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신비·환경

비린 첫맛, 쫀득하고 고소한 뒷맛, 그리고 중독 모드로

자운영 추억 2012. 12. 27. 22:40

황선도 201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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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의 물고기 이야기-청어·꽁치

원래 청어로 만들지만 꽁치가 대중화 주역, 최근 청어 돌아오나

꽁치에 지방이 많아지는 초겨울 잡아 바닷바람에 얼 말린 것이 제격

 

gu1.jpg » 경북 포항 구룡포의 과메기 덕장 모습. 사진=이종근 기자

 

과메기는 음력 동짓달 추운 겨울에 잡힌 청어를 배도 따지 않고 소금도 치지 않고 그냥 온마리를 엮어 그늘진 곳에서 겨우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약간 덜 말린 반건조 식품이다. 옛 선조들은 부엌 살창에다 걸어 청어를 말렸다.

 

재래식 부엌은 밤에는 차고 밥 짓는 동안은 열기로 따뜻해진다. 아궁이에 솔잎을 땔 때 부엌 안은 연기로 자욱하게 되고 자연 통풍의 필요가 생긴다. 채광과 통풍을 겸해 추녀 아래에다 뚫은 게 살창이다. 그곳이 바로 청어의 건조장이 되었다. 청어 몇 두름을 겨우내 그 살창에 걸어두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솔잎 연기로 훈제되어 이른 봄에는 과메기가 되는 것이다. 조상의 미각과 삶의 지혜가 한층 돋보이는 장면이다.

 

gu5-1.jpg » 과메기는 원래 청어를 원료로 만들었으나 요즘 주 재료는 꽁치이다. 사진=이병학 기자

 

과메기는 청어나 꽁치를 짚으로 엮어 그늘에서 말렸다가 그대로 술안주나 밥반찬으로 사용하는 지역 특산품이다. 경북 포항과 구룡포, 영덕, 감포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는 과메기는 원래는 청어를 원료로 만들었다.

 

과메기의 주산지가 포항 인근 지역인 까닭도 과거 이곳에서 청어가 많이 어획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청어가 생산되지 않으면서부터 대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하여 지금은 구덕구덕 말린 꽁치를 과메기라 하니 옳지는 않지만, 틀린 말도 생명력을 지니면 어쩔 수 없다. 이젠 과메기는 말린 꽁치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꽁치가 청어 흉내를 내며 과메기란 이름을 갖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구룡포 사람들은 1960년대부터 꽁치 과메기를 먹었다고 하고, 포항 죽도시장 사람들도 그 즈음일 것이라고만 할 뿐 정확하게 고증하는 이를 알지 못한다. 죽도 시장에 대규모 덕장이 생긴 것이 1980년대 말쯤 되는데, 포항 사람들이 과메기를 즐겨 먹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일 것이라는 주장이 옳은 것 같다. 과메기의 맛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가 포항의 특산품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의 일이다.
  

꽁치는 계절에 따라 지방 함유량이 각각 달라지는데, 10~11월에 지방 함유량이 20% 정도로 그 함량이 가장 높아 ‘꽁치는 서리가 내려야 제 맛이 난다’는 옛 말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과메기는 한겨울이 제철이다.

 

초겨울에 잡아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말리는데, 반드시 그늘에서 말려야 한다. 꽁치에는 기름기가 많아 햇볕을 보면 산패하기 때문이다. 수산물의 건조는 너무 추우면 살이 팍팍해져 맛이 없고 따뜻하면 상해버린다. 포항의 겨울날씨는 바람이 많아 말리기에 좋고 그렇다고 생선이 상할 만큼 따뜻하지도 않아 과메기 제조에 지리적 환경적으로 적지인 것 같다.

 

gu4.jpg » 식탁에 오른 과메기 요리. 사진=이병학 기자 

 

과메기 먹는 방법은 먼저 머리를 떼고 내장과 껍질을 제거한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이때 질릴 수도 있다. 축축하고 미끈거리고 비릿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껍질을 벗긴 과메기는 약간 붉은 갈색이 도는데 기름기가 많아 반질반질하다.

 

먹는 방법은 그냥 먹는 방법,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방법, 생미역이나 데친 미나리에 싸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방법, 실파를 돌돌 말거나 김치에 싸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방법 등 다양하다. 여기서 초고추장을 고추냉이간장, 겨자간장, 막장, 된장 등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그 맛은 어떨까.

 

과메기를 입에 넣고 느끼는 첫맛은 비리다. 아마 날것이라는 선입감이 그 비린내를 강하게 하기 때문인 듯하다. 어떤 음식이든 처음 먹을 때는 조금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도 고기다 하고 꼭꼭 씹어 보라. 야들야들 쫀득쫀득하게 씹히는 감촉이 느껴지면서 입안에 고소한 맛이 사르르 돈다. 두어 마리 째 먹을 때가 되면 과메기에 중독된다.

 

gu2.jpg » 과메기가 대중화된 것은 1990년이지만 역사는 오래다. 사진=이종근 기자  

 

과메기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옛날 옛날, 먼 옛날 어느 겨울에 동해안에 사는 한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먼 길을 나섰다. 한참을 걷다보니 배는 고파오는데 민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뜩 바닷가 언덕 위 나뭇가지에 물고기가 눈이 꿰인 채로 얼 말려 있는 것을 보고 배가 고픈 김에 찢어 먹어보았더니 그 맛이 환상이라. 뒤에 선비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 겨울마다 청어나 꽁치의 눈을 꿰어 얼 말려 먹었다는 데서, 눈에 꿰어다는 의미의 관목(貫目)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 뒤 관목이 관메, 과메기로 변천되었으리라 추정된다.

 

gu8_open cage.jpg » 꽁치라는 이름은 아가미 덮개에 나 있는 구멍에서 유래했다. 사진=오픈 케이지


꽁치를 모르거나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등산이나 낚시를 즐기는 사람 치고 ‘꽁치 간스메’라고 부르던 통조림 한번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중에게 친숙한 생선이었다. 그러니까 일반인에게 꽁치는 과메기로 보다는 통조림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꽁치의 어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지만, ‘재미있는 우리말 어원’의 내용을 빌려보자. 일반적으로 ‘치’는 물고기를 나타내는 접미사로서 넓적한 물고기는 넙치, 나는 물고기는 날치, 칼과 같은 물고기는 갈치, 검은 물고기는 가물치, 물 밖으로 나오면 즉시 죽는다고 멸치 등 무척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치’가 붙은 물고기 중에서 알 수 없는 것이 꽁치이다.

 

꽁치에 대해서는 정약용 선생의 아언각비에 이 물고기의 아가미 근처에 침을 놓은 듯 구멍이 있어 ‘구멍 공(孔)’의 ‘공’에 ‘-치’가 붙었다는 설명이다. 이것이 된소리가 되어 ‘꽁치’가 된 것이며, 아직까지는 이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꽁치는 야간에 유영하는 성질이 있어 꽁치잡이는 주로 밤에 이뤄진다. 동해안에는 예로부터 ‘손꽁치어업’이라는 것이 있었다. 찬 바다에 사는 꽁치가 먼바다를 회유하다 산란기에 연안 쪽으로 몰려와 수면 가까이 떠다니는 표류물에 모여 산란하는 습성을 이용한 어법이다.

 

꽁치 산란철(5~8월)이 되면, 가마니에 해조류를 주렁주렁 매달아 바다에 띄어 놓고 배를 타고 나가 가마니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서서히 흔들면, 꽁치가 산란 행동을 위해 손가락에 몸을 비빌 때 손가락 사이에 낀 꽁치를 잡는다. 참 재밋겠죠잉?∼ 이렇게 잡은 꽁치의 신선도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gu9_open cage.jpg » 수족관의 청어. 보통 청어는 큰 무리를 지어 다닌다. 사진=오픈 케이지


그럼, 과메기 재료의 원조 자리를 물려준 청어는 어떤 물고기일까? 청어(herring)는 청어목 청어과의 바닷물고기로 다 자라면 몸길이가 30㎝ 정도이며 대표적인 한대성 어류로 겨울이 제철이다.

 

학명은 클루ㅍ에아 팔라시이(Clupea pallasii)인데 속명인 클루피아(Clupea)는 라틴어로 청어(靑魚)를 뜻하는 말로 등푸른 생선을 뜻한다. 영어권에서는 헤링(herring)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독일 육군을 가르키는 헤어(heer)에서 유래한 것으로 항상 떼 지어 몰려다니는 것이 마치 군대가 이동하는 것 같이 보여서이었으리라. 일본에선 니신(鯟, 二親, にしん)이라 부르는데, 부모를 중심으로 하여 조부모, 형제자매, 손자 등의 대가족을 일컫는 말로 영어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청어가 크게 무리지어 다니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자산어보에는 청어가 묘사되어 있는데, ‘정월이 되면 알을 낳기 위해 해안을 따라 떼를 지어 회유해 오는데, 이때의 청어 떼는 수억 마리가 대열을 이루어 오므로 바다를 덮을 지경이다. 석 달 동안 산란을 마치면 청어 떼들은 곧 물러간다’고 기술하고 있다. 청어는 산란기가 겨울에서 초봄 사이인데, 암수의 방란과 수컷의 방정이 시작되면 푸른 하늘색의 바닷물이 우유빛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일본 사람들은 정초에 많은 자손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청어 알을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청어의 알은 맛과 영양이 좋으며 난막은 약간 단단하여 씹으면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gu12_noaa_temp_clip_image004.jpg » 청어떼가 집단으로 산란과 방정을 해 부옇게 흐린 알래스카 해안의 모습. 사진=미국립해양대기국(NOAA)

 

천지현황(天地玄黃), 이것은 천자문의 맨 처음에 등장하는 글귀다. 글자 그대로 하늘과 땅은 검고 누르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현(玄)자는 검다는 뜻보다는 아득하고 오묘한 오히려 푸르름에 가까운 색이며 황(黃)자 역시 노랑색이 아닌 누르스름한 색이다. 한마디로 우주의 삼라만상을 대표하는 천지음양(天地陰陽)을 총 지칭한 글귀이다.

 

그런데 청어는 생긴 그대로 하늘(등쪽)은 푸르고 땅(배쪽)은 희다 못해 누렇다. 즉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를 한 몸에 품은 천지의 축소형인 듯하다. 이런 청어를 먹는다는 것은 천기와 지기를 모두 함께 취하는 것을 뜻하며, 이런 이유로 늙지 않게 하는 장수 식품으로 청어를 손꼽아 왔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는 청어, 고등어 등의 등푸른 생선에 DHA, EPA 등의 오메가-3 지방산이 많아 머리가 좋아지는 식품이라고 광고하고 있으니, 옛말이 검증된 셈이다. 북해를 둘러싼 북유럽에서는 수산자원으로서 청어의 중요도가 매우 높은데, 이는 청어의 영양학적 가치를 이미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양을 따지지 않더라도 필자에게 유럽에서 절임 청어를 빵에 넣어 먹었던 그 맛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gu11_pacificherring_noaa.jpg » 어획된 청어. 우리나라에 청어가 다시 돌아오려나. 사진=미국립해양대기국(NOAA)  

 

영국의 러셀(F.S. Russell)은 플리머스 연안에서 1924~1972년 동안 장기적인 플랑크톤 조사를 한 결과, 해양생물의 군집변동에 대한 중요한 현상을 발견하였다. 1930년대 겨울철 해수중에 녹아 있는 인의 농도가 떨어지면서 대형동물플랑크톤과 청어가 감소하고, 반대로 정어리가 증가하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 후반부터는 청어와 정어리의 흥망성쇠가 반대 양상을 보이는 ‘러셀 주기(Russell cycle)’라는 주기적인 교대 현상이 나타났다. 러셀주기는 대양의 순환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으나,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지 그 정확한 기작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고 있다. 또한, 이것이 주기적인 현상인지, 우연한 역전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단지 확실한 것은 해양생물의 군집구조는 안정된 상태로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라졌던 과메기의 원조인 청어가 최근 다시 돌아오고 있다니, 이 시점에서 정어리의 변동 또한 주시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전 세계적으로 속 시원히 밝히지 못했던 자연현상 하나를 우리가 한번 해결해보면 어떨까?

 

세상은 돌고 도나보다. 언제부터인가 그 흔하던 꽁치도 잘 잡히지 않더니, 급기야 언 꽁치를 수입해서 과메기를 만든다. 그런가 하면 요즘은 자취를 감추었던 청어가 다시 출현하기 시작한다니, 조만간 다시 그 전설의 청어 과메기를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태평양 정어리 조사 승선 일기

 

필자가 캐나다에 방문 연구차 나나이모(Nanaimo)에 있는 태평양생물연구소(Pacific Biological Station, PBS)에 가 있을 때, 정어리 승선조사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그때 승선일기를 여기에 공개한다.

 

jou1.jpg » 태평양은 만만하지 않았다. 나 돌아갈래~.

 

태평양은 만만하지 않았다. 한자의 '태평(太平)'과 영어의 '패시픽(Pacific)'이 모두 '평화로운', '온순한'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어쩌면 역설적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죽 사나운 바다였으면 그런 이름을 붙여 안전한 항해를 기원했을까….
  

뱅쿠버 섬 서쪽 바다, 그러니까 태평양으로 10일간(2005년 8월 4일~14일) 정어리 조사를 다녀왔다. 이 조사는 지도교수 샌디 맥팔렌의 연구사업 중 하나인데, 필자 역시 고등어, 멸치 등의 부어류를 연구하는 터라 또 다른 주요 부어류인 정어리에 당연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이곳 캐나다에서는 승선조사를 어떻게 하는지 직접 보고 체험하겠다는 단순 무식한 생각으로 기꺼이 이번 항해에 명단을 올렸다.
  

정어리 조사 출발은 자동차로 5시간을 운전하여 섬의 북쪽 끝에 있는 항구도시 포트하디로 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포구가 있는 도시답게 바다와 배가 전부였다. 모두들 고기 잡으로 바다로 나가고 도심이 텅 비어 있어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거꾸로 날이 궂으면 바다로 못 나가는 대신 대낮부터 펍에 모여들어 맥주나 먹으며 날이 개길 기다린다. 어째튼 우린 이러한 도시를 뒤로하고 도착하는 즉시 배에 올랐다.
  

당초 `리커 모델'을 만든 리커(W.E. Ricker)를 기념해서(참고로 리커는 이곳 연구소에 근무했다) 명명한 조사선 리커호를 타기로 되어 있었는데, 치명적인 고장으로 상업 어선인 프로스티호를 용선하였다. 그런데 이 배는 단순한 어선이 아니었다. 원래 상업 어선이었던 것을 개조해서 조사선으로 여러 차례 이용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 캐나다 연구소의 현장조사는 물론 미국의 국제적 프로그램인 글로벡(GLOBEC) 조사도 심심치 않게 수행한 다국적 조사선인 셈이다. 하루 용선료는 600 캐나다 달러 정도란다. 구조 조정되어 쉬고 있는 한국의 어선들과, 전용 자원조사선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한번 고려해볼 만한 대안이다.
  

이 배의 승무원은 선장(skipper, Dave), 항해사(mate, Den), 기관사(engineer, Pole), 갑판에는 갑판장(boatswain, Jeff)과 갑판원(deckhand, Kayle)이 일을 맡았고, 호텔요리사 출신의 주방장(chef Soewn Larsen) 등 6명으로 구성되었다. 조사원으로는 연구소 기능직인 빌(Bill)과 바네사(Vanessa), 연구용역업체 D&D에서 나온 에드(Ed)와 함께 필자가 승선하였다.
  

살살 이는 바람을 향해 출항한 배는 작은 섬 사이 수로를 통해 섬의 동쪽에서 서쪽 대양으로 빠져나갔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첫 조사 정점까지는 꼬박 24시간이 걸린다니 야간 조사를 대비하여 잠을 자두려고 선실로 내려가 침대에 누웠다.

 

언뜻 잠을 잤는데, 잠결에 '쿵쿵' 소리에 잠을 깼다. 마의 해저퇴(bank)를 지나는 중인데, 뱃전이 파도에 부딪치는 소리였던 것이다. 갑판으로 나갔더니, 백파가 이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저녁 먹으라고 부르기에 한술을 떴는데(매 식사는 호텔식  수준으로 한국 조사선에서 먹는 식사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속이 편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화장실에 갔더니, 바로 토해냈다. 그리고는 다시 침실로 들어갔는데, 그 뒤로 기억이 없다(…).

 

얼마나 잤을까 조사 정점이라고 깨워 일어났더니, 거의 하루 동안 잤던 것이다. 간신히 일어나 갑판에 나갔다. 속은 좋지 않고, 기운은 없고….

 

캐나다 태평양에서 신고식 한 번 톡톡이 치렀다. 겨우내 날씨에 지치고, 실험하고 논문 쓴다고 몸을 혹사하고, 최근에는 계속 쇄도해 온 고국 동포들 영접하랴, 지칠대로 지쳤던 몸이 태평양의 드높은 파도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에 배가 도착한 곳은 유클리트, 식수를 공급받으러 입항하였다. 뱅쿠버 섬은 동쪽은 완만하고 온화한데 비해, 서쪽은 산이 험준하고 알류시안 저기압대를 만나는 곳이라 항시 안개가 자욱하고 파도가 높기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인간의 접근이 어렵고, 덕분에 자연은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런 서쪽 해안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3시간의 자유(?)를 허락받고, 몸을 추스릴 겸 동내 한바퀴를 돌았다. 작은 어촌, 관광 마을이었다. 파도가 높은 것이 파도 타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니, 자연은 항상 피해와 이익을 동시에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8월11일 누카사운드에 있는 프렌들리코브에 들어가기까지 5일 간은 지루하고, 힘든 조사의 반복이었다. 바클리사운드와 누카사운드를 오가며 표층 트롤을 하루에 9번씩, 낮밤으로 투망하였다.

 

밤에는 어획하고 낮에는 이동하고, 거꾸로 낮에 어획하고 밤에 항해하며 같은 작업이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낮밤이 바뀌는 생활이 교대로 반복되니 신체리듬이 엉망이 되었고,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 최대 난제였다.

 

jou2.jpg » 트롤어구를 이용한 어획

  

그러나 우린 큰 성과를 얻었다. 정어리가 낮과 밤에 어떻게 분포하는지 차이를 발견한 것이다. 어탐기를 통해서 보니 낮 동안에 정어리는 30m 수심에서 구 형태로 둥글게 모여 있다가 밤이 되면 표층에 퍼지는 것이 관찰되었고, 이는 어획된 양과 출현빈도 자료로부터 어군의 행동습성을 입증할 수 있었다.

 

캐나다 태평양 연안에서 1940년대 후반까지 주요 종이었던 정어리가 1992년에 다시 출현하기까지 갑자기 사라져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었는데, 요즘 그 자원량이 증가하고 있어 그 원인에 대한 연구가 재개되었던 것이다.

 

더우기 이러한 현상은 태평양 동부의 미국, 칠레 연안과 태평양 서부의 일본 연안에서 동시에 일어난 결과로 기후-해양 변동과 관련한 체제변환의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샌디가 쓴 논문을 배 안에서 읽었다). 그럼 한국 연안에서는? 우리가 이제라도 연구해야 할 '숙제'이다.

 

jou3.jpg » 어획된 정어리 

정어리와 함께 잡히는 청어는 밤에는 표층에 분산되지만 낮에는 바닥 가까이에서 탑 형태로 수직으로 길죽하게 분포하는 것이 어탐기에서 관찰되었다. 또한 전갱이가 떼로 잡혔고, 간간이 멸치와 고등어, 꽁치가 출현하였다.

 

멸치와 고등어는 이곳 해역이 태평양 동부 서식처의 북방한계로서 이들의 출현 유무가 난류의 북상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종이란다. 그밖에 대구과에 속하는 헤이크와 상어과의 도그피쉬, 청상아리 그리고 썬피쉬(sunfish)라 불리는 개복치가 어획되었다.

 

한국에서 지금 골치 덩어리인 해파리도 잡혔는데, 이들은 정어리, 청어와는 혼획되지 않았고, 연어, 개복치와는 함께 잡혔다. 이곳에서는 개복치가 해파리를 먹이로 이용한다고 하니, 해파리 천적으로 퇴치에 이용해보던지….

 

jou4.jpg » 엄청난 크기의 연어가 잡혔다. 

캐나다인이 최고 좋아하는 연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연어 어획 시험조사를 나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부수어획되는 연어 어획량이 엄청 많은 것을 보니 역시 캐나다가 '연어의 나라'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홍연어(sockeye salmon, red salmon), 은연어(coho salmon, silver salmon), 왕연어(chinook salmon, spring salmon, king salmon),
연어(chum salmon, 한국에도 서식), 곱사연어(pink salmon)과 스틸헤드연어(steelhead salmon)가 주로 어획되었다(현지에서 선호하는 순서대로 기재하였음).

 

이들은 잇몸 색깔과 이빨의 유무 그리고 등 표피와 꼬리지느러미에 반점 유무로 구분한다. 한국에서는 연어가 다양하지 않아 처음에는 그들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젠 나도 반 전문가가 된 것 같다.
  

고생만 한 것은 아니었다. 프렌들리코브에서는 남들은 돈 주고 하는 고래 구경을 공짜로 할 수 있었고, 이곳 사람들은 해조류를 거의 먹지 않는 탓에 엄청 크게 자란 불휩켈프(bull whip kelp)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누카아일랜드의 유콰트는 원주민만 사는 곳으로 육상 교통으로 접근이 불가능하여 고립된(?) 천연 그대로의 마을로 자연과 함께 사는 평화로움을 볼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

 

jou5.jpg » 조사선이 정박한 유콰트 해안.

 

jou6.jpg » 유콰트 해안의 필자. 사진=바네타


귀항길에 선상에서 본 가브리올라 섬에 걸친 석양을 바라보았다. 일전에 경험했던 캘리포니아의 석양과 더불어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었으나, 내 가슴 저편에선 나의 조국 여수의 석양이 떠올랐다.

 

jou7.jpg » 가브리올라 섬에서 바라본 석양.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