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막에 난 '갈빗대' 변형시켜 진동파 생성, 뱃속서 20배 증폭
낮에 시끄런 말매미,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참매미…매미 따라 말벌 늘었을 수도
» 말매미가 암컷과 짝짓기를 하기 위해 나무 위에서 이동하고 있다. 말매미 수컷은 최고 95데시벨의 소리를 낼 수 있다. 사진=김봉규 기자
만일 세계 최고 성능의 오디오를 만들고 싶다면 매미로부터 배워야 한다. 몸 길이 5㎝가 채 안 되는 말매미 한 마리가 지하철이 달려오는 커다란 소리를 낸다.
나무즙 조금 빨아먹고도 어떤 때는 온종일 약 1달간 이런 소리를 내는 에너지 절약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것도 무작정 내지르는 소리가 아니라 암컷을 유인하는 잘 조율된 사랑의 노래다.
매미가 어떻게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지가 밝혀진 것은 레이저를 이용한 정밀 측정이 이뤄진 1990년대 말이었다. 헨리 베넷-클라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와 데이비드 영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대 교수 등 연구자들은 매미 수컷의 배 제1마디 윗면 양쪽에 하나씩 달린 단단한 키틴질의 얇은 막인 진동막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복잡하고 오묘한 발성 과정을 밝혀냈다.
» 매미의 발성 구조. <한겨레> 2013년 8월14일치 21면
진동막은 단순한 막이 아니다. 막 표면에는 볼록한 막대가 갈빗대처럼 나란히 나 있다. 진동막은 두 개의 큰 근육인 발음근과 연결돼 있다. 근육이 수축해 진동막이 변형되면 ‘갈빗대’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중간이 휘면서 ‘팅’ 하는 소리를 내고, 나란히 서 있는 다른 ‘갈빗대’도 잇따라 휘어지며 충격파를 낸다. 반대로 근육이 이완되면 ‘갈빗대’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진동음을 낸다.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박사는 “메뚜기나 귀뚜라미가 마찰로 소리를 내는 반면 매미는 진동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점이 다르다. 알루미늄 캔을 살짝 우그릴 때와 펼 때 딸각하는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고 설명했다.
‘갈빗대’가 휠 때 발생하는 진동파는 무려 158데시벨의 강한 음압인데, 이는 수류탄이 1m 거리에서 터질 때의 압력에 해당한다. 두 개의 진동막은 교대로 진동음을 내는데, 근육은 1초에 300~400번이나 수축과 이완을 되풀이한다.
» 노래하는 애매미. 겉보기와 달리 몸속에서는 발성을 위해 격렬한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다카하시, 위키미디어 코먼스
비유하자면, 징(진동막)을 채(갈빗대의 변형 충격)로 1초에 수백 번 두드리는 셈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진동막을 떼어내 실험했더니 망치로 종 또는 피아노 줄을 때렸을 때와 비슷한 모양의 진동파가 생겼다.
이 진동음은 진동막 자체의 공명과 배의 빈 공간을 공명통으로 이용해 20배로 증폭된다. 죽은 매미의 몸속을 들여다 보면 뱃속이 거의 비어있는데, 이는 누군가가 파먹은 게 아니라 애초에 소리를 키우기 위해 비워놓은 것이다.
이렇게 만든 소리는 배를 들이밀었다 냈다 하는 동작과 고막을 덮었다 열었다 하는 동작을 통해 조율해 밖으로 내보낸다. 암컷은 수컷이 내는 소리의 양과 질을 함께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리를 만드는 진동막의 부피는 3㎤ 정도인데도 매미는 구식 자명종 100개가 한꺼번에 울리는 크기인 100데시벨의 소리를 낸다. 혹시 수컷 매미는 자기 소리 때문에 난청에 걸리지는 않을까. 수컷의 소리 감각기관은 고막과 작은 관으로 연결된 별도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어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
»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원이 매미의 소음도를 측정하고 있다. 사진=국립환경과학원
여름철 매미소리는 이미 주요한 생활 소음원이 돼, 국립환경과학원은 2010년 전국 주요 도시 16곳에서 매미소음도를 처음 조사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장소에서 매미 소음은 도로변 자동차 주행소음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는 특히 매미의 종류별 소음도를 측정했는데, 한 마리가 울 때 나무 밑에서 측정한 소음도는 “치르르르~”하고 연속적으로 우는 말매미가 75데시벨로, “맴 맴 맴 매~”하고 우는 참매미의 65데시벨보다 10데시벨 높았다. 말매미의 소음은 참매미보다 음압이 10배 큰 셈이며, 순간 최대 소음도는 95데시벨로 엠피3 플레이어를 최대한 크게 틀었을 때에 육박했다.
조사를 한 국립환경과학원 구진회 박사는 “소음은 주관적인 것이어서 싫어하는 소리로 느낀다면 자연의 소리라도 소음이 될 수 있다. 말매미는 소리 크기뿐 아니라 음질 면에서 다른 매미보다 더 날카롭고 거친 특성을 나타내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소리임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말매미 소리는 리드미컬한 참매미나 애매미 소리보다 전기톱으로 철근을 썰거나 진공청소기를 가동할 때 나는 소리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 말매미와 그 애벌레들. 남방계열의 말매미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번져 생활소음원이 되고 있다. 사진=김봉규 기자
서울 잠실, 여의도 등 대규모 아파트단지에서 소음공해의 표적이 되고 있는 말매미는 한국, 중국, 대만, 동남아에 널리 분포하는 남방계열 매미이다. 그렇다면 여름철 소음공해의 주범은 과연 말매미일까. 또 매미 소음에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등 연구진은 지난해부터 일반인의 인터넷 참여 관찰 방식으로 매미의 생태와 행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진이 전국에서 기록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말매미는 기온이 28~29도가 되어야 노래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열대야가 심해 밤새 28도 이상을 유지하지 않는 한 말매미가 밤새 우는 일은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참매미는 꼭 온도에 얽매이지 않고 조명이 밝거나 하면 ‘시도 때도 없이’ 노래한다. 장 교수는 “낮에 주로 시끄럽게 들리는 건 말매미 소리이지만 심야나 새벽에 잠을 깨우거나 방범창에 붙어 놀라게 하는 ‘범인’은 바로 참매미”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참매미가 울다가 온도가 높아지는 오전 8~9시부터 말매미가 배턴을 넘겨받는 일이 흔하다. 물론 심야에도 28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말매미도 잠을 자지 않는다.
» 불과 몇 주일 동안이 매미의 노래가 소음이 된 것은 급격한 도시 생태계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강재훈 기자
장 교수팀이 매미 애벌레가 허물을 벗은 껍질(탈피각)의 수효를 세어 파악한 매미 종류별 개체수를 보면, 도시와 농촌 가릴 것 없이 참매미가 말매미보다 많았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당 말매미가 1만 9000마리 발생했지만 참매미는 그 곱절이 넘는 4만 2000마리였다. 말매미는 수효가 적지만 소리로 압도한다.
말매미는 또 ‘합창’을 즐기는 습성이 있어 소음이 크게 들릴 가능성도 있다. 장 교수는 “매미 수컷에게 가장 큰 경쟁자는 바로 옆의 수컷이어서, 옆의 수컷이 노래하면 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말매미는 그런 경쟁이 특히 심해 한 마리가 울면 그 지역 말매미가 모두 합창에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말매미는 나무의 높은 곳에서 한곳에 오래 머물지만 참매미나 애매미는 수시로 옮겨다니고, 참매미는 사람 눈높이 정도의 나무에 주로 앉는 등의 행동 차이도 체감 소음에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 유치원생들의 매미 체험학습 모습. 건강한 도시 생태계가 조성되면 매미 노래는 결코 공해가 되지 않는다. 사진=신소영 기자
최근 매미 소음이 부쩍 심해진 것은 도시의 환경변화가 심했음을 반영한다. 우리나라에서 매미가 가장 먼저 우는 곳은 제주나 남부지역이 아니라 서울 잠실이다. 장 교수팀의 조사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매미 밀도도 서울 강남은 경기도 소도시에 견줘 말매미는 10배, 참매미는 3배가량 높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자연 숲에서 아파트 숲으로 들어올 때 갑자기 매미 소음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원인은 열섬 현상으로 도심의 온도가 높아지고 가로수와 학교 숲 등 매미 서식여건이 좋아진데다 포식자는 적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장 교수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최근 도심에 말벌이 늘어나는 이유가 매미 급증과 관련이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매미는 덩치는 크지만 방어무기가 전혀 없는 곤충이어서 말벌의 맞춤한 먹이입니다. 매미를 중심으로 한 도시의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연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매미에 대한 우리의 이해 수준은 초보 단계이다. 매미가 땅속과 땅위에서 얼마나 오래 지내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매미 애벌레가 땅속에서 지내는 기간은 일본의 연구결과 등에 비추어 애매미 1~2년, 참매미 3~4년, 말매미 4~5년으로 추정되지만, 국내에서 이를 관찰한 연구는 이뤄진 적이 없다.
김태우 박사는 “흔히 ‘땅속 7년 땅위 7일’이라고 하지만 탈피를 마친 매미가 제대로 울기까지만 1주일은 걸려 최소한 1달 이상은 땅위에서 사는 것 같다. 기초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