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신비·환경

'1박2일 털게'는 그 털게가 아니었다

자운영 추억 2013. 5. 18. 10:10

 

황선도 2013. 05. 15
조회수 14620추천수 0

생생 수산물 이야기 ① 털게

은지원 홀딱 반한 맛 털게는 왕밤송이게가 맞아

꽃게나 대게는 명함도 못 내밀 최고의 맛, 마리당 2만원 호가

t0.jpg » 털이 나 있다고 모두 털게는 아니다. 왼쪽이 털게, 오른쪽이 왕밤송이개이다. 사진=왼쪽, 함화수 고성 수산자원조사원. 오른쪽, 허선정 여수 수산자원조사원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잡은 수산물은 주로 수협에 위탁판매를 하는데,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는 120여 개소의 주요 항구에 수산자원조사원을 파견하여 총 허용 어획량(Total Allowable Catch, TAC) 관리 대상 11개 어종의 어황을 조사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조사원들은 전국 각지의 항구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정을 누구보다도 소상하게 알고 있다. 어획 동향이나 수산물 정보에 대해 현장감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수에 위치하는 남해지사 허선정 수산자원조사원이 제철에 나는 수산생물의 생생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필자가 수산 전문가의 시각에서 분석하여 그 정보를 시민에게 널리 알려 드리고자 한다.


남해안에서 '털게'가 잡힌다고?…너, '털게' 맞니?

직업의 특성상 객지에 떨어져 근무하면서 가끔씩 저녁에는 지인들의 소식을 접하고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그곳 친구 중에 여수 돌산에 사는 ‘유학파 생선장수, 오일님’이 이른 봄철 돌산 군내리 수산물 위판장에 나오는 ‘털게’를 최고의 수산물로 소개하였다.

그 맛이 서해의 꽃게보다, 동해의 대게보다 맛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명색이 수산전문가란 필자는 맛은커녕 코빼기도 본 적이 없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곧바로 군내리항 담당자인 허선정 조사원에게 털게의 진상을 파악해 보라 명(?)하노니, 그 보고를 아래에 기술한다.

2011년 한국방송공사 2텔레비전의 간판 예능프로인 <1박2일> 남해 편에서 ‘털게’가 소개된 이후, 이 게는 지역 주민만 아는 특별한 게에서 전 국민이 다 아는 흔한 게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고 있기로는 털게는 동해안에만 서식하는 종인데, 남해에도 털게가 있다니…, 그렇지 않아도 과연 그 정체가 뭘까 궁금했던 차였다.

먼저 인터넷을 뒤져 올라온 관련 소식과 사진을 찾아내어 무척추동물도감으로 동정하는 작업을 거친다. 확인 결과, <1박2일>에서 초딩 입맛, 은지원이 홀딱 반한 그 털게는 실제로 털게가 아닌 ‘왕밤송이게’였다.

남해안에서 1년 중 12월~이듬해 4월 사이에 출현해 오직 봄철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하신 몸, 왕밤송이게는 몸 전체에 털이 촘촘하게 나 있고, 게 껍질이 커다란 밤송이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털이 많다는 이유로 흔히 털게라 불리지만, 우리나라에서 동해안에만 서식하는 털게 와는 엄연히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그럼, 생김새가 서로 비슷해 같은 종으로 오인되고 있는 ‘털게’와 ‘왕밤송이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640px-Erimacrus_isenbeckii.jpg » 일본 홋카이도 쿠시로 시장의 수조에 들어있는 털게.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생김새도 고향도 다른 우리 둘!

털게(Erimacrus isenbeckii)와 왕밤송이게(Telmessus acutidens)는 딱딱한 껍질로 덮여있어 분류학상으로 갑각강, 10개의 다리를 가진 십각목, 몸에 털이 많이 나 있어 털게과에 속하는 절지동물인 것까지는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게딱지(갑각) 모양도 다르고, 체색, 서식환경이 서로 다른 별개의 종이다.

털게의 게딱지는 위에서 보았을 때 아래위로 약간 긴 둥그스름한 사각형에 가깝다. 또한 게딱지에는 과립상의 반점과 털이 빽빽하게 나 있으며, 몸 색깔은 연한 분홍색이고 털은 갈색이다.

집게발은 다른 게류보다 상당히 짧고 뭉툭하며, 나머지 다리들도 비교적 짧은 편이고 많은 털로 덮여 있다. 털게의 털은 왕밤송이게보다 더 길고 억세 가시와 같은 모양이다. 갑각은 보기와 달리 그리 단단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비교적 살이 많아서 식용으로 이용되는데, 진미이다.

왕밤송이게는 좌우 폭이 넓은 오각형으로 털게와 마찬가지로 대형 게에 속하나 털게보다는 작은 편이다. 살아있을 때는 갑각이 황갈색 바탕에 자갈색 또는 보라색의 돌기들이 오돌 도톨 돋아 있어 전체적으로 얼룩덜룩한 느낌이다. 갑각 옆구리 5개의 가시 중에 가운데 3번째 것이 가장 크다. 역시 식용으로 이용되는데, 그 맛을 헤아릴 수가 없다.

털1.jpg

털2.jpg


털게는 찬 물을 좋아하는 냉수성 갑각류로 알라스카, 베링해와 일본의 홋카이도, 후쿠시마, 후쿠이, 돗토리 등의 북쪽 연안과 우리나라 동해에 분포하는데, 수심 15∼300m의 모래, 진흙 혹은 자갈이 섞인 진흙에 서식한다.

반면, 왕밤송이게는 대마난류의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의 남해 동부~동해 남부 해역에 분포하며, 수심 50m까지의 모래 또는 돌이 많은 모래 바닥이나 해조 밭(해중림 또는 바다숲)에 주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연구는 미비한 상태이다.

t5.jpg » 우리나라 연안에서 털게와 왕밤송이게 주요 서식 분포 해역

왕밤송이게는 고등어를 좋아해~

털게와 왕밤송이게는 식용으로 이용되는 까닭에 산업 종으로 분류되며 주로 걸그물인 자망이나 함정그물인 통발 어업으로 잡는데, 간혹 새우조망에도 잡히긴 하지만 그 양은 적은 편이다. 털게와 왕밤송이게 모두 12월~이듬해 4월 사이에 주로 출현하는데, 주 조업시기는 1~3월이다.

경상남도 남해에서는 왕밤송이게 잡이에 둥근 철 뼈대에 그물을 싸서 만든 게통발을 사용하는데, 미끼로는 주로 고등어가 쓰인다. 어른 손바닥만 한 고등어를 반으로 잘라 통발에 넣어 왕밤송이게가 많이 살만한 바다 속에 내려놓고 하룻밤을 기다리면, 이 비린내 나는 고등어의 유혹에 끌려 통발에 발을 들인 게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걸려 올라오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고등어 비린내가 유혹적이라 해도 자원 자체가 많지 않으니 어획량이 신통치 않아 위판장에 나올 틈도 없이 금값으로 팔려나가는 귀하신 몸이다.

털3.jpg

털4.jpg

비싼 몸값 자랑하는 털게와 왕밤송이게

털게는 강원도의 명물로서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고성의 8미 중 하나이며, 전국 어획량의 90%가 고성군의 거진, 대진 등지에서 잡힌다. 1930년 전후에 함경남도 북청군, 함흥군, 함경북도 성진군 등지에 털게 통조림공장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털게 자원이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남획과 수온 변동 등의 환경 변화로 자원이 거의 고갈되어 이제는 희귀종이 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2010년 84톤의 어획량을 보인 다음부터 계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여서 동해의 명물인 대게보다도 비싸지만 물량이 없어서 못 파는 형편이다.

왕밤송이게는 경상남도 거제시, 통영시, 사천시, 남해군과 전라남도 여수시 등지에서 주로 어획된다. 그중에서 거제시 생산량이 가장 많은 편이나, 텔레비전 방송 이후로 남해군이 왕밤송이게로 가장 유명한 곳이 되었으니 방송의 힘이 가히 대단하다.

천하일미 왕밤송이게도 털게와 마찬가지로 예전에 비해 어획량이 급감하여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잠깐 반짝하고 어획되었다가 사라지니 그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 듯하다. 2~3년 전만 해도 kg당 1만5000~2만원이었으나, 요즘은 마리당 가격이 1만5천~2만원이라고 한다. 보통 크다 싶은 한 마리가 500g내외이고 보니 두 배나 오른 셈이다.

털5.jpg

털6.jpg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천하일미!

털게와 왕밤송이게, 모두 진미로 통하긴 하지만 먹어본 사람들은 약간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동해 털게는 약간 단맛이 나는데 반해, 남해 왕밤송이게는 더욱 진하고 깊은 맛이 있단다.

하지만 둘 다 바다의 짭조름한 맛이 살에 속속들이 배어들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맛이 꽃게와 대게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열이면 아홉은 털게와 왕밤송이게 쪽에 손을 들어준다고 하니 이 둘의 맛이 약간 차이가 난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외형상으로 보이는 무시무시한 털에 비해 몸통이 깨끗하고 껍질이 연하다보니 대부분 그대로 쪄서 먹는데, 왕밤송이게 보다는 털게가 살이 더 꽉 차있는 느낌이란다. 찜통에 넣기 전에 반드시 미지근한 물에 담갔다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쪄내야 다리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며, 대게와 마찬가지로 배가 위로 향하게 뒤집어 찐다. 경남 지역에서는 된장국에 넣어서 먹기도 하고, 작은 놈은 꽃게처럼 게장을 담그기도 하는데 그 맛 또한 일품이란다.

t13.jpg » 식욕을 자극하는 다양한 요리의 털게와 왕밤송이게. 사진=네이버 블로그


여수 돌산 군내리항에서 생생한 생선을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전국에 판매하고 있는 오일 대표의 말에 따르면 왕밤송이게의 진미는 내장이라 한다. 하긴 게딱지에 밥 비벼먹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서양 사람들은 게 다리를 주로 먹는데, 이놈의 게는 다리가 짧아 먹을 게 없어서도 그러할 것 같다.

서울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조카가 가끔 내려와 만들어준다는 일식 요리는 또 다른 진미라 자랑한다. 어쨌거나 필자 역시 말로만 맛을 봤지 입에 넣어 본적이 없으니, 참….

털7.jpg

아직은 베일에 싸인 왕밤송이게의 생태

털게는 알에서 부화하여 대략 2년이 지나면 성숙하여 교미를 한다. 첫 교미는 12∼4월 사이에 이루어지고 두 번째부터는 3∼7월 사이에 교미를 한다. 털게 교미는 탈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껍질이 무른(연갑) 암컷과 껍질이 단단하게 굳은(경갑) 수컷 사이에 이루어지는데, 암컷이 성호르몬의 일종인 페르몬을 분비하여 교미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면 수컷이 암컷을 따라다니며 구애를 시작한다.

암컷이 구애를 받아들이면 수컷이 집게다리를 비롯한 다리를 사용하여 포옹하는 자세로 암컷을 안고 암컷은 다소곳이 안긴다. 교미 후 암컷은 교미전이라는 일종의 마개로 생식공을 막아 놓는데, 이는 수컷이 교미할 때 정액에 이어 분비하는 단백질 성분의 물질이 단단하게 굳어 뼈 같이 하얗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교미전은 또 다른 수컷과의 교미를 방해하고,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 암컷의 생식공에서 정액이 누출되지 않도록 하는 구실도 한다. 그러나 교미전이 생식공 한 곳에 2개씩 있는 암컷도 가끔 발견되는 것을 보면 세상만사 일탈하는 놈은 어디나 있는 것 같다.

배란된 알은 산란 초기에 오렌지색을 띠다가 부화 직전에는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한다. 최대 갑각나비(갑폭)는 수컷 14㎝, 암컷 11㎝로 대형 게에 속한다.

털게는 연중 갑장 7㎝ 이하는 포획이 금지되어 있으며, 주요 서식지인 강원도에 한정하여 주 산란기에 해당하는 4월 1일~5월 31일에는 포획금지기간이 설정되어 수산자원보존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털게와 달리 왕밤송이게는 서식환경, 산란과 성장, 생활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아 포획금지체장 및 기간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다만, 3~4월경이면 암컷 왕밤송이게 중에 알이 꽉 찬 것들이 위판장이나 시장에 나오는 것을 보고 산란기가 대략 이때쯤이 되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왕밤송이게는 여름철 수온이 20℃ 정도 이상이 되면 바다 밑 바닥을 파고들어가 여름잠(하면, 夏眠)을 자는 습성이 있으며, 포란한 암컷 또한 이 시기에 하면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털8.jpg

털9.jpg

왕밤송이게, 종묘생산 성공으로 대량생산 기회 열리나

왕밤송이게를 경남 일부 지역에서는 일명 ‘썸벙게’로 부른다. 이 지역의 어민들은 사라져 가는 왕밤송이게 자원을 회복시켜 영덕하면 대게를 떠올리듯이 왕밤송이게를 거제 썸벙게로 특산품화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1년에 경상남도 수산자원연구소가 인공 생산한 갑폭 1.5㎝의 어린 왕밤송이게 7000마리를 남해군 앵강만 일대에 방류하고, 같은 해 생산한 치게 2000 마리를 갑폭 7㎝(85g정도)까지 키워내 왕밤송이게 인공종묘생산을 성공하였다.

Midori_640px-Kegani_Kushiro.jpg » 일본 홋카이도 쿠시로 어시장에 진열된 털게. 사진=모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앞으로 어업인에게 종묘생산 기술을 이전하고 육성하면 새로운 어업 소득원으로 호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털게처럼 왕밤송이게도 포획금지체장과 기간을 설정하여 자원을 관리하는 방안이 뒤따른다면 머지않아 어획량이 회복되어 우리 같은 서민들도 왕밤송이게 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왕밤송이게의 산란과 성장, 서식생태에 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와 같은 기초연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적극 요구된다. 이제 공학과 기술로 대표되는 '테크놀로지‘ 집중에서 생태와 생명의 비밀을 밝히는 ’사이언스‘와의 공조가 절실한 시점이다.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