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분재·화초

탐내는 손이 무서워요, 탐라란 복원현장에 가 보니

자운영 추억 2012. 5. 7. 23:03

 

조홍섭 2012. 04. 30
조회수 4965 추천수 0

가장 희귀하고 작은 착생란의 하나…말라죽은 것보다 몰래 훔쳐간 개체 더 많아

꽁꽁 숨겨놓은 개체만 살아남아, 가져가도 살리기 힘든데

 

tom2.jpg

▲복원 1년만에 잎이 2개로 늘어난 탐라란의 모습.

 

늘 푸른 상록수림에서 계절 변화를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흰 꽃인가 싶어 다가가니 생달나무의 새순이다. 바닥에 점점이 깔린 붉은 동백 꽃잎이 봄이 왔음을 가리킨다.
 

제주 남부의 상록수림 속에는 진귀한 식물이 산다. 흙바닥이 아니라 나무줄기나 바위 위에 붙어사는 착생란이 그것이다. 공기 속의 습기가 풍부하고 따뜻한 곳에만 사는 난초인 이들은 열대 지방이 주 분포지이고 우리나라 남해안 섬이나 제주도가 분포의 북쪽 끄트머리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착생란은 애초 드문데다 희귀한 난초를 구하는 업자와 동호인이 마구 채취해 자생지에선 이제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한때 "가마니로 퍼낼 정도"로 많았던 풍란이 이제는 멸종위기종 1급으로 최고 수준의 보호 대상이 된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탐라란은 착생란 가운데서도 1990년대 중반에야 자생지가 처음 발견됐을 정도로 드문데다, 또 발견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도채꾼들의 손을 타 자취를 감춘 비운의 난초이다. 국립수목원은 지난해 탐라란의 복원에 나서 제주도 남부의 원래 자생지에 300여 개체를 복원했다. 이들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지난 4월24일 탐라란의 복원지를 찾았다. 며칠 전 큰 비가 왔는데도 벌써 말라버린 계곡 옆으로 구실잣밤나무, 참가시나무, 돈나무, 동백나무 등 난대림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었다. 나무줄기에 다닥다닥 붙은 콩짜개덩굴이 습한 환경임을 말해준다.

 

tom1.jpg

▲탐라란 복원지의 난대림. 나무 가지에 콩짜개덩굴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습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여기가 아닌가?”
 

탐라란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동행한 신재권 국립수목원 식물보전복원연구실 박사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치를 연방 들여다 보며 말했다. 위성장치라도 몇 m의 오차가 있는데다 나무가 우거져 있어 탐라란을 심은 나무를 찾기가 쉽지 않다.
 

탐라란을 꽁꽁 숨겨놓은 탓도 있어 보였다. 이 계곡엔 등산객이나 나물과 버섯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든다. 이들의 눈을 피하면서 탐라란의 생육환경에 맞는 장소를 고르는 일은 까다롭다.
 

탐라란은 온도와 습도에 매우 민감하다. 계곡 주변의 나무라고 다 탐라란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습기가 풍부해도 나무껍질의 재질이 뿌리 내리기에 적당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습기가 너무 많아도 죽어 버리기 일쑤이다. 이 때문에 한 계곡의 복원 시도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다.
 

tom3.jpg

▲지난해 3월 복원한 탐라란. 이끼로 만든 둥지에 뿌리를 내렸다.

 

마침내 신 박사가 한 구실잣밤나무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끼를 말아 제비둥지처럼 만든 곳에 손가락 한 마디 만한 탐라란이 앙증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신 박사가 “지난해 3월 잎이 각각 2개, 2개, 1개인 3개체를 붙였는데 지금은 2개, 3개, 3개로 자랐네요. 옅은 녹색이던 잎 색깔도 많이 짙어지고”라며 설명했다.
 

6~8월이 개화기이지만 혹시 꽃대를 내민 개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헛된 욕심이었다. 신 박사는 “개화하려면 잎이 5개 정도로 자라야 한다”고 말했다.
 

tom6.jpg

▲개화한 탐라란. 복원지 개체가 꽃을 피우려면 몇 년 더 기다려야 한다. 사진=국립수목원.

 

탐라란의 꽃이 중요한 이유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그 씨앗이 싹이 터야 비로소 복원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탐라란 복원 책임자인 이병천 국립수목원 박사는 “개화까지 앞으로 3~4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복원팀도 시간이 지나면 탐라란이 자생지에서 저절로 복원될 것으로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난초가 무사히 자라더라도 도채꾼이 모두 가져가 버리면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다. 게다가 탐라난은 워낙 예민해 훔쳐가더라도 살려내기가 몹시 힘들다.
 

tom4.jpg

▲도채꾼이 탐라란을 훔쳐가 텅 빈 이끼 '둥지'. 팻말만이 외롭게 매달려 있다. 

 

마치 알에서 깬 새끼를 뱀에게 빼앗긴 제비 둥지처럼 알루미늄 번호표만 덩그러니 남은 곳도 적지 않았다. 신 박사는 “이렇게 숨겨 놓았는데도 찾아내 관리되고 있음을 뻔히 알고도 훔쳐가는 것은 전문 꾼들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등산객과 산채꾼의 출입이 잦은 곳과 접근이 쉬운 나무에서의 도채율이 더 높은 것은 전문 꾼 말고도 일반인들의 손길도 미치고 있음을 말해준다.
 

복원팀은 지난해 3월 2개 계곡 32곳에 94개체를 부착했다. 이 가운데 고사한 개체는 17포기로 전체의 18%인데 비해 도채된 것은 이보다 많은 21개체로 22%였다. 이 두 계곡에서의 생존률은 현재 66%로 아직은 괜찮은 편이다.
 

tom5.jpg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복원 탐라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야 복원이 성공한 것이 된다.

 

그러나 복원팀 조용찬 박사는 “아직 성공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종 복원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경계했다. 그는  “멸종위기 식물의 증식법을 개발하고 일반에게 생물다양성 보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이 이번 사업의 실질적 의미”라고 설명했다.
 

탐라란은 제주 남부를 비롯해 대만, 일본 오키나와 등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에만 분포한다. 그러나 이들 분포지에서도 워낙 드물어 일본은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산림청이 보호등급이 가장 높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고, 환경부는 아직 멸종위기종으로 올려놓지 않고 있다.
 

tam8.jpg

 

tom7.jpg

▲채취업자로부터 얻은 3개체의 탐라란을 복원해 증식한 모습. 사진=국립수목원.

 

이병천 박사는 “탐라란이 자생지에서 사실상 사라진 뒤 채취업자로부터 얻은 3개체에서 종자 2000개를 얻어 발아시킨 뒤 조직배양해 복원에 나서게 됐다”며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희귀하고 기르기도 힘든 만큼 복원이 성공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협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주/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