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야생화 탐방객 300명, 알려진 지 7~8년 만에 휴식년제 검토
풍도바람꽃과 개복수초 개화 꽃천지…제부도서 한 시간 뱃길
» 양지바른 언덕에 활짝 핀 풍도바람꽃. 가장 일찍 개화하는 야생화의 하나이다.
3월이면 중부지방에서 꽃을 보기엔 이른 시기이다. 하지만 야생화를 즐기는 이라면 인터넷을 뒤져 야생화의 개화 소식을 갈무리하면서 엉덩이가 들썩거리기 마련이다.
야생화는 갓나온 산나물처럼 상큼한 봄의 향기를 안겨준다. 흐드러진 벚꽃이나 개나리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소박함과 앙증맞음을 선사한다.
이른 봄 칙칙한 야산을 흰색과 노란색 보석처럼 빛나게 만드는 야생화는 사실 투쟁 중이다. 조금만 늑장을 부리면 다른 나무와 풀이 잎을 내 햇볕을 가릴 터, 남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개화와 번식을 마쳐야 한다.
꽃샘 추위는 언제라도 닥칠 것이기 때문에 낙엽을 겨우 뚫고 나올 정도로 작은 키에, 몸에는 외투처럼 털을 두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신록을 깨달을 즈음 산속의 야생화는 이미 ‘1년 농사’를 마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야생화 동호인이 해마다 늘어나는 건, 디지털카메라와 여가의 증가뿐 아니라 악착같은 세상에서 보기 힘든 이런 덧없는 아름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 주민 120명이 사는 풍도마을 전경. 앞에 육도가 보인다.
‘야생화의 낙원’이란 별명을 지닌 안산시 풍도로 사단법인 에코코리아의 생태조사에 동행하게 됐을 때 올해 처음으로 야생화를 보게 된다는 설렘이 컸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선 세상에 알려진 지난 7~8년 동안 이 ‘꽃 섬’이 탐방객 등쌀에 얼마나 망가졌는지 직접 확인하기가 꺼려지기도 했다.
풍도는 서해 화성시와 당진군 사이 남양만의 들머리에 위치한 면적이 2㎢가 안 되는 작은 섬이다. 인천에서 하루 한 번 여객선이 대부도를 거쳐 다닌다. 대부도에서 직선거리는 24㎞로 한 시간 뱃길이다.
조선시대에는 단풍나무가 많다 해서 단풍나무 풍(楓) 자를 쓰다가 이후 풍년 풍(豊) 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농사를 지을 넓은 땅도 큰 어선도 없는 섬 주민들의 염원을 담은 이름이리라.
» 풍도 선착장에서 안내인의 설명을 듣는 야생화 탐방객.
그러나 주민 120명이 사는 이 작은 섬은 봄 한철 꽃 구경을 오는 사람이 하루 300명에 이르러 방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붐빈다. 3월 중순은 야생화 탐방이 피크를 맞는 시기이다.
지난 8일 풍도 선착장은 저마다 카메라를 둘러멘 야생화 동호인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청년회관 뒷길로 후망산의 야생화 자생지를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요즘 후망산은 풍도바람꽃과 개복수초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또 곳곳에서 꿩의바람꽃, 노루귀, 붉은대극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풍도바람꽃. 꽃처럼 보이는 것이 꽃받침이고 꽃술 옆 황록색 부위가 꽃잎이다.
풍도바람꽃은 지금까지 변산바람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2009년 변산바람꽃의 변종으로 학계가 인정해 풍도 특산의 풍도바람꽃이란 이름을 얻었다. 변산바람꽃보다 꽃잎이 훨씬 크고 모양도 다르다. 풍도바람꽃에서 언뜻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꽃받침이고 꽃잎은 꽃술과 함께 꽃 안쪽에 나 있다.
너도바람꽃이나 변산바람꽃을 한두 포기, 많아야 네댓 포기 피어난 것을 보던 이들은 후망산에 수백~수천 포기가 융단처럼 깔려있는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후망산 능선 쪽에 자생하는 붉은대극도 이곳의 명물이다. 동행한 한동욱 피지에이 습지생태연구소 소장은 “다른 지역의 붉은대극과 형태는 비슷하지만 대사 산물을 분석한 결과 전혀 다른 것으로 나타나 변종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풍도의 섬 환경이 독특해 정밀한 생태조사를 하면 많은 특이한 식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 개복수초
» 노루귀
» 꿩의바람꽃
» 꿩의바람꽃
» 붉은대극
» 자생난의 일종인 보춘화.
풍도바람꽃 군락지에는 줄을 쳐 탐방객의 접근을 차단해 놓은 곳이 여기저기 있다. 등산로 주변의 바람꽃이 이미 상당부분 훼손돼 안산시가 보호를 위해 쳐놓은 것이다. 사진을 찍느라 자신도 모르게 꽃을 짓밟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남들이 촬영하지 못하도록 꽃을 짓뭉개거나 파가는 사람도 있다고 탐방객들은 말한다.
하지만 풍도 야생화에게 가장 큰 위협은 그런 소수의 지각 없는 행동보다는 성수기 때 하루 수백 명씩 몰려드는 야생화 동호인의 발길로 보였다. 실제로 주민이 염소를 기르기 위해 쳐놓은 철조망 안에는 풍도바람꽃이 훨씬 더 잘 보존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종인 안산시 환경지킴이는 “산에 구획을 정해 야생화 탐방 휴식년제를 시행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탐방객의 출입을 통제하는 줄이 곳곳에 쳐 있다.
» 염소를 기르느라 친 철망 안에서 탐스럽게 자라는 풍도바람꽃.
야생화는 숲 바닥에 핀다. 나무나 덤불이 우거져 해를 가린 곳에선 잘 나지 못한다. 풍도바람꽃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곳을 자세히 보면 가시덤불 등 상층 식물을 누군가 쳐낸 것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이 야생화가 더 잘 자라고 탐방객의 편의를 위해 1주일가량 시간을 내 낫으로 베어낸 것이다.
그 대신 주민들은 탐방객으로부터 1인당 3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여기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자연은 공짜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사실 주민들은 “이른 봄 한철 야생화를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섬 살림에 큰 도움은 안 된다.”라고 말한다.
» 풍도는 수도권 서해안의 대규모 공업단지에 둘러싸여 있다. 풍도 선착장에서 보이는 보령화력발전소. 왼쪽엔 영흥화력발전소가 보인다.
» 풍도 전경
야생화를 즐기고 사진을 찍고 이름을 아는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첫걸음이다. 야생화 동호인이 늘어나는 것이 긍정적인 이유이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지면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꽃 산행’으로 유명세를 탄 천마산을 보더라도 야생화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이 발자국만 따라 가면 개화장소가 나올 정도가 됐다. 우리가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이 자연은 정원이나 공원이 되어 가는 것인가.
풍도(경기도 안산시)/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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