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예술 】

이경윤의 고사탁족도 (그림도 때로는 읽어야 합니다.)

자운영 추억 2013. 9. 5. 12:12

때로는 책을 읽듯이 그림도 읽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문학은 작가는 말과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이고, 그 글을 읽는 사람은 문학 작품을 다시 마음속으로 그림으로 그리는 일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저는 문학 작품을 읽고 있으면 무수한 그림과 영상이 머릿속에 지나갑니다.

누구나 다 경험해 본 일이 아닐까요.

 

제가 어렸을 때는 오직 읽을거리 몇 가지와 라디오를 통해서만 이 세상을 바라봤습니다.

라디오도 잘 들리지 않아서, 철사줄로 거미줄처럼 만든 안테나를 나무막대에 달아 높이 세워야 들리던 시대였으니까요.

라디오 연속극이 시작되면 잡음이 심한 라디오 앞에 온 가족이 모여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지요.

라디오 연속극 속에는 나 혼자만의 영상과 그림이 무수하게 펼쳐졌습니다.

 

어렸을 때는 읽을거리가 제대로 없어 손에 닿는 대로 읽었습니다.

동화책, 형들이 읽던 어려운 문학책, 오래된 월간잡지 등등.......

덕분에 청소년시절 우리나라와 서양 근현대 문학작품에 푹 빠져 지낼 수 있었습니다.

겨우 요정도 글이나마 쓸 수 있는 것은 청소년 시절의 독서 덕분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다들 자신이 읽은 문학작품이 더러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때로 실망하기도 하셨지요?

책을 읽으며 내가 마음속으로 그렸던 영상에 미치지 못해 저도 많이 그리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문학은 글로 그림이나 영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그림은, 그림으로 그리는 문학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요.

말과 글을 다시 그림으로 그린 것이 미술작품일 테지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종교화가 아니겠습니까.

중세 서양화는 대부분 기독교 성서를 주제로 하고 있기에 성서의 내용을 알아야 그림이 제대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그림 속에 담긴 내면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면, 마치 한편의 소설을 읽듯이 그림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양화는 세부묘사를 통한 직설적 화법이라면, 동양화는 에둘러 말하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불교의 감로탱화처럼 직설적인 것도 있지만, 동양화는 대부분 상징적으로 에둘러 말합니다.

동양화에서 모란 그림은 부귀영화를 말하고, 석류 그림은 자식을 많이 낳으라는 다산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게와 기러기 그림은 오래오래 사라는 장수를 의미하지요.

동양화에서의 상징적 표현은 나중에 다시 자세하게 말씀드릴 기회를 마련하겠습니다.

 

고사(故事)를 주제로 한 작품이나, 뚜렷한 상징이 없는 산수화와 풍속화에서도 그 풍경과 장면을 다시 말과 글로 마음속에 담을 수 있거나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림이 이전의 작품이 아닌 다른 그림으로 다시 보일 것입니다.

 

제가 괜히 아는 척했습니다.

예술은 아름다움이 그 첫번째인데, 아니 그냥 그림 감상에 있어서 아름답고 즐거우면, 그게 최고이지요.

그게 그림 감상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네요.

 

  

 

                

 

 

조선 중기 이경윤고사탁족(高士濯足)’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입니다.

여기서 고사(高士)란 고결한 선비를 말하고, 탁족(濯足)이란 발을 씻다는 뜻입니다.

세로 28cm 가로 19cm 정도로 딱 A4 복사지 정도 크기의 작은 그림입니다.

이경윤의 생몰연대가 1545에 태어나 1611년에 돌아가셨으니까, 겸재 정선(1676) 보다는 130년, 단원 김홍도(1745) 보다는 200년 앞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조선 중기 무렵이라서, 중국의 절파화풍이 그대로 담긴 작품입니다.

 

이경윤은 성종의 고손자로서 조선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대부 화가라서 그런지, 그의 그림은 고사(高士)를 주제로 한 산수인물화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세속적이거나 친서민적 주제로 한 그림이 나타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시기도 아니었습니다.

 

탁족도는 조선시대 여러 사람들이 즐겨 그린 소재인데,탁족도에 담긴 의미는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이 지은 초사(楚辭)’ 중에 어부사(漁父辭)’의 내용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전국시대 초나라 왕에게 옳은 일을 고하다가 쫓겨나 한탄하는 굴원에게 배로 강을 건너 준 어부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다.’ 라고 하며 삶의 처세를 은유적으로 알려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대목을 세상이 맑으면 갓을 쓰고 관직으로 나아가 꿈을 펼치고, 세상이 흐리면 흐린 물에 발이나 씻으며 은둔하며 자족하라는 뜻으로 다들 해석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고사(故事)를 들춰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그림을 바라본다면, 요즘처럼 삼복더위를 피해 흐르는 계곡물에 시원하게 발을 담그며 유유자적하는 선비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보면 되겠지요.

사실 그러할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그림에 옛 이야기를 덧붙여서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경윤 '고사탁족도-1'                                                         이경윤 '고사탁족도-2'

 

 

이경윤의 탁족도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고사(高士)의 앉은 모습이 거의 같은 모양새입니다.

바지를 허벅지가 보이도록 훌훌 말아 올리고 발이 물에 닿을 듯 말 듯 다리를 슬쩍 꼬아 앉아서 왼손을 바위에 짚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뭔가 말하려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앉은 모양새는 같은데, 가슴을 풀어 제친 도포자락 사이로 볼록한 뱃살이 드러나고 얼굴 표정도 좀 더 밝은 친숙한 모습으로 발전했습니다.

더위를 피해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글 정도라면 굳이 윗옷을 단정하게 입을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이왕 더위를 피한다면 발을 담그고 도포도 훌훌 벗어 제치는 것도 좋을 텐데, 선비 체면에 차마 그러하지는 못하고, 누가 오면 황급히 옷을 여밀 수 있게 슬쩍 도포자락을 열어서 제치는 정도에서 그쳤습니다.

양반들이 일반 평민들이 유독 부러운 계절이 여름철이 아닐까 싶습니다.

잠뱅이 하나 걸치고 가슴을 훤하게 들어 내놓고 사는, 체면 따위는 전혀 필요 없이 여름한철을 지내는 상민이 부러운 계절입니다.

 

작품속의 가장 아랫부분에 매화꽃인 듯, 몇 송이 꽃을 피웠는데, 곧 필 듯 말 듯 꽃눈의 분홍색 색감과 새잎이 돋은 모양새와 곧게 뻗은 가지로 봐서 복숭아나무를 닮은 듯합니다.

매화가 피는 계절은 더러 눈도 내리는 아직 추위가 남은 이른 봄철이고, 복숭아꽃이 피는 계절 역시 아직 찬바람이 남은 계절이기에 옷을 풀어 제치고 탁족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밑둥이 부러진 큰 고목나무는, 나뭇잎과 붉게 무리지어 가득 핀 꽃으로 봐서 배롱나무(목 백일홍)가 틀림없을 듯합니다.

배롱나무라면 삼복더위 여름 한철 내내 꽃을 피우기에, 더위를 피해 탁족하는 모습과 딱 어울리는 나무입니다.

큰 배롱나무는 탁족하는 모습과 계절적으로 잘 어울리는 사실적 표현이라면, 매화나 도화(桃花)는 선비의 고결함과 '여기가 이상세계인데 세속에 나가 뭐하리'라는 상징적 표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런 저런 자세한 분석이 뭐 필요하겠습니까.

그저 이 삼복더위에 더위를 피하는 그림으로 봐라보는 것 하나로도 족하지요.

작품에서처럼 굳이 옷을 벗지 않고서도, 시원한 그늘이 있는 계곡물에 발만 담고 있어도 등골이 시원해지지 않나요?

거기에다가 동자가 따라주는 술 한 잔이 있는데, 그 무엇이 부럽겠습니까?

 

이 흐르는 물에 갓끈을 씻어 출사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발을 담그고 아직 숨어 지내야 하는지, 이런 저런 걱정하지 말고 그냥 이 더위에 발을 담그고 잠시 세상살이 잊고 지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