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자연·풍경

자연과 교감하고 기다리면 자연이 셔터를 누른다

자운영 추억 2014. 1. 30. 18:45

 

곽윤섭 2014. 01. 28
조회수 3175추천수 1
두루미 지킴이 겸 사진가 윤순영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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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1_7295.jpg » 철원 한탄강에서 잠을 자고 있는 두루미들. 셔터속도가 30초~1분에 이르는데도 꼼짝않는다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윤순영 이사장(60)은 1992년인 김포 홍도벌판에서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와 처음 마주쳤고 순간 그 자태에 매료되어 23년째 두루미 보호자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말부터 사진작가로 활동해왔던 윤씨는 처음엔 사진을 찍기 위해 두루미를 찾아 나섰던 것이었고 막상 발견했을 땐 (사진을 하는 누구나처럼 멋진 그림이니) “혼자 찍고 말려고” 했다. 그러다가 멸종위기에 처한 조류란 것을 알게 되었고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생각은 실천으로 옮겨졌다. 김포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를 위해 모이를 주기 시작했고 나중엔 전 재산을 탕진하기에 이르렀다.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협회는 2006년에 생겼고 지금도 순탄치는 않지만 그 전까지는 고생을 많이 했다”라고 윤 이사장은 말했다. 윤 이사장은 지난해에 2,000만원으로 집을 샀다. “나머지 1억원은 대출받았다. 내 이름으로 집을 장만한 것이 처음이다”라며 헛헛하게 웃었다.

윤 이사장은 지금도 벼, 밀, 옥수수 같은 모이를 주고 있으며 밀렵감시단, 야생 동물 구조, 자문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두루미 외에 다른 야생동물에 관해서도 빼어난 생태사진을 찍고 있으며 두루미의 행동양식을 모니터링하는 등 연구활동도 이어왔다.. 2008년 한국 창원에서 열린 세계람사르총회에 초청받아 두루미사진을 선보였고 경기도 사진대전 초대작가, 한강유역환경청 환경영향평가·자연경관훼손 심의위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윤 이사장을 24일 김포에 있는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ysy-18.jpg » 두루미

ysy-1.jpg » 검은목두루미/철원ysy-2.jpg » 검은목두루미/철원

ysy-3.jpg » 두루미와 고라니/철원

ysy-5.jpg » 두루미

ysy-6.jpg » 시베리아 흰두루미/철원

ysy-7.jpg » 시베리아 흰두루미/철원

-올해 김포를 찾은 두루미의 현황은 어떠한가?
 “두루미 개체수는 (맨 처음 본 1992년) 그 당시 7마리였는데 최대 개체수가 120마리까지 갔다가 그 사이 농지가 매립되면서 올해 겨울에는 한 앵글에 5~6마리씩 밖에 안보이더라. 다 세어보니 34마리가 왔다”
 -두루미에 인식표를 단 것도 아닌데 34마리인 것을 어떻게 아는가?
 “목에 있는 회색선이 지문과 같은 것이다. 두루미의 모든 개체가 다른 무늬를 가졌다. 그 중에는 20년째 홍도평야를 찾는 수컷이 있는데 ‘흰목이’라고 이름도 붙여주었다. 다른 녀석 중엔 좌우 눈동자 색깔이 다른 녀석도 있다”
 -어느핸가 흰목이가 안 오면 궁금하시겠다.
 “그렇다. 다행히 올해도 왔다. 흰목이도 나를 알아볼 것이다”
 -두루미나 다른 야생 조류를 찍을 때 어떤 방법을 쓰는가?
 “텐트를 치고 잠복하는 기법을 쓰지 않는다. 일단 야생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의 존재를 알고 있다. 자연을 찍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의의 문제다. 울긋불긋한 옷을 입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의다. 좋은 마음가짐으로 행동하면 그들도 따라 소통한다. 나는 가림막을 치고 뚫어놓은 구멍으로 렌즈만 내놓고 지킨다. 그래도 여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두루미가 모를 줄 아는가? 다 지켜보고 있다. 다만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그들의 반응이 달라질 뿐이다” 윤 이사장의 이야길 듣고 있으니 주로 아프리카에서 야생의 사자나 코끼리 등을 동네 친구의 인물사진 마냥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찍는 사진가 닉 브랜트가 떠올랐다. 자연과의 교감이 사진찍는 실력에 앞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윤 이사장은 인터뷰 동안 야생동물에 대한 ‘예의’란 낱말을 여섯 번이나 언급할 정도로 자연에 대한 존중을 강조했다. “40일씩 한 둥지를 지켜볼 때도 있다.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 새들도 나를 아는 것 같다. 경계를 하지 않는다. 기다리면 다가오더라. 물론 물러날 때 뒤로 빠지는 것은 기본이다”라며 “그저께도 철원 한탄강에 있는 두루미의 잠자리에 다녀왔다. 두루미는 발목과 무릎사이 깊이IMG_4237.JPG » 윤순영 이사장의 물속에서 잠을 잔다. 뭍짐승들의 접근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곳이고 흐르는 여울물이라 물 전체가 얼어붙지 않는다. 두루미는 한 다리로 서서 자는데 잠자기에선 입신급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감도를 400이상 올리지 않기 때문에 해가 뜨기 전에는 셔터 속도가 30초에서 1분 정도로 노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찍은 사진을 보니 1분의 노출시간에도 불구하고 초점이 정확히 맞아 있더라. 카메라는 삼각대 위에 있으니 흔들리지 않지만 600밀리 망원렌즈의 거리에 있으면서 미동도 하지 않는 두루미는 대단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사진 촬영에 관한 에피소드가 줄줄 이어졌다. “아침이 되면 뜨는 해를 안고 날아오르면서 먹이 활동을 시작하고 저녁엔 해를 등지면서 잠자리로 날아든다. 잠자리에 들어오기 전에 가림막을 설치해놓고 아침에 그들이 먹이활동을 위해 날아간 다음에 철수한다. 한 번은 새벽녘에 잠자는 녀석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근처에서 군인이 지나가는 바람에 엄동설한의 물속에 다리를 담그고 자던 두루미들이 준비운동도 못하고 졸지에 날아올랐는데 분명히 뼈마디가 쑤셔서 근처 둑방에 내려앉았을 것이다. 원래 해가 뜰 무렵이면 서서히 굳은 몸을 풀고 날아오르는 것이 정상이다. 안쓰러웠다” 두루미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야생 조류를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야생조류를 찍는다는 것은)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들의 선택을 받아야 찍을 수 있다.
 사진은 완벽히 될 때까지 기다린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나올 때까지. (오늘보면) 어제 사진이 부끄럽다. 지나간 사진이 선생 역할을 한다. 예전엔 좋은 기회를 놓치면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마음에 담아둔다. 마음에 담아둔 사진은 지워지지 않고 생각할 때마다 떠올릴 수 있다.
 사진가들이 많이 몰려있으면 물러나와 뒷전에서 찍거나 아예 빠져 버린다. 사진가는 고독한 사냥꾼이다. 혼자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어떤 좋은 포인트 같은 것을 따라 하지 않는다. 항상 나만의 새로운 포인트를 찾아다닌다. 기다릴 줄 모르면 사진을 찍을 수 없을뿐더러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시화호에서 쇠제비갈매기가 수직강하하여 물고기를 잡는 사진을 찍을 때 느낀 것인데 나에게 잠재된 실력이 있었더라. 하늘의 어느 지점에 미리 등장할 것을 예측하고 있으면 단번에 들어오더라. 일부러 화각에 넣으려고 하면 오히려 안되더라. 화각에 들어오면 다이빙과 같은 속도로 렌즈를 긁어 내린다. 셔터를 언제 누르는지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다. 혼연일체의 경지다. 연속촬영(이하 연사)을 잘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0컷을 연사했다고 치면 그 컷과 컷 사이의 동작은 볼 수도 없이 놓친 것이다. 다리 하나 날개 하나 모두 보고 누른다. 망원으로만 찍는 것이 아니다. 하루종일 600밀리 하나만 받혀놓고 버티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50밀리렌즈로도 철새를 찍는다. 필요할 땐 기어서라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어떨땐 너무 가까이 간 바람에 나올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었던 적이 있다. 그때 분명히 느꼈다. 두루미도 나도 서로 어쩌지 못하고 불안해했다. 날아갈 때까지 못 빠져나오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비행하는 조류를 찍으려면 셔터속도가 빨라야할 것 같다. 어떻게 하는가?
 “조류를 찍는 사람들을 보면 1/1000초 이상으로 빠른 ‘칼셔터’를 쓰기도 하더라. 안타깝다. 나는 그 이상으론 절대 안찍는다. 주로 1/350~1/500초 사이의 셔터속도를 이용하는데 그래야 날개끝이 살짝 흔들리면서 동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더 느린 셔터로도 패닝이 가능하다. 너무 빠른 셔터는 재미가 없다”
 
 평생 조류를 돌보면서 보람있었던 일이 몇 있다. 옛날에 한강 하구에는 3,000 마리의 두루미가 있었다. 그러다 개발에 밀려 철원으로 일본 이즈미로 떠나보내고 몇 남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보호할 기회를 얻어냈다. 김포에 신도시가 들어올 때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국토해양부에 건의해 신도시가 될 뻔한 농경지 19만평을 김포한강야생조류공원으로 묶어둘 수 있었다. 원형보전만이 정답이 아니다. 낟알들판을 4만평 만들고 습지도 조성하기로 확정했다. 인간과 자연은 상생해야한다. 강원도 홍천의 까막딱따구리 서식처에 골프장이 들어서려다가 허가취소된 적이 있다. 주민들의 도움이 컸고 주민들도 (취소를) 환영했다. 나는 환경운동을 하더라도 대안을 제시하면서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어렵게 살아왔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윤 이사장에겐 딱 하나의 소원이 있다. “20여년 두루미를 돌보면서 사진을 찍어왔지만 번듯한 사진전시를 한 번도 못했다. 한국 고유의 한지에다 돌가루를 안료로 인화를 해서 사진전을 열고 싶다. 두루미와 인간의 교류를 보여줄 수 있다. 아직 공개하지 않는 신비스러운 사진들을 많이 갖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ysy-9.jpg » 재두루미/김포

ysy-8.jpg » 재두루미/한강

ysy-11.jpg » 재두루미/김포

ysy-12.jpg » 재두루미/김포

ysy-14.jpg » 카나다두루미/철원

ysy-17.jpg » 흑두루미/김포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 제공/윤순영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