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색·글·책 】

무당은 날로 먹지 않는다

자운영 추억 2013. 5. 25. 21:52

 

박기호 신부 2013.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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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마르 9,14~29).”

우리나라 무당은 민속 종교에서 볼 때 사제직입니다. 이승에서의 꼬이고 맺힌 한 때문에 구천을 헤매는 혼백을 굿이라는 경신례로 풀고 닦아 정화시켜서 주어 훌훌 털고 극락왕생 하게 해줍니다. ‘풀고 닦는다’는 말을 ‘푸닥거리’라 합니다. 생자의 처지에서 볼 때는 우환과 흉과 화로 괴롭히던 악귀를 떼어내는 굿이 되지요.

어렸을 적에 저의 친척 고모님 중에도 무당이 있었거든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무당은 세습무(世襲巫)라 하고, 내림굿으로 무당이 된 자는 강신무(降神巫)라 하는데 제자들도 악령을 추방하고 환자를 치유하는 능력을 스승 예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강신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무당들은 귀신의 이름으로, 제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악령을 추방하고 치유를 베풉니다. 어느 날 문제가 터졌는데 제대로 치유를 못해서 항의 소동이 난 모양입니다.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논쟁하고 있었다. “스승님의 제자들이 제 아들에게 붙은 벙어리 악령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체면이 구겨진 제자들은 예수님과의 뒤풀이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어째서 우리가 악령을 쫓아내지 못했을까요?”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안 되는 일이여!”

자격증은 사용하지 않고 서랍 속에 두어도 자격증입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모든 통과제의는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 것의 특징은 운동합니다. 밭에 심어진 농작물은 날로 성장하거나 시들거나 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멈춤이 없습니다. 전진이나 후퇴, 성장과 축소, 성숙과 괴멸... 멈춰서 움직이지 않은 것은 죽은 것들의 특징입니다.

제 자리 걸음은 없습니다. 무술, 철학의 사유, 예술의 작업, 세례성사, 회개, 고백성사, 서원, 공동체의 삶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이 더 나아지거나 더 못해지거나입니다. 부르심의 응답이란 날로 성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 한번 응답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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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할> 중에서

무술이나 마케팅은 인간을 상대로 자기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니 날마다 연마하고 궁리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베풀고 치유하고 악령을 추방하는 일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니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 예수님은 늘 그렇게 성부께 기도하셨고 심지어 십자가 위에 죽음의 순간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공동생활에서 날로 성숙해야 합니다. 성숙해 가지 못한다면 마침내 마을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비장한 각오로 입촌했다는 것만으로 완성이 아닙니다. 인내하고 용서하겠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의 사람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내가 본 진짜 무당은 춤이나 추고 떡이나 복전이나 챙기는 사술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의 아픔을 아는 자이며 떡 한조각도 날로 먹지 않습니다. 새벽마다 찬물에 목욕재계를 하고 머리를 감고 빗고 절을 바칩니다. 신과 혼백과 생혼의 중재자이며 영육으로 상통하지 못하면 자신은 수명을 다한 퇴무로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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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매> 중에서

사제는 물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슬픔을 달래고 치유를 베푸는 일을 업으로 삼는 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이다!” (2013. 5. 20) *
자연이가 오늘로 딱 25개월 보름이다.
넘어졌는데 울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바닥에 엎어져 있더니 마침내 울음을 터트렸다. 넘어진 것에 대해 체면이 구겨지고 자존심이 상했다고 여긴 모양이다! 
저녁 가족회의가 길어졌는데 혼자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엄마한테 야단치며 화를 냈다! 짜증을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 녀석! 다 컸다!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라 했던가 보다. 이제 훈육이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