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나무·야생화

[스크랩] 팥배나무

자운영 추억 2013. 2. 22. 12:37

초여름에 접어드는 늦은 봄이었다. 설악산 서북능선을 지나는 데 산길에 하얀 꽃이 눈에 띄었다. 혹여 늦게 핀 산벚꽃이려니 하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벚꽃보다는 크기가 작고 꽃빛이 희었다. 잎사귀를 자세히 살펴보니 잎맥이 뚜렷하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하였더니 팥배나무 꽃이었다. 붉은 열매를 매단 모습이 강렬하여 팥배나무 꽃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팥배나무는 초여름에 배꽃을 연상시키는 하얀 꽃을 피운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팥처럼 붉은 열매를 가지에 매단다. 그래서 팥배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람의 오장육부에서 팥처럼 붉은 색은 심장을 가리킨다. 심장은 곧 불이요 뜨거운 엔진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한 겨울이 시작되는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먹었다. 한 겨울에 자동차 시동이 안걸리는 것처럼 심장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팥은 심장을 강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그러나 많이 먹으면 위산 분비를 촉진시켜 신물이 넘어온다. 그러므로 팥죽을 먹을 때 이를 중화시키는 동치미 국물을 함께 먹는다. 한 겨울에 간식거리로 좋은 붕어빵이나 찐빵, 찹쌀떡에도 팥이 들어간다.

  사람의 오장육부에서 배처럼 흰 색은 폐장을 가리킨다. 폐는 곧 푸른 하늘이요 공기청정기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공기가 건조한 겨울에 배를 많이 먹었다. 한 겨울에 감기 등으로 폐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배는 폐를 강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호흡기 질환, 고혈압 예방, 해열 작용 등에 효과가 있다. 요즈음에는 배즙을 상복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체내에 쌓인 항암 물질과 염분을 배출하는 효능을 믿기 때문이다.

  장미과의 나무인 팥배나무는 활엽 교목으로 높이 15m에 달한다. 나무의 줄기는 회갈색 또는 흑갈색으로 흰색의 껍질눈이 있다. 흔히 세로로 갈라지기도 하며 어린가지에 피목이 뚜렷하다. 겨울눈은 붉고 광택이 난다.

  잎은 난형 또는 타원형으로 어긋나게 달린다. 잎에는 8~10쌍의 측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잎의 가장자리에는 불규칙한 톱니가 있으며 뒷면은 흰빛을 띤다. 황토빛으로 물드는 팥배나무 단풍도 아름답다. 붉은 열매와 어울려 가을산을 더욱 풍성하게 장식한다. 

  꽃은 5~6월에 가지 끝에 산방화서로 핀다. 6~10개의 흰색 꽃이 다정스레 모여 핀다. 꽃잎과 꽃받침은 각 5개이고, 20개 내외의 수술과 머리가 2개로 갈라진 암술대가 있다.

  열매는 이과로 9~10월에 황적색으로 익는다. 열매의 표면에 흰색의 점이 산재한다. 열매는 시큼한 맛이 강하고 산새들이 즐겨 먹는다.

 

 

 

  팥배나무는 한국이 원산으로 일본과 중국 등지에도 분포한다. 우리나라 전국의 산 능선에서 잘 생육하며 척박한 토양이나 그늘에서도 잘 자란다. 공해와 병충해에는 약하다.

  팥배나무의 이름은 지역마다 다르다. 강원도에서는 벌배나무, 전라도에서는 물앵도나무, 평안도에서는 운향나무, 황해도에서는 물방치나무로 부른다. 중국에서는 감당(甘堂), 당리(棠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팥배나무의 변종으로 왕잎팥배나무가 있다. 잎도 크고 열매도 굵다. 최근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팥배나무의 목재는 무겁고 단단하며 잘 갈라지지 않는다. 마루를 까는 판자나 숯으로 쓰인다.

  팥배나무의 증식은 종자로 한다. 완숙되기 전의 열매를 따서 2~3일간 물에 가라앉혔다가 껍질을 제거하고 종자만 골라낸다. 종자는 그해 11월에 바로 뿌리거나 젖은 모래와 섞어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뿌린다.

  한 겨울에 산에서 붉은 팥배나무 열매를 만나면 반갑다. 팥배나무 열매를 먹으러 날아온 직박구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출처 : 마파람의 꽃 이야기
글쓴이 : 고인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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