나무를 나타내는 올바른 한자가 아니랍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해 『춘희(椿姬)』로 굳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 ▲ 동백나무
그 작품 때문에 동백나무는 유럽 쪽의 나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만, 아닙니다. 동백나무는 아시아가 원산지인 나무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타이완에서 자랍니다. 그런 동백나무가 18세기 말쯤에 유럽으로 전해졌습니다. 예수회 선교사 카멜이 전하였기 때문에 동백나무의 학명 중 속명이 카멜리아(Camelia)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들 뒤마의 원제목 『La dame aux camélias』에도 카멜리아가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 동백나무의 꽃
그 정열의 꽃이 우리나라에서는 약간 다르게 인식됩니다. 이유는 낙화에 있습니다. 동백나무는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는 게 아니라 상하지도 않은 커다란 꽃을 송이 째 뚝뚝 떨어뜨려 보는 사람의 가슴을 처연하게 만듭니다. 제 아무리 화려했던 삶도 찰나에 지고 마는 것이 인생이라는 불교의 교리와도 맞아 떨어지는 점이 있어서 사찰 주변에 많이 심습니다.
동백나무의 특성상 시인들은 동백나무를 곧잘 읊었는데요, 유독 선운사 동백을 주제로 쓴 시가 많습니다. 미당 서정주 시인도 그렇고, 김용택 시인도 그렇고, 최영미 시인도 그렇고, 하다못해 가수 송창식도 불렀습니다. 암만 그래도 동백나무를 읊은 시 중 가장 압권인 것은 문정희 시인의 「동백」이라는 시입니다.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문정희 作 「동백」 전문
이 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정열보다 비극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
- ▲ 동백나무의 꽃이 떨어진 모습
천연기념물 제184호인 전북 고창 선운사의 동백나무숲은 내륙 쪽에서는 가장 북쪽 한계 지점(북한지)입니다. 더 이상의 북쪽 지역에서는 사람 도움 없이 월동할 수 없다는 뜻이죠. 하지만 산불 방지를 위해 심었다고 하니 자연림은 아닌 듯합니다.
도서 지역은 해양성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따뜻하므로 동백나무가 전북 고창보다 높은 위도 지역에까지 올라와 자랍니다. 그래서 남한의 서북단 지점인 대청도의 동백나무숲을 북방한계지로 인정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보다 위쪽인 백령도에서도 자라는 것으로 되어 있기는 합니다. 지도에서 대청도와 백령도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살펴보신 분들이라면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저곳이 정말 남한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북한 쪽에 치우쳐진 섬으로, 북한 땅을 코앞에 마주하고 있습니다. 인천항에서 4시간이나 걸리는 곳입니다.
- ▲ 전북 고창군 선운사 동백나무숲
- ▲ 인천광역시 대청도 동백나무 북방한계지
동백나무는 대개 11월부터 피기 시작해서 이듬해 5월까지 계속해서 핍니다. 그럼에도 동백(冬柏)이라고 불러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선조들은 동백나무를 겨울에 피는 꽃나무로 인식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겨울철에 새빨갛게 피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대개의 나무가 겨울에 꽃을 피우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꽃가루받이를 해줄 곤충이 없기 때문입니다. 동백나무는 그 고민을 해결했기에 겨울에도 꽃을 피웁니다. 동백나무는 사실 대표적인 조매화입니다. 즉, 새가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나무입니다. 동백나무의 꽃이 붉은색인 이유도 새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색이기 때문입니다. 눈이 온다면 더욱 잘 띄고요.
하지만 아무리 화려하게 꾸민 꽃이라 해도 새들이 그냥 날아올 리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동백나무는 수술의 밑부분에 새들이 좋아하는 꿀이 흐르게 했습니다. 아마 남부지방이 고향인 분이라면 동백꽃을 따서 꽁무니에 입을 대고 꿀을 빨아 먹었던 추억이 있을 겁니다. 그걸 먹기 위해 새들이 모입니다.
- ▲ 동백나무의 꽃 속
그중 동백나무 꽃을 찾아오기로 유명한 새는 동박새입니다. 동박새는 이름부터가 동백나무에서 유래된 새로, 매우 작은 체구의 앙증맞은 새입니다.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 동박새는 동백꽃의 꿀을 빨기 위해 수술 밑으로 부리를 깊게 넣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마에 노란 꽃가루를 묻혀 이 꽃 저 꽃으로 나르게 됩니다. 동백나무의 꽃이 활짝 벌어지지 않고 반 정도만 벌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만약 활짝 벌어진다면 꽃가루를 묻히지 않은 채 꿀만 먹고 갈 테니까요. 꽃의 지름이 5~10㎝인 것도 몸길이가 약 10㎝인 동박새의 크기에 맞춰놓은 1인용 식탁이기 때문입니다.
- ▲ 동박새
고객을 잘 알고 고객에 맞춤하는 서비스를 내놓는 기업이 망할 리 없는 것처럼 동백나무는 열매도 잘 맺습니다.
- ▲ 동백나무의 열매
드물게 흰색 또는 분홍색으로 피는 것도 있습니다. 꽃이 흰색이고 초겨울에만 피는 것은 일본에서 들여온 ‘애기동백나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 춘희가 울고 갈 만한 여러 품종을 심습니다.
- ▲ 흰동백
- ▲ 애기동백나무
남도에서는 벌써 동백꽃 소식이 올라옵니다. 오동도도 좋고 부산 동백섬도 좋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전남 거문도 동백나무 터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너무 멀다고요? 그럼 못 가는 거죠. 감동은 늘 거리와 비례한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에 한해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 ▲ 거문도의 동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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